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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은 May 21. 2021

몰라도 괜찮아

Day 11. 정의

내가 믿는 나의 능력, 정의, 옳고 그름에 대한 글을 써 주세요. 그 믿음의 근거나 도달하기까지의 과정, 그 믿음으로 내가 해나가고 있는 선택과 결정, 그로 인해 일어났던 여러 에피소드 등을 써주시면 됩니다.
 <나를 껴안는 글쓰기> - 슝슝




'모른다를 인정하는 것은 지속적인 성장의 열쇠이다.'

얼마 전 친구를 만나 이야기하다가 나에게 새로 생긴 믿음이다.


학창 시절부터 배움을 좋아하던 친구는 회사원이자 아이 둘의 엄마가 되었다. 지난번에 만날 때는 코로나 1차 유행시기가 막 끝난 참이었다. 친구는 아 휴직을 하고 아이들 두 명을 오롯이 혼자 데리고 있는 상태여서 상당히 지쳐 보였다. 그때 친구는 얼른 코로나가 잠잠해져서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가고 자신도 회사를 가고 싶다고 했다.


지난번 친구를 생각하면서 이번에 만날 때에는 이시형 박사님의 '행복도 배워야 합니다'를 선물로 가져갔다. 지친 마음이 조금은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남편 말고는 이렇게 서윗한 선물 첨이다야~"

친구는 엄청 좋아하면서 환하게 웃었다.


친구는 최근 출퇴근길이나 조금씩 틈나는 시간에 책을 읽는다고 했다. 그래서 나의 책 선물이 너무 고맙다고 했다. 학창 시절에 학업을 열심히 하던 친구의 눈빛이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자리에서 빛을 내고 있었다. 처음에는 점점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해서 책을 읽고 공부를 시작했는데, 지금은 그 책들로 본인이 성장하고 있다고 했다.


친구가 요즘 빠져있는 책은 '공부머리 독서법'이라고 했다.

"내가 공부를 해보니깐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도 알겠고, 울 엄마가 나 키울 때 실수한 것도 알겠고, 참 알게 되는 게 많더라. 애들 잘 키울라고 책 읽기 시작했는데, 내가 더 많이 크는 거 같다야."


친구가 북유럽의 교육에 대해서 이야기해줄 때에는 참 와닿는 말들이 많았다.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와닿은 것은 배움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것이었다. 친구는 아이들에게, '나도 잘 모르겠는데, 같이 한번 알아볼까?'라고 말하는 습관을 들여야겠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을 통해서 공부에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고 한다.


정말 맞는 말이다. 우리는 공부나 일에 스스로 동기 부여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남들이 다하니까 공부를 하고 일을 했다. 처음부터 "왜?"라는 동기 확인 질문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사회성이 생기기 시작한 무렵부터 동기 부여의 질문이 사라졌다. 나의 경우에는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에서 그것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어쩌면 사회가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모르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고 가르쳐 왔다는 느낌이 든다.


학교 다닐 때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을 질문하는 친구들에게 '수업 열심히 안 들어서 기본적인 질문을 한다'며 핀잔을 주는 선생님들이 있었다. 어떨 때에는 모르면 책 좀 찾아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런 상황에서 다른 아이들이 앞에서 당황하는 친구들을 많이 보았다. 그래서 나는 모르는 것이 있으면 체크를 해 두었다가 교무실에 쉬는 시간에 찾아가 따로 물어보거나 하였다. 모르는 것이 부끄러웠다.


이렇게 모르는 것을 부끄럽게 알면서 자란 어른들은 회사에서 모이게 된다. 회사에서는 '모르면 모른다고 하지 말고, 알아오겠다고 이야기하라'라고 했다. 신입 사원 시절에 발표자료를 만들어 오라는 지시에 대해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야 하는지 물어보고 호되게 혼이 난 적이 있다. '상사가 시키는 일에 왜가 어디 있냐, 일단 시키면 무엇이라 네가 알아서 가져와야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 상사도 자신이 누구에게 무엇을 발표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나에게 그렇게 이야기했을 것이다. 사실 회사 일의 많은 부분은 관습이고, 별 다른 이유가 없기 때문에 설명이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어떤 부분은 모른다고 인정하고 어떻게 생각하는 함께 이야기해보면 일의 효율이 훨씬 좋아졌을 것은 분명하다. 


모르는 것들은 참 다양한 종류가 있다. 자명하지만 내가 모르는 것도 있고, 정말 그 누구도 모르는 것도 있다. 나는 알고 있지만 상대에게 설명할 만큼은 잘 모르는 것도 있다. 이 모든 것이 '몰라서 부끄러운 것'으로 묶인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리고 모르면 알아와야 하는 것도 아니다. 어떤 것은 물어볼 수도 있고 지금부터 알아가면 되는 것도 있으며, 모르지만 잘 아는 사람에게 도움을 받으면 되는 것도 있다.


내가 스타트업을 시작하고 얻은 인생에서 가장 도움이 되는 것들 중 하나는 '모름을 부끄러워하지 않 것'이다. 우리 팀원들은 신기하게도 처음부터 이런 마음가짐이 있었다. 처음 '오늘도 하나를 알게 되었네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어안이 벙벙했다. 그때 나는 여태껏 이런 것도 모르는 나에게 속상한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2년을 함께 지내다 보니 나도 모르는 것을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덕분에 배움에 대해 더 적극적인 사람이 된 것 같다.




친구와는 그 이후에도 책과 스타트업과 행복과 메타버스에 이르기까지 많은 양의 수다를 떨고, 부족한 이야기는 다음에 하자고 하면서 헤어졌다.


"학교 다닐 때 H가 매번 너무 말 안 되는 질문 많이 했잖아. 걔 질문이 너무 엉성해서 속으로 욕 했지. 근데 지금 보니 내가 잘못했어. 난 무조건 받아들이기만 했는데, 질문을 하는 게 얼마나 대단해."

라는 말이 친구와 헤어지며 돌아오는 길에도 몇 번이나 떠올랐다.





#나를껴안는글쓰기 #나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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