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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에서 사 온 태산석

돌멩이를 사오는 그대를 사랑하는 이유

by 티제이

'태산이 높다 하되'의 그 태산에서 나는 돌을 '태산석'이라고 부른다. 흰 바탕에 검은 게 들어 간 화강암계 변성암인데, 비석처럼 맨들맨들하니 잘 다듬으면 그 문양이 얼핏 한 폭의 산수화 같기도 하다. 무늬도 예쁘(다고들 평하)고 태산 자체가 의미있는 산이라 사기는 샀는데,

이걸 어디다 둔담.



태산에 대해서는 익히 들었다. 생각보다 높지 않다, 주변이 평지라 좀 대단해 보이는 거다, 계단만 많이 올라가야 해서 재미가 없다, 별 볼일 없다 등등, 썩 좋은 평은 없었다. 그래도 이왕에 중국에 온 거, 한 번 정도는 다녀와 줘야 한다는 책임감도 있어서, 대수롭지 않은 마음으로 다녀왔다.

베이징에서 태산까지는 고속철로 편하게 갈 수 있다. 원체 유명한 관광지라 헤맬 걱정도 없어서, 중국어를 조금이라도 할 줄 안 다면 굳이 여행사를 끼지 않아도 된다. 중국은 정부에서 관광지를 관리하기 때문에, 바가지 걱정도 할 필요가 없다.

사람들이 진저리를 떨 만 한 태산의 계단코스

중국인들은 산에 갈 때 대부분 케이블카를 타는데, 이렇게 계단을 오르는 사람이 많은 걸 처음 봤다. 보통은 정상에 도달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태산에서는 오르는 과정 자체가 역사의 일부기 때문이다. 황제도 올랐던 계단길이니, 영웅호걸을 동경하는 중국인이라면 몸소 올라줘야 한다.

사람이 없을 만한 아무 것도 아닌 날에 태산에 갔는데도 인파가 많았다. 진짜 바글바글 할 때는 발 밑에 계단이 보이지 않을 정도라고 했다. 그런 날에는 세 시간은 기다려야 케이블카를 탈 수 있다고 한다. 우리가 간 날은 한 시간 좀 넘게 기다리면 탈 정도였으니, 그다지 붐비지 않은 날인 셈이다.

우리는 걸어 올라갔다가 내려올 때 케이블카를 탔는데,


남편이 큼지막한 돌덩이를 사지 않았더라면 내려갈 때도 계단으로 갔을 것이다.


뿌듯한 표정으로 태산석을 자랑하는 신랑. 우리 집에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결혼사진 바로 밑에 두었다.

나도 기념품 사 모으길 좋아하지만, 돌은 감히 생각도 못 해봤다. 제주도에서 조그만 산호조각이라던가 조약돌에 그린 그림같은 작은 아이템은 몰라도, 몇 킬로그램 나가는 걸 구매하리라곤 꿈에도 몰랐는데.

동갑내기인 남편이 수석에 관심이 많은 것도 아니다. 그냥, 중국에서의 삶이 기념이 될 만한 '무지하게' 중국스러운 걸 갖고 싶었을 뿐이다. 옥벽이라던가, 중국식 가구라던가. 예상보다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어 옥이나 가구는 못 샀고 결국 태산석 하나 건졌으니 잘 산 것 같기도 하고.

그거 들고 다니게? 너무 무겁지 않아? 맡겨놓고 이따가 찾아갈까?

태산을 자연을 즐기는 '산'으로 생각하면 정말 즐길 거리가 없지만,'산에 있는 문화유적'으로 생각하고 접근하면 은근히 볼 게 많다. 강희제, 건륭제를 비롯하여 역사상 유명했던 위인들의 흔적은 물론 수 세기에 걸친 여러 왕조들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어서다.

계단 꼭대기에 올라 널따랗게 자리한 공간에서, 말하자면 이것 저것 보느라 몇 시간을 쓸 수도 있는 셈인데,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줄지어 자리한 상점에서 묵직한 태산석을 사버렸고, 이걸 사달라고 졸랐던 당사자는 맡기고 가기를 불안하게 생각해서 끝까지 들고 다니겠다고 주장했다.

가게에서 준 빨간 천가방에 태산석을 담아 끝까지 옆구리에 끼고 다녔다.

비싸게 사지도 않았다. 이러저러한 흥정 끝에 150위안인가 지불했는데, 한국 돈으로 따지자면 한 3만원 정도인 셈이다. 뒷면이 손바닥만하게 떨어져 나간 하자품이라 더 깎았고, 이 돌 저 돌 비교해가며 어설픈 중국어로 주인과 협상 한 것도 나였으니, 본인이 고생해서 손에 넣은 것도 아니다.

