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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횬 Apr 28. 2024

일상

일상 : (명사)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

일상이 평범한 것, 그것은 나에게 쉬운 일이었다. 쉬운일이니 평범한 날안에 특별한 날이 많았다. 그것은 비가 그친 다음날, 햇살에 흔들리는 나뭇잎에 한참 시선을 주며 감탄하는 특유의 긍정적 성향 때문이었다. 누구나 그렇게 삶을 바라보고, 흔들림이 없이 살고 있는 줄로만 알았다. 어리석었다. 작은 풍파들을 경험하는 것이 예방주사를 맞듯, 면역체계를 키워줘 큰 충격에 견딜 수 있는 것이었음을..., 그땐 몰랐다.


일상이 깨져 조각나 파편들이 흩어져 다시 마음을 찔렀다.


나: 몰랐네, 나에게 올 줄은..

현이: 삶이 그러네. 계속 다 좋을 수는 없네. 그게 삶인가?

나: 현이야, 나 멈출래. 그냥 잠시 멈춰 있어도 되겠지?


누군가의 '예스'가 필요했다. 그날 이후 나에 대한 불신이 가득 차 내 선택을 믿을 수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는 일도, 잠이 드는 일도, 그것을 선택하는 내가 못 미더워 눈이 떠질 때 눈을 떴고, 도저히 잠을 이길 수 없을 때 잠이 들었다. 평범한 일상이 흔들리고, 나에 대한 불신은 점점 커져갔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아무 선택도 하지 않는 편이 오히려 편했다. 현이에게 답을 듣고 싶어 다시 물었다.


나: 응? 잠시.. 조금 진정될 때까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날 두고 싶어. 어떤 것도 하지 않고.

현이: 야, 너. 그래, 알았어. 대신 밥은 잘 챙겨 먹기다. 옆에 있어줄까?

나: 아니야, 그냥 여기 나를 가만히 둬보고 싶어. 아무도 없이 혼자.

현이: 알았어. 친구야 이리 와봐.


현이는 말없이 나를 꼭 안아주었다. 그게 이상하게 평소와 다르게 더 따듯했다. 현이는 며칠 동안 나를 보러 왔지만 오래 머물지는 않았다. 생각보다 내가 잘 지낸다고 느꼈는지, 나에게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껴서였는지, 며칠 찾아오고는 한 번씩 전화로 내 상태를 확인했다. 그렇게 나는 완전히 부서진 일상을 흩어지지 않으려 부여잡고 100일이란 시간을 보냈다.


그에게 전화를 한일, 그것은 심장에 박혀 있던 파편들을 하나씩 빼내기 시작했다. 매일 밤 9시, 그와 수다에 가까운 대화를 끝내고 나면 편안하게 잠이 들었다. 나에 대한 불신을 작아지게 해 주었고, 예전의 나를 만나게 해 주었다. 하지만 그것은 평범한 일상도, 특별한 일상도 아니었다.


잡히지 않는 꿈과 같은 일, 세월을 거꾸로 잡으려는 그릇된 이기심이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그의 전화가 나를 붙잡아 준다는 것을, 지금 내 일상이 깨져 버린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그의 애씀이 느껴지자 의지가 되었다. 그러면 안 되는데 계속 의지를 했다.


그: 아무것도 하지 않고 편하게 지낸 날이 없었어. 단 하루도.

나: 이유는 뭐야?

그: 타의에 의해 뭔가를 하지 않는 날이 하루 있었는데, 에너지가 생각지 않고 그 시간이 무척 괴로웠어. 분명 소파에서 쉬고 있는데..., 편안하지 않았어. 그날 이후로는 일을 하지 않더라도 밖으로 나갔던 것 같아. 뭐든 하러.

나: 지금 난 어떨 것 같아?

그: 예전에 널 생각하면 너도 비슷하지 않을까?

나: 지금 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상과 친해지려고 엄청 애쓰는 것 같아. 왜 그런 거 있지? 나는 친해지고 싶어 다가가는데 상대는 외면하는 그런 상황?

그: 언제쯤 친해지는데?

나: 그런 건 없을 것 같아. 우린 너무 안 맞거든, 성향도.. 습관도.. 생각도.. 다 달라

그: 그럼 해. 시작해. 네가 좋아하는 걸 찾아봐.


그는 오늘도 희망을 준다. 그의 질문은 나를 발견하게 한다. 그래서 더 두려워졌다. 나는 그를 만나고 싶지 않다. 그는 내 일상을 다시 꽃 피울 것 같다. 그것이 무서워졌다.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 내 일상에 꽃이 다시 피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것은 다시 뜨거운 태양에, 혹은 물이 바짝 말라 시들어 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작품을 사랑한다. 부드러운 붓 터치는 몽환적인 화사함을 보여준다. 인상파 화가 중 가장 화려한 그림을 남겼다고 평가받는 그가 그린 작품에는 일상과 여가가 담겨 있다.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그의 말이 맞았다. 나 역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못 견디는 사람이었다. 늘 생산적인 일들을 하며 배우고 알아가는 것을 탐닉했고 그것은 내가 살아가는 삶의 가치였다. 누군가와 만나고, 대화를 하며 세상을 알아가는 기쁨도 컸다.


세상과 단절된 지금, 나는 작품을 다시 꺼내 본다. [Luncheon of the Boating Party 보트 파티에서의 오찬] 낭만적인 작품이다. 인물과 정물, 풍경이 한데 어우러져 편안한 일상을 보여준다. 그들의 대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 소리는 경쾌하고 즐겁다. 프랑스 세느강으로 따라 자리 잡고 있는 메종포네즈 레소토랑의 발코니에서 식사를 즐기며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들, 편안해 보이는 몸의 제스처들, 분명 날씨는 초여름일 테고, 그늘아래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하고 쾌적할 것이다. 중앙 비어 있는 곳에 자리 잡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그들과 함께 있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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