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이상, 장강 이남의 강남문화
베이징 여자는 못생겼다.
혹은, 북쪽 여자는 못생겼다는 '농담'은, 중국의 흔한 차별거리 중 하나다.
한국의 '남남북녀'는, 정작 한자의 고장인 중국에는 없는 사자성어다. 북방 출신 여자는 성격도 세고, 말도 막 하고, 외모 역시 거칠다고. 그래도 '남녀북남'이라는 표현은 딱히 따로 없는 걸 보면, 실은 남자나 여자나 북쪽 출신은 다 드세다는 뜻이기도 하다.
강하다, 거침없다는 표현이 아무래도 남성의 상징처럼 여겨지다 보니 역으로 '남쪽 남자는 남자답지 못하다, 유약하다'는 말도 거침없이 내뱉기는 한다. 뭐, 아무리 비꼬고 포장해봤자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한껏 여유로운 남부지방을 향한 동경은 숨길 수 없다.
대륙의 수도 베이징은 사시사철 건조한 바람이 가득하다. 도시화의 영향도 있겠지만, 워낙에 내륙에 위치한 도시라 물이 항상 부족하다. 한강이 도시를 가로지르는 서울에서 나고 자라며, '배산임수'니 '풍수지리'니 하는 것들이 동양의 전통적 가치인 줄 알았는데, 정작 중국의 수도에는 물도 없고 산도 없다. 그러니 여기는 사람이 살기 좋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베이징의 기후와 환경은 나의 건강을 너무 많이 해쳤다. 계절을 불문하고 숨만 쉬어도 북어포가 될 것 같은 공기에 초미세먼지 폭풍까지 더해져 기관지 관련 질환을 심하게 앓았다. 무탈한 사람도 많았지만 때로는 공부를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간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도대체 왜! 더울 땐 덥고 추울 땐 추운 땅에 뭐하러 수도를 잡았나 이해가 안 갔다.
베이징보다 훨씬 위에 땅들을 돌아다니다 보니, 그제야 한참 북녘의 땅들에 비하면 베이징은 천국 같은 곳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베이징에 살면서 쑤저우, 항저우를 돌아다닐 때도 마찬가지였다.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의 정체성을 떠올려보면, 더 뜨뜻한 남쪽까지 내려가기에는 무리라고, 너무 습하고 벌레도 많다고 여겼을지 모른다.
베이징에서는 텐진이라는 항구도시도 가깝고, 무엇보다 남쪽에서부터 올라오는 운하가 닿는다. 몸소 내려가 살기는 어려워도, 장강 이남의 '강남문화'는 동아시아의 모든 세력들이 동경하던 존재였다. 비단과 종이가 넘치는 세련된 아티스트들이 넘치는 강남. 종종 놀러 가는 거면 몰라도 외지인이 그 속에 들어가 사는 건 솔직히 큰 모험이자 위협이기도 해서, 대륙을 장악한 북부의 오랑캐들은 가져오기로 했다.
남쪽을, 북쪽으로.
베이징에 꾸역꾸역 이식한 남쪽의 자연과, 도시와, 정원은 이제 중국인들이 제일 사랑하는 명승지가 되었다. 가장 유명한 관광지는 이훠위엔, 즉 이화원이다. 이훠위엔은 완벽한 인공의 산물이다. 황제의 여름별궁에 그렇게나 큰 인공호수가 자리하고 있다는 건, 위대한 권력을 반영하는 증거기도 하다. 서태후는 죽을 때까지 이훠위엔에 살았는데, 서태후에게 바쳐진 공물도(레플리카로) 전시하고 있다.
항저우에는 시후, 즉 서호가 있다. 문인들의 나라, 송나라 때부터 시후의 아름다움은 오래도록 노래되었다. 청의 건륭제는 시후를 이훠위엔, 즉 이화원으로 옮겨왔다. 시후에서는 봄마다 버들이 춤을 추고 매 여름이면 강렬한 연꽃향이 사방을 감싸 안는다. 쑤저우 근교 타이후, 즉 태호에서 채취되는 태호석, 중국어로는 '타이후쓰'도 여기저기 놓여 있다. 자고로 중국의 정원, '원림'이라면 기암괴석 타이후쓰는 필수기 때문이다.
베이징의 이훠위엔에서도 봄마다 수양버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꽃가루가 눈발처럼 흩날리는데, 꽃과 나무가 더 많은 남쪽 출신도 베이징에 와서는 알레르기로 개고생을 한다. 건조한 기후에 한껏 민감해져서다. 알레르기가 얼마나 심한지 나는 천식처럼 앓아버렸다.
이훠위엔은 황제의 것이고, 황족의 저택에서도 강남문화를 소유하려는 욕망이 엿보인다. '공왕부'라고도 불리는 공왕푸는 황제의 여러 아들 중 하나였던 공친왕의 개인 저택이다. 공친왕은 서태후와 함께 권력을 쟁취했던 인물이니, 얼마나 막강한 권세를 누렸을지는 쉽게 짐작이 간다.
공왕푸는 사실 공친왕이 새로 지은 가옥이 아니고, 원래 있던 걸 하사 받은 건물이다. 영하의 바람이 휘몰아치는 겨울을 지내야 하니, 북방식으로 지어졌다. 대신 중정을 비롯한 곳곳에서 쑤저우의 쓰즈린과 상하이의 유위엔이 문득문득 드러난다.
