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지면 꽃들은 서서히 빛을 잃고,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이 차분히 드러난다. 나는 그런 꽃들을 손끝에 담으며 시간의 흔적을 하나하나 만지고 느낀다. 누군가 내게 "왜 꽃을 말리나요?"라고 물어오면,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저 꽃이 가진 색과 향이 나와 대화하는 그 순간의 추억을 간직하고 싶어서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은 드라이플라워 정규 수업이 있는 날이다. 바다에서 주워온 유목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특별한 의미를 더했다. 오랜 세월 바람과 물결에 다듬어진 유목이 이번 수업에서 만날 각기 다른 드라이플라워와 어떻게 어우러질지 기대가 된다. 유목 위에 한 송이씩 꽃을 올리며, 나만의 이야기를 하나씩 엮어 나가는 작업이다.
가장 먼저 올린 것은 싱그러운 유칼립투스 다이브. 유칼립투스를 만질 때마다 느껴지는 시원한 향이 머리를 맑게 하고,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준다. 작은 열매가 달린 페퍼베리가 반짝이며 나만의 작은 숲을 만들어주고, 그 안에 천일홍, 수국, 그리고 안개꽃이 부드러운 빛으로 공간을 감싼다. 그렇게 탄생한 갈란드는 단순한 소품을 넘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평온과 치유의 느낌을 불어넣는다.
드라이플라워 수업에서는 꽃 이름을 기억하는 시간이 있다. 도화지 위에 꽃들을 하나씩 붙이며 그날의 꽃 이름을 적는 과정은 마치 나만의 작은 꽃 도감을 만드는 순간 같다. 유칼립투스, 페퍼베리, 천일홍, 수국, 안개꽃… 각 꽃의 이름을 적어 나가다 보면, 그 꽃과 나눈 짧은 대화가 머릿속을 스친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른 것처럼 꽃에도 각기 다른 매력과 향기가 있다. 누군가는 활기 넘치는 천일홍을 좋아하고, 또 누군가는 부드럽게 감싸주는 안개꽃에 끌린다.
이 수업은 그저 ‘무언가를 만드는 시간’을 넘어, 각자의 속도대로 마음을 채우는 시간이 된다. 완성된 갈란드를 집에 걸어둘 때마다 그날의 바람과 향기가 되살아나는 것 같다. 비록 오래되고 바랜 꽃이지만, 그 안에는 한때 생기를 머금었던 순간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래서 드라이플라워는 단순히 ‘말라버린 꽃’이 아닌, 시간이 지나며 깊어진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 같다.
이번 계절이 지나면 또 다른 꽃들이 찾아오겠지. 그때는 또 어떤 꽃이, 어떤 계절의 이야기를 전해줄까? 드라이플라워 수업은 나와 자연, 그리고 꽃이 소리 없이 속삭이는 이야기를 엮어가는 시간이다. 오늘 만들어낸 갈란드가 마치 나와 우리에게 작은 인사를 건네는 듯하다.
꽃과 바다, 그리고 나만의 갈란드 만들기. 이곳에서 나만의 이야기를 담은 힐링의 시간을 만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