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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화등선이라더니 주지육림인가

도교문화와 신선사상

by 티제이

베이징에 살면서 칭다오는 열 번 정도 다녀온 것 같다. 옌타이는 딱 한 번 가봤는데, 칭다오와 함께 산둥반도에 위치한 도시인 줄도 몰랐다. 19세기에 칭다오가 '대륙으로 통하는 항구'로 성장하기 전까지 산둥반도에서 나름 잘 나가던 항구도시였다는데, 그런 줄도 모르고 연태고량주만 찾았다.


8선은 연태고량주 들이키고 날아올랐던가.

중국의 신선사상은 낯설기만 하다.


옌타이는 한자로 "烟台"로 쓴다. '연태' 또는 '연대'라고도 읽을 수 있는데, '연기 나는 대', 그러니까 봉화대 또는 봉수대의 의미가 있다. 바다를 통한 침입에 대비하여 신호를 보내는 시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역사가 오래된 것 같지만, 실은 옌타이 이전에 펑라이가 있었다.

펑라이는 한자로 "봉래(蓬莱)"로 쓰며, 중국 전설 속에 등장하는 '봉래산'의 봉래가 맞다. 불로장생의 명약이 있다는 봉래산은 방장산, 영주산과 더불어 '삼신산'이라 불린다. 이때 '신'은 '유일신'의 신이 아니라 '신선'의 신이다.

IMG_3623.JPG 펑라이의 봉래각에서. 중국어로는 '펑라이거'라고 부른다.

불로장생은 모르겠고, 술은 확실히 있는 것 같다. 5A급 관광지로 복원된 봉래각에는 '신선들의 향연'까지 꾸며놨다. 어여쁜(?) 여자들의 술시중을 받으며 잔뜩 꼴은 남자들이라니, 맘껏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게 신선의 삶이라는 건가. 신선세계라면서 꾸며 놓은 것 만 보면 마치 영원히 무위도식하기 위해 신선이 되려는 것 같다.

앞에 있던 아이가 부모한테 '저 여자는 왜 자고 있어'라고 물으니 대답이 웃기다.

"어, 피곤한가 봐"

IMG_3595.JPG 펑라이거, 즉 봉래각으로 올라가는 입구에서.

흔히 중국의 사찰과 건물은 화려하고, 일본의 것들은 세밀하며, 한국은 그 중간이라고들 표현한다. 중국의 사찰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절'보다는 '도교사원'이라,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다. 불교와 도교 모두 끊임없는 수양을 가르치지만, 수양의 결과, 즉 목적하는 바가 같지 않다.

중국의 뿌리 깊은 도교문화는 신선이 되어 날아오르는 것, 즉, 우화등선이 목적이다. '날개(우)를 돋게(화)'하기 위해, 신비의 단약을 만들고 단식을 하거나 이러저러한 수양을 쌓는다. 신선사상은 오늘날 중국만의 독특한 '유사과학'으로 남아있다. 한국에서 한 동안 유행하던 마녀주스, 독소배출주스 같은 걸 만들어 먹는 것과 유사한데, 몸을 가볍게 만들어 궁극적으로는 '허공답보'를 해낸다는 부분에서 차이가 크다.

허공답보라니

어이없지만 여기 펑라이에는 '허공답보 명소'까지 있다. 여덟 명의 신선이 날아올랐다는 펑라이거의 한쪽 구석에는 저 쪽 절벽까지 케이블카가 놓여 있다. 갓 신선이 된 자라면 여기서 저기까지 허공답보로 바다를 건널 수 있다는 것이다. 속세에 찌들어 몸이 무거운 자라면 케이블카를 이용하는 수밖에.

IMG_3625.JPG 반대편으로 건너가는 내내 여덟 신선에 관한 전설을 계속 설명해준다.

신선은 전래동화에서나 등장하는 할아버지인 줄 알았는데, 중국에서는 곳곳에서 신선의 흔적이 엿보인다. 신선 전설 하나 없는 유적 없고, 젊은이들은 놀러 가서 선녀, 신선 옷을 입고 다닌다. 관광지의 어린 중국인들이 화려하게 꾸민 복장은 실은 그 어떤 전통의상도 아니다. 판타지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비천선녀나 무학도사 코스튬에 가깝다.

도교에서 제시하는 이상향은, 현실에 꽤나 가까이 내려와 있는 듯하다.

IMG_3629.JPG 케이블카 안에서. 외줄 케이블인데 속도까지 빨라서 배우자가 엄청 무서워했다.

우리 엄마는 불교신자다. 베이징에 한 번 오셨을 때, 베이징에서 나름 제일 유명한, 제일 큰, 제일 오래된 사찰에 모셔 갔는데,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셨다. 고즈넉한 맛없이 번잡스럽고, 지독하게 피워대는 거대한 향로에 눈과 코가 맵다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처음에는 나 역시 어디 유명한 전각이다 누각이다 해서 가 보면, 이게 정말 문화유적이 맞나, 테마파크 아닌가 의심이 절로 들었다. 수 십 군데를 다녀서야 겨우겨우 중국식 신비주의가 뭔지 알 것도 같다. 중국인들이 추구하는 신비스러움이란, 함축적인 몇 자의 단어 만으로 이뤄지는 선문답의 그 오묘함 같은 거다.

각자의 시선에 따라 이리저리 해석될 수 있는 바다 위 신기루에 비친 낙원의 그림자 같은.


산둥반도의 옌타이, 특히 펑라이 일대는 해상 신기루가 자주 생기는 곳으로 유명한 동네다. 그리고 나는 선문답을 좋아하지 않아서, 난생처음 보는 신기루에도 환호성이 나오질 않았다. 음, 과학시간에 배웠던 빛의 굴절이 어쩌고 때문에 정말 저렇게 보이는구나, 가 반응의 전부였다.

마찬가지로 중국이라는 나라 역시 머리로 이해하는 데 그치겠지만, 발 밑에 땅 아닌 바다를 두고 허공을 가르는 느낌은 확실히 색다른 경험이어서 즐겁다. 이방인이면 어떠랴, 그저 나를 잃지 않으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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