근데도 그렇게 집착(?)했다. 스스로도 너무 기쁘다며 '최애 나무막대기를 얻은 리트리버'도 이런 마음이었을 거라고 즐거워 했다. 아무리 크고 무거워도 끝까지 들고 다니며 자랑하고 다닐거라 신나 했다. 한 15분 정도.

안 그래도 한 구석탱이가 깨진 돌이라 자칫 실수해서 더 깨뜨릴까봐 어디 편하게 내려 놓지도 못하기를 30분이 넘었다. 이 정도면 많이 버틴다 생각했는데, 울상이 되어서도 산을 내려갈 때 까지 끼고 다녔다. 호텔에 돌아와서는 질리지도 않고, 방 치우러 들어 온 사람들에게도 자랑할거라고 거울 앞에 꺼내놓기까지 했다.

지친 와중에도 기념사진은 다 찍었다.

뭐가 그렇게 좋다는지 이해가 안 갔다. 손수 들고 다니겠다는 심보는 또 뭔지, 힘들고 지쳐서 나한테까지 짜증낼까봐 심히 우려스러울 정도였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그대에게 돌을 사 줬고, 맘껏 들고 다니게 내버려 뒀고, 케이블카를 태우고 택시를 태워서 부둥부둥하며 숙소에 돌아왔다.

툴툴거리는 걸 미소로 받아들여주는 위인이 못 됨에도, 나는 그렇게 너를 한참이나 오구오구 해 줬다. 못 참고 버럭 그만 좀 하라고 터트릴 때도 있지만.

you handless footless

스스로도 할 수 있는 것 까지 해달라고 질척댈 때는 정말 짜증을 감출 수 없으나, 대체적으로는 네가 나에게 의지하고 치대는 게 만족스러운가보다. 삼백안을 치켜 뜬 내 면전 앞에서 애교로 무마하려 드는 모습도 아직은 봐 줄 만 하다. 같이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아니어서, 어쩌면 나는 새디스트일지도 모르겠다.

해맑은 그대, 를 구경하는 중국인

앞 뒤 재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는 너의 단순함이 부럽다. 세상의 어둠을 잘 모르고 살아갈 수 있는 무지도 샘이 난다. 너도 내가 있는 곳으로 끌어 내리고 싶은 마음에 상처 될 만한 말을 골라서 속삭이기도 한다. 약점 하나 잡아 너를 쥐락펴락 하는 쾌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너에게 돌을 사 주고, 쓰다듬어주고, 집에서 뒹굴어 다니는 다른 잡다한 기념품들을 모아 한 군데 예쁘게 정리 해 둔다. 태산석과 미니병풍, 자개함, 소수민족의 장신구 등등 너는 이제 거들떠도 안 보는 잡다구리들을 고이고이 모아 두었다.

시키면 또 시키는 대로 포즈를 취하는 그대, 를 다른 중국인이 구경하고 있다.

째깐한 언덕 같은 태산이지만, 대륙의 젖줄이라는 황허의 물줄기를 바꾼 산이기도 하다. 황허는 워낙에 범람이 빈번한데, 홍수가 나서 태산 양쪽으로 흐르다가 한 쪽이 물이 말라 다른 쪽으로 흐르는 것이다. 태산의 북쪽으로 흐르던 강이 어느 폭우 이후로는 남쪽으로 바뀌었다가, 또 몇 십 년 뒤 다시 북쪽으로 흐르기를 반복하면서, 그 때마다 땅에 사는 사람들의 운명도 갈리고는 했다.

태산은 영험한 산으로도 여겨진다. 중국인들은 태산석에 귀신을 쫒는 효험이 있다고 믿기도 한다. 원산지에서, 그것도 산 꼭대기에서 구한 태산석을 남편이 직접 품에 안고 태산 구석구석을 누볐으니, 우리집 태산석의 기운은 분명 더더욱 남다를 것이다.


나에게 태산은, 여덟자리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 올 때 마다 마주치는 태산석은, 내 어설픈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감정을 떠오르게 한다. 내 인생에 들어 선 너라는 태산으로 인해 다음 범람때는 물줄기를 어느 방향으로 바꿀 지 짐작도 안 간다. 그래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태산석을 우리 결혼사진과 함께 두었나보다.

나는 이제 최대한 노력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사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걸 앞에 두고 고민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게임을 하면서, TV를 보면서, 몇 시간이고 핸드폰을 하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되새긴다. 그렇게 살아도 평범하고 멀쩡하게, 어쩌면 누구보다도 사랑받고 살 수 있음을 너를 보고 깨달았으므로,

너는 그렇게 나의 방향을 바꿔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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