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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상명 Aug 16. 2020

참을 줄 아는 지혜

참을 인(忍) 자 셋이면 살인도 피한다는 옛말이 있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참고, 견디면 그 어려움을 이겨 낼 수 있다는 뜻으로 내려와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이 '참는다'는 것을 좀 더 넓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참는다'는 것을 3개의 카테고리로 나누어 보자. 물론, 이 세 개의 카테고리가 완전히 구분되지 않고, 상호작용 되는 부분이 상당히 있겠지만 이해의 편의를 위해서 구분해 보자. 참는다의 첫 번째는 나의 생리적 욕구와 관련한 것들이 될 것이다. 두 번째는 내가 아는 지식과 관련한 것들이 될 것이고, 세 번째는 사회적 관계, 조직 생활과 관련한 것들이 될 것이다.


첫 번째, 나의 생리적 욕구와 관련한 것들을 보자. 당연히 인간의 기본적 욕구인 생리적 욕구들이 충족되어야 하겠다. 이는 인간을 생존시키는 원리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관계 속에서 나의 욕구 충족만을 위해서 행동한다면 이는 사회 유지를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나의 개인적 욕구 충족은 사회 유지와는 상충관계이기 때문에 사회는 교육을 통하여 개별 인간들이 생리적 욕구 충족을 어떻게 적절히 통제할 것인가를 가르친다. 같은 맥락에서 조직 생활에서의 생리적 욕구와 관련해서 생각해 보자. TV에서 직장인들의 점심 관련 광고에 부장님이 설렁탕을 먹으러 가자고 할 때 부하 직원들은 피자를 먹고 싶은 속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좋다고 하면서 부장님과 동행한다. 회식도 그렇고, 휴가 사용도 그렇다. 상사와 부하 직원 간에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 관점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이때 부하 직원 입장에서는 자기의 욕구를 어느 정도까지 표현할지에 대해서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얼마나 표현할지의 기준은 생리적 욕구와 관련한 것들이 나의 가치에 얼마나 영향을 주느냐에 따라서 판단이 달라질 것이다. 예를 들어 나에게 점심은 하루의 세끼 중에 유일하게 잘 먹을 수 있는 끼니라고 한다면 내가 원하는 것을 먹는 것이 맞을 것이다. 아침, 저녁을 간단히 먹는 식사 습관을 갖고 있어서 점심이 나한테는 제일 중요한 끼니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나의 상황과 의견을 부장님에게 정확하게 표현하는 게 맞을 것이다. 다만, 표현의 유연함을 갖추는 것이 좋겠다. 왜냐하면 부장님도 본인의 생리적 욕구에 기반하여 제안하였기 때문에 그 욕구를 거절하는 것임을 감안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침, 점심, 저녁 세끼 중에 한 끼가 점심이라고 생각한다면 부장님의 설렁탕 먹으러 가자는 제안에 크게 부담감이 없을 것이고, 받아들이면 된다. 이렇듯 생리적 욕구와 관련한 다른 것에 대한 판단도 이와 유사한 기준을 가지고 대처하면 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두 번째, 내가 아는 지식과 관련한 것들을 보자. 사람들은 훈수를 두는 것을 좋아한다. 조직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상사와 부하직원 관계를 떠나서 조직 구성들에게 훈수를 두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때 훈수를 잘 못 두면 상대방과의 관계를 해치게 되고, 나에 대한 평판을 좋지 않게 형성시킬 수가 있다. 제3자적인 관점에서 보면 당사자가 잘 보지 못하는 것을 나는 잘 볼 수 있기 때문에 훈수를 둘 수 있다. 이러한 점은 나에 대해서 다른 사람도 똑같이 행동할 수 있다. 다른 사람에 훈수를 두는 것은 좋아 하지만, 나에 대해서 다른 사람이 훈수 두는 것은 싫어한다면 그것은 이율배반이 되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훈수를 받는 것은 싫어하는 경향을 띤다. 그렇기 때문에 훈수를 둘 때는 반드시 사전에 상대방에게 사전 동의를 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상대가 훈수를 받을 준비가 안되어 있는데 불쑥 훈수를 두게 되면 나의 좋은 의도와는 다르게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내가 아는 지식이 오히려 나를 해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것은 코칭의 기본 원칙이 되기도 한다. 코칭을 받는 사람이 코칭을 받는 것에 대해서 동의를 하고, 래포(Rapport)가 형성될 때 코칭의 효과가 있다. 상사와 부하 직원 관계에서도 그렇고,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서도 훈수를 무조건 두게 되면, 그 관계가 더 악화될 소지가 있음을 항상 염두에 두고 나서야 한다. 그래서 훈수에서는 참는 것이 기본 원칙이라고 본다.


세 번째, 사회적 관계, 조직 생활에 관한 것들을 보자. 사회적 관계는 위의 두 가지 보다 더 복잡하다. 내가 나서야 할 때, 나서기를 참아야 할 때를 정하기가 쉽지 않다. 조직에서 언제 나서야 하고, 언제 나서기를 참아야 하는가? 이때 필요한 것은 조직 전체를 보면서 판단하는 것이다. 내가 속해 있는 조직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이익과 손해를 대변해야 하는 사안이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성과 창출과 관련된 사안이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맞는지, 안 맞는지는 그다음의 문제이다. 내가 나서는 내용이 전략적인 판단으로서 내 생각과는 비록 달라 내가  생각하는 내용과 다른 방향으로 결정되는데 영향을 준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것은 내가 잘못한 것과는 다른 것이다. 반면에 내 조직만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안이면, 나서는 것을 재고해 보고, 나서기를 참아야 한다. 더욱이 그것이 조직 전체 이익에 반하는 것이라면 재고해야 한다. 그런 경우 나서는 것을 참는 것뿐 아니라, 한발 물러서는 것이 필요하다.  또, 그 관계 속의 개인과 개인 간에서는 역지사지를 생각하면서, 그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기본으로 해야 한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개인을 평가하고, 조직에 속한 개인의 입장을 판단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평가를 하더라도 그것을 외부로 표현하는 것을 참는 것이 사회적 관계, 조직 내에서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형성하고, 유지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무조건 참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고, 자신의 의견을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이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또, 그것이 잘 받아들여지는 사회, 조직에 살고 있다. 그래도, 참을 줄 아는 지혜는 우리에게 사회적 관계, 조직생활에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게 해 주고 과를 창출해가는 성공적인 삶을 살게 해주는 역할을 영원히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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