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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성 Jul 23. 2023

선생님! 파란나라는 정말 있나요?

스승의 은혜

안녕하세요 선생님! 잘 지내고 계시나요?

어디 계시는지 알 수 없지만 많이 생각나요

슬슬 선생님 나이가 가까워져 그런가 봐요

기억 속 스물여덟 살 그대로인 선생님

늘 스무 살로 불러달라 하신 선생님

파란 나라를 이야기해 주시던 선생님

두근두근 콩닥콩닥 줄여서 '두콩쌤'

지금에서야 감사하다고 말씀드려요

꼭 한번 찾아뵙고 싶어요


열두 살은 가장 학교에 가고 싶은 때였어요

문방구 따라 올라가던 언덕 위 교문도

쉬는 시간마다 뛰어놀던 흙 운동장도

'외계인' '백곰'이라 부르던 친구들도 좋았지만

가장 좋은 건 선생님이 해주시던 수업이었어요

흐릿하지만 파란 나라 수업이 아직 기억나요

그 시간은 선생님처럼 '두콩' 설렜거든요

약봉지 속 사탕은 어쩜 그리 특별했는지 몰라요


그런 날도 있었어요 강현이 전학 가던 날

현진이가 울기 시작하더니 너도 나도 다 울어버렸죠

아마 교실이 울음바다가 돼버린 이유는

선생님이 계신 교실이라서 그랬던 것 같아요

우리들의 감성은 선생님처럼 순수했어요

고작 열두 살 아이에게 순수를 말하기가 이상하지만

아무렴 선생님과 우리들은 그랬거든요


선생님은 모두에게 그랬지만 저에게 더 특별했어요

마법사가 있다면 선생님일까요

일기장에 적었던 이야기가 이루어졌거든요

소풍 못 갈 것 같다 적으면 갈 수 있었고

컴퓨터가 없다 적었더니 어느 날 집에 놓여있었어요

일기장이 마법책 같아서 참 열심히 썼어요

물론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에요

도장이 좋았고 답글을 달아주시면 더 좋았어요

날씨 표현이 시인 같다 해주신 칭찬도 좋았어요

답글로 읽어보라 하셨던 '모모'는 제 '인생책'이에요


이렇게 학교가 좋아서일까요

열두 살은 집에 있기 가장 싫은 때였어요

눈부신 학교에서 돌아갈 반지하는 어두웠어요

언젠가 일기장이 마법책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때 생각했어요 선생님 같은 어른이 되고 싶다고

마법사가 아니어도 상관없었어요

생각이 바르고 마음이 따듯한 어른이면 만족해요

스물여덟 살이 된다면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 왔는데

벌써 선생님과 친구가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네요

친구가 되기 전 마지막으로 손들고 여쭤보고 싶어요


선생님! 파란 나라는 정말 있나요?

상상만으로 설레고 행복한 그런 나라 말이에요

노랫말에서는 꿈과 사랑이 가득한 나라라고 하잖아요

거짓말하셨을 리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파란 나라가 정말 있다 믿고 가르쳐주신 건가요

파란 나라는 그저 뜬구름 잡는 소리인가요

이 나이가 되니 '꿈, 희망, 사랑' 같은 말이 그렇다네요

세상은 아름답다 말하면 세상이 아름다워 되물어요

세상이 달아오르니 사람은 새빨갛게 익어가요

선생님은 어른이니까 알고 계셨겠죠


점점 모든 것이 빨갛게 물들어 가고 있어요

선생님도 보고 계시겠죠 가르쳐주신 것과는 다르네요

왜 노랫말에서는 그러잖아요

한마음으로 손잡고 만들어보자고요

그게 정말 가능할까요 생각만 해도 정말 어렵네요

두근보다는 철렁이고 콩닥 보다는 쿵이예요

아빠와 엄마의 꿈과 눈 속에도 없었거든요

그래도 선생님 말씀이었기 때문에 믿으려 했었죠

그마저도 뜬구름까지 점점 흐려져가고 있어요

언젠가는 생각조차 나지 않을 것 같아요


어쩌면 다 거짓말이겠죠 선생님 말고 저 말이에요

제가 했던 말들은 다 가짜예요 사실은요

배울 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어요

파란 나라가 없다는 것쯤은 말이에요

저는 아직 선생님처럼 될 수 없을 것 같아요

없어도 있다 말할 수 있는 그런 어른 말이에요

힘들어도 할 수 있다 말하는 그런 어른 말이에요

파란 나라를 이야기하는 선생님 같은 어른 말이에요

언제쯤 저는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싶어요


요즘 열두 살의 선생님 생각이 많이 나요

꼭 선생님 나이가 가까워져 그런 것은 아니에요

지금에서야 감사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디 계시는지 알 수 없지만 꼭 한번 찾아뵐게요

안녕히 계세요 선생님! 잘 지내고 계셔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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