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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횬 Jun 01. 2024

회색 주택 1


이곳 작은 아파트 칠 층에 혼자 살게 된 지 벌써 일 년이 되어간다. 네 살 터울이 나는 삼촌과 사 년을 함께 지내며 불편함도 익숙해져 버려 오히려 삼촌이 이 집을 나가는 것이 아쉬울 정도였다. 아직도 한 번씩은 적적하고 외로운 감정이 불쑥 찾아왔다. 이상하게 그날도 그랬다. 파란 하늘에 햇살이 비친 세상의 색에 눈이 부셨는데, 축축한 감각이 마음에 닿더니 이내 세상의 색은 잿빛이 되었다. 비가 오려나?’ 공기 안에 머금은 수분이 많아져 피부가 이내 끈적해지고 잿빛에 담긴 바람의 온도마저 따끈해졌다. ‘분명 조금 전까지 시원한 바람이었는데...,’ 괜히 바람 탓을 해본다. 스토리 구상에 진척이 없자 가슴이 답답하던 참이었다. 갑자기 '쿵'하는 소리가 났다. 이상한 기분에 창을 열어 밖을 본 기는 심장이 멎는 듯 깜짝 놀라 가슴팍에 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리곤 혹여 잘못 본 게 아닌지 두 눈을 비벼댔다가 크게 뜨고 다시 보았다.


'삼촌이다' 분명 삼촌이었다. 그가 즐겨 입는 옷이었고, 멀리서 봐도 알 수 있는 그의 실루엣이었다. 눈앞은 흐려졌지만 사람들이 모여드는 장면이 보였다. 꿈인 듯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흐릿해졌다. 삼촌, 맏이인 기의 엄마와 막내 삼촌은 나이차가 꽤 나는 편이라 기와 삼촌은 다섯 살 차이다. 사춘기를 보내며 그에게 삼촌은 가장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고, 호칭은 삼촌이었지만 형과 같은 존재였다. 순간 예전 생각들이 스쳐가며 멍해지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정지된 상태일 때 전화가 울렸다. 기의 엄마다.


"기야, 삼촌이.... 삼촌이..."

"엄마.... 내가.. 봤어."

"선화병원으로 바로와."


정지 상태는 풀리고 곧장 정신이 차려졌다. 창문 밖을 보니 삼촌이 없다. 벌써 119가 와서 데리고 간 것이다. 차키를 찾는 손이 덜덜 떨렸다. 운전을 하면 안 될 것을 금방 예감하고 차키는 두고 밖으로 나와 택시를 잡았다.


"기사님, 선화병원이요"


도착하면 어디로 가야 할까? 기는 자신의 목적지가 어디일지, 어디로 가야 할지를 고민했다. 그곳이 입원실이거나 수술실 앞이거나 중환자실이기를 간절히 바라는 동안 택시는 선화병원 앞에 도착했다.


"기야"


기의 엄마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울먹이며 병원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휘청거렸다. 기는 엄마의 어깨를 붙잡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묻고 싶었지만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가자"


엄마는 기를 장례식장으로 데리고 갔다. 기는 하얗고 까만색이 가득한 그곳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왜 삼촌은 자신의 아파트를 선택한 걸까?', '삼촌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방금 전 바닥에 엎드려 있는 삼촌을 보았는데, 이렇게 빠르게 이곳으로 올 수 있는 걸까?' 삼촌의 집은 그의 집과 30분 거리다. 방송국에서 다큐멘터리 PD로 일했다. 누구보다 자신의 일을 좋아했다. 기와 함께 살다가 1년 전 작은 주택을 구입해 이사를 했다. 삼촌은 다큐멘터리 하나가 마무리되고 나면 일부러 공백기간을 만들어 여행을 다니다가 주택으로 이사를 한 뒤로는 나무와 꽃을 가꾸고 텃밭을 만들어 수확한 채소들을 기의 집에, 엄마의 집에 배달해주곤 했다. 공백기간에 다녔던 여행 대신 홀로 그 집에서 뭔가를 가꾸며 보내는 시간을 가졌다. 이제 서른다섯, 너무나도 아까운 나이에 왜 그는 그 선택을 했을까? 엄마와 이모들의 곡소리는 밤새 이어졌다. 할머니께서 느지막이 가진 아이는 여섯 남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엄마와 이모들이 키우다시피 했던 것이다. 특히 엄마에게는 각별한 존재였다. 그 이유가 삼촌과 기의 관계를 더 애틋하게 한 것이다. 기는 이상한 점 투성이라 생각했다. 왜?라는 물음표는 계속해서 커져갔다. 며칠 전 만난 삼촌에게는 어두운 모습은 전혀 없었다. 조금 달라진 것은 삼촌은 이사한 이후 쉬는 날 거의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며칠 전에도 기가 삼촌 집으로 가 얼굴을 봤다. 김치찌개에 텃밭 상추에 쌈을 싸서 둘은 맛있게 먹고 친구와의 약속으로 기는 저녁쯤 집에서 나왔다.


