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에세이』 2024년 6월호 이달의 에세이 수록작(40-43쪽)
이 글은 『월간에세이』 2024년 6월호에 이달의 에세이로 실린 글임을 밝혀 둡니다.
대학생 시절부터 매년 명절 전날이면 고향 김천시에서 고등학교 동창들과 회포를 풀곤 한다. 이십 년 넘도록 명절 하루 전에 보내는 옛 친구들과의 모임은 며칠 전부터 기다려지는 즐거운 시간으로 이어지고 있다.
친구를 만나는 즐거움은 이십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지만, 시간의 흐름 때문인지 친구들과 만나는 모양새에는 변한 점도 제법 있다. 2차는 물론 3차도 마다하지 않던 친구들은 이제 다들 가족을 생각해서인지 1차에서 모임을 마무리한다. 분위기만 달라진 게 아니다. 20대 시절 김천역 주변의 구시가지에서 회포를 풀던 친구들은 언제부터인가 조금 더 번화한 김천시청 근처에서 모임을 하더니, 요즘에는 KTX 김천(구미)역이 자리 잡은 혁신도시에서 주로 모임을 한다. 두 장소는 1980년대까지는 많이 외진 곳이었지만, 시청 근처는 1990년대 중반부터, 혁신도시는 2010년대 중반부터 급격하게 도시개발이 이루어졌으니 우리 모임은 어쩌면 김천시의 도시개발, 도시구조 변화의 시간적 흐름을 따라간 듯도 하다.
부모님 댁과 혁신도시의 약속장소는 각각 김천시의 서쪽 끝과 동쪽 끝에 해당할 정도로 거리가 멀거니와 바로 가는 버스도 없어서, 오래전 명절 모임 때 자주 가던 김천역에서 내린 다음 약속장소로 가는 버스를 갈아타기로 했다.
시청 주변, 혁신도시 등에 대규모의 도시개발이 이어지면서 구도심인 김천 시내의 상권이 많이 위축되었다는 이야기야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지만, 혁신도시의 약속장소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둘러 본 김천역 주변의 모습은 코로나-19 범유행이 시작되기 전은 물론 재작년, 작년과 비교해 봐도 크게 달랐다. ‘시내’다운 시내 구실을 하던 시절보다 활기가 줄어든 정도가 아니었다. 모르긴 해도 상가 건물의 절반 이상이 공실이었고, 상가 입구를 살펴보니 하나 건너 하나에 건물임대를 알리는 스티커가 붙었다. 고등학교 시절 미팅의 성소였던, 그때만 해도 김천시에는 하나밖에 없어서 더더욱 중고생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유명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의 지점은 공실이 된 지 오래다. 김천역 바로 옆에 있던 5층짜리 건물은 그 입지조건 덕분에 명절마다 5층에 있던 호프집이 불야성을 이루었는데, 휴대전화 판매장이 있는 1층 말고는 모조리 공실이다. 공실이었던 기간도 제법 길어 보이고, 3층의 미용실 간판은 이미 빛이 바래 있다.
그나마 영업을 하는 가게도 상당수는 이주자를 대상으로 할 법한 외국음식점이나 식료품 상점 정도다. 몇 안 되는 역전길의 행인들도 절반 이상이 외국인이다. 한때는 김천의 시내, 중심가였던 곳이 상권도 인구도 모두 새로 개발된 곳으로 빠져나가면서, 쇠락한 도심에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만 남는 주거 여과 현상이 일어난 모습이 너무도 선명하게 보였다.
명절 때 만난 친구들은 변함없이 반가웠고, 참치 부위별로 맛보는 법을 친절하게 알려 주신 참치가게 사장님으로부터는 친절함에 섞인 격조에 작은 감동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시청 일대에, 혁신도시에 질서정연하고 화려한 시가지가 자리 잡은 반대급부로 역전 구도심이 쇠퇴할 대로 쇠퇴한 모습은 당연히 반갑지 않았다.
요즘 언론 지면에서는 극저출산, 인구감소에 대한 우려와 더불어, 국토개발, 도시개발 소식이 연이어 들려온다. 깔끔한 시가지, 좋은 건물이 들어서는 일 자체를 싫어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구는 한정되어 있는데, 심지어 줄기까지 하는데, 새로운 공간을 찾아서 도심지를 만드는 식의 도시개발과 국토개발이 이어진다면 결국 쇠퇴하는 공간, 낙오되는 공간도 계속해서 등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토와 도시가 개발의 혜택을 입은 장소와 배제되고 차별받는 장소로 분단되고 차별받는다면, 결국 그 장소와 공간에 사는 사람들의 차별도 심해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평등이라는 가치 역시 개발 못지않게 널리 회자하는 듯도 하다. 평등이라는 개념도 여러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겠지만, 장소와 공간의 지리적 평등 역시 사람의 삶, 사회의 지속과 발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개발의 혜택을 듬뿍 받은 고향의 혁신도시에서 친구들과 즐거운 명절 전야를 보냈지만, 다음 명절에는 조금은 지리적 분단과 차별이 줄어든 고향의 모습을 보고픈 바램도 담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