쓰즈린, 즉 사자림은 중국의 내로라하는 명원이다. '쓰즈'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사자모양으로 생긴 태호석 때문이라는데, 사실 태호석-중국어 발음으로는 타이후쓰-는 중국의 '원림문화'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태호석의 산지인 태호는 중국에서 손꼽히는 호수 중 하나다. 쑤저우 근교에 위치하고 있어 상하이와도 가깝다. 타이후의 타이후쓰는 석회암질의 돌인데, 남부지방 답게 물이 많아 석회가 조금씩 녹아 나오면서 들쭉날쭉한 구멍이 생긴다. 기이한 형태의 돌은 그 자체로 비석처럼 세워 감상하기도 한다.
돌을 잘 모르는 나야 뭐가 그렇게 아름답다는 건지 아리송하지만, 진짜 잘 생긴 돌을 수집해다가 전시하는 것이 귀족들의 자랑거리였다. 때로는 자잘한 석회암을 회칠로 이어 붙여 얼추 태호석으로 꾸민 듯한 분위기를 내는 경우도 있다. 상품가치는 좀 떨어져도 태호에서 직접 공수해 온 돌을 모아 붙였으니, 분명 태호석을 태호석이다.
태호가 아무리 크다고 해도 공왕푸에서 이훠위엔과 자금성은 물론, 난다 긴다 하는 부잣집 정권을 다 장식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을 텐데 이 많은 돌이 다 어디서 온 걸까 의문이었다. 이 드넓은 땅덩이 다른 곳 어디선가도 구멍 뚫린 석회암이 생산될 만도 한데, 지금까지도 시중에 유통되는 태호석은 전부 진.짜. '태호석'이라고 한다.
비결은 간단하다. 원하는 크기의 석회암을 가져와 태호에 담가두면 된다. 태호로 흘러 들어가는 지류나 어쨌든 주변의 물에 넣었다 뺐다 하면서 원하는 모양이 나올 때까지 담가두면 태호에서 '난' 돌이니 태호석이라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닌데, 이렇게 수요가 많은 줄은 몰랐다.
그러니까, 남쪽은 여자를 비롯해 모든 게 다 '아름다운' 거다. 돌도 예쁘고 물도 예쁘다. 집도 예쁘지만 남쪽의 가옥구조를 그대로 가져왔다가는 겨울을 버틸 수 없으니, 적당히 재력과 무력으로 가져올 수 있는 것들을 다 가져왔다. 베이징은 물론 베이징보다 훨씬 북쪽에 위치한 도시들까지도, 한 때는 이방인의 땅이었던 동네에도 장강 이남의 문화가 깃들었다.
베이징의 '중국'은 그렇게 형성되었다.
본디 녹음이 우거지고 물이 가득할 리 없는 동네에, 유유자적한 도교 신선의 공간이 심어 들었다. '중국스럽다'라고 생각되는 요소들이 모여들었다.
오늘날까지도 중국은 강남을 동경한다.
현대 중국이 탄생한 이래로 강남은 이제 자연스럽게 '지방'이 되어야 하는데, 베이징은 수도임에도 아직까지도 '촌뜨기'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일반적으로 각 나라의 수도는 '서울 사람은 깍쟁이'나 '파리 사람은 콧대가 높다' '런던 사람은 젠체한다' '방콕 출신은 어쩌고' '도쿄 사람은 저쩌고' 하는 식으로 대도시 특유의 눈총을 받는데, 베이징 출신을 향한 지적은 아직도 반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21세기의 중국은 원체 물이 귀한 베이징에 결국 '도시'까지도 옮겨 놓았다.
권력의 힘으로 호수와 산을 세우고 운하를 놓아도, 강남의 수향마을을 구현할 정도의 물은 없었다. 이화원의 한쪽에 '소주가' 즉 '쑤저우의 거리'를 만들어 놓았지만, 교각 양 쪽으로 시선 닿는 정도 까지만 딱 만들어놓은 작은 테마구역이다.
반면 고북수진-중국어로는 구베이수전-은 강남 수향마을을 통째로 옮겨 놓은 테마파크의 절정이다.
미국에서 '꿈과 환상의 나라'라고 하면 디즈니랜드지만, 중국에서는 수향마을이 곧 판타지의 실현이다.
풍요롭고 평화로우며 도시 자체로 글과 그림, 음악과 문화의 보고인 수향을 중국인들은 그리워한다. 가진 적 없던 것인데도 그리워서, 재주가 닿는 대로 해내었다. 운하를 따라 자연스레 형성된 인공 도시인 수향을 이제 베이징에서도 누릴 수 있다.
관광객 가이드는 구베이수전의 운하와 북방식 건축물을 두고 '남북문화의 융합'이라고 소개하고는 한다. 중국의 기술력과 자본력을 칭찬하고, 증명이라도 하는 듯 밤마다 대규모의 드론쇼가 열린다. 처음에는 레이져쇼인 줄 알았는데 그 많은 별이 다 드론이었다.
수억 원을 투자해서 강남문화를 재창조하는 중국이 나는 아직도 신기하다. 북부는 아직도 남부가 낯설고, 남부 역시 스스로가 북부와는 다르다고 여긴다. 잘 모르는 내 눈에는 기와지붕과 화려한 장식성이 그게 그거처럼 보였는데, 속에 들어가서 보니 둘은 아직도 너무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