"삼촌, 부검하기로 했고, 현장검증하러 경찰이 곧 집으로 간대"

"열쇠, 네가 좀 맡아줘. 아, 그리고 삼촌이 집을 네 앞으로 남긴다고... 여기"


엄마는 경찰에 보내야 한다고 사진을 찍어두라고 하며 종이 하나를 건넸다.


'기, 내 소중한 조카이자 친구이자 동생........(이하 생략)'


기는 삼촌의 유서라는 종이가 자신에게 쓴 편지인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용에는 온통 기와의 추억이 가득했다. 그리고 집을 기의 앞으로 남긴다는 이야기로 편지는 마무리되었다. 기는 가슴이 답답해졌다. 계속해서 삼촌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라 머리를 꾹 누르며 생각을 멈추려 했다. 하얗고 까만색이 가득한 이곳이 숨이 막혀 왔다. 기는 밖으로 나갔다. 이상하게 아직도 하늘빛은 잿빛이었고 불어오는 바람도 끈적거리는 따뜻함이었다. 5월의 날씨가 며칠 째 이런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기는 의지가 되었던 삼촌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갑자기 왈칵 쏟아지려는 눈물을 참으려 두 손으로 주먹을 꽉 쥐고 고개를 숙였다. 끈적한 바람이 닿아 두 눈에서 쏟아지는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르며 멈춘 듯 두 볼이 뜨거워졌다. 한동안 그렇게 기는 하얗고 까만 곳 가까운 어딘가에 서있었다.


하얗고 까만 그곳에 얼마나 머물렀을까? 일분이 한 시간처럼 지루하게 느껴졌던 그때, 내 삶은 내 의지와 다른 방향으로 유턴했다.


검안서가 도착한 후  장례는 절차대로 진행되었고, 타살의 흔적이 없다는 부검의 결과를 듣고 난 후부터 잿빛 하늘에 뜨거운 바람이 불어오던 그날 창밖으로 본 삼촌의 처참한 모습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선명해지며

구토증세가 시작됐다. 당연히 음식물은 내 몸으로 흡수되지 못했고, 소화제 릴레이가 시작되었다. 음식을 먹는 일이 거추장스러웠고, 이상하게 배가 고프지 않았다.


삼촌을 가까이 두고 지낸 엄마의 충격이 누구보다 컸기에 나는 구역질로 고생스러운 상태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으로 온전하지 못해 매우 불안정한 엄마를 돌봐야 했다. 엄마는 며칠째 음식을 먹지 못했고, 삼일째 되는 날은 곡소리를 내다 실신하기도 했다.

그때 우리 가족들은 처음으로 가족을 상실한 아픔과 함께 삼촌의 선택을 계속해서 믿지 못했다. 모두가 믿을 수 없는 찝찝한 의아함을 마음에만 가지고 있다가

사흘째 되는 날 이모가 울분을 토했다.


”이건 말도 안 돼, 현이가 그럴 리가 없잖아, 나 좀 설득해줘 봐, 응?!!”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모든 가족이 계속해서 맺혀 있던 눈물을 훔쳐내곤 속에 품고 있던 의문을 던져내기 시작했다.


“구김살이 없던 아이였어”

“방송일을 얼마나 좋아했었는데, 이건 분명 뭔가 잘못된 거야 “

“며칠 전에 집에 와서 된장찌개를 얼마나 맛있게 잘 먹었었는데 “

“이건 분명히 뭔가 있어. 스스로 그런 선택을 할 애가 아니야”

“기야, 네 생각은 어때?”

“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계속해서 바닥에 추락사한 사촌의 모습에서 머릿속 시야가 벗어나질 못해 그들의 이야기가 웅웅 거리는 소리로 느껴지다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상한 점은 못 느꼈어?”

“주택으로 이사하곤 방송국 말곤 집 밖으로 거의 나오지 않았어요. 지금 제가 느끼는 이상한 건 그것뿐이네요. 삼촌이 여행을 정말 좋아했는데, 1년 정도 여행도 멈췄어요. 엄마랑 며칠 전에 삼촌이 너무 집에만 있는다고 걱정스러운 이야기를 했죠. “

“처남에게 우리가 모르는 일이 있었을까요? 처형?

“그날따라 기랄 현이 이야기를 하면서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긴 했어요. 혹시 여자친구가 생긴 게 아닐까? 라며 웃으며 이야기를 끝냈지만 왠지 그날 밤에 잠들기 전까지 마음이 찝찝했어요 “

“주택 현장검증이 끝났나요? “

“네, 어제 마무리가 되고 오후쯤 전화 주시기로요 “


현장검증에서 삼촌의 유서라도 발견된다면 가족들의 모든 질문에 답이 될 것이다. 나는 오히려 그 편이 모두의 마음을 편하게 해 줄 방도라 생각하며 그 답을 기다렸다. 오후에 들려온 이야기에 우리 가족은 다시 혼란의 상황에 갇혔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는데.. 조카분 잠시 이쪽으로 와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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