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의 기억_꽤 드나들었던
어느 날, 365일 중 360일은 붙어 다니던 낭만이가 일본 회사에 합격했다. 일본에 가면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유명 유통 회사에 합격한 것이다. 그렇게 도쿄로 떠난 낭만이 덕분에 당시 부산에서 일을 하던 나는 꽤 자주 도쿄에 갔었다. 그때는 에어부산 특가로 몇 개월 뒤의 티켓을 예매하면 꽤 괜찮은 가격에 도쿄를 다녀올 수 있었다.
그렇게 도쿄에 가면 낭만이네 집에 머물렀고, 같이 또는 혼자 도쿄와 나리타 부근을 돌아다녔다. 낭만이가 출근을 하고 나면 혼자 나리타산 신쇼지를 산책하거나 스타벅스에 앉아 시간을 보냈고, 낭만이의 퇴근 시간에 맞춰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집에 돌아와 타코야끼나 오코노미야끼 같은 것들을 만들어 먹으며 현지인스러운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도쿄 방문은 내가 스물아홉에서 서른이 되던 연말이었다. 당시 업무 스트레스로 괴롭기도 하고 서른이 된다는 싱숭생숭한 기분에 당장 모레 출발하는 도쿄행 비행기 표를 끊었다. 늘 나사 하나 빠진 것처럼 쿵짝이 잘 맞아 어울리던 낭만이와 함께 서른이 되고 싶었기 때문에. 저녁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나리타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낭만이를 만나러 갔다. 우리는 그 동네에서 가장 핫하다는 이자카야에 갔고, 마지막 남은 바bar 자리에 간신히 엉덩이를 붙일 수 있었다. 그렇게 나사 하나를 잠깐 풀어놓고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다 뭔지 아주 시원한 기분까지 들었다.
그리고 12월 31일 밤, 우리는 많은 일본인들처럼 나리타산 신쇼지로 향했다. 새해 참배를 위해 엄청난 사람들이 몰려든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늘 한산하기만 하던 신쇼지 상점가에 사람들이 가득했고, 새해를 맞이하러 길을 나선 사람들 사이에 갇혀 떠밀리듯 신쇼지까지 갔다. 사실 한국에 있을 때는 서른이 된다는 생각에 싱숭생숭했던 것 같은데 낭만이를 만나서 노는 순간 29.9세인 우리가 웃겼다. 신나게 29.9세의 우리를 영상으로 남기면서 신쇼지까지 떠밀려 갔다가 30세가 되어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29.9세에서 30세가 되었던 아주 특별했던 그때의 도쿄.
낭만이가 일본 생활을 청산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도쿄에 갈 일이 없었다. 한일관계가 악화되기도 했고, 코로나이기도 해서 딱히 도쿄에 갈 생각을 하지는 않았는데, 코로나로 인해 봉쇄되었던 하늘길이 다시 조금씩 열리기 시작할 무렵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도쿄행 티켓을 끊었다. 그러고 보니 첫 직장을 퇴사한 후에도 도쿄에 갔었는데 마치 그게 루틴이 된 것처럼 두 번째 직장을 퇴사하고, 그리고 이번 세 번째 직장을 퇴사하고도 도쿄를 가게 되다니.
2021년, 몇 년 만에 다시 찾은 도쿄. 나리타 국제공항에 내려 나리타 익스프레를 타고 도쿄 시내를 향해 막 출발했을 무렵 낯익은 동네가 눈에 들어왔다. 나리타였다. 한때 부지런히 돌아다녔던 친숙한 그 동네가 빠르게 스쳐 지나갔지만 잊고 지냈던 나리타에서 보낸 시간이 물밀듯 밀려왔다. 그래, 내가 여기서 서른이 되었지. 이제는 서른보다 마흔이 가까운 나이가 되었지만 나리타는 계속해서 나와 낭만이에게 영원히 젊은 추억으로 떠오르리라.
아마 이번에는 나리타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도쿄 시내로 이동할 예정이라 나리타를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또다시 만나면 반갑게 눈에 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