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새로운 분야의 도전으로 인한 갈등
고요함이 감도는 연수원 복도를 걸으며 자꾸만 주머니에 손을 넣게 된다. 젊은 시절엔 당당했던 걸음걸이가 이제는 어색하게만 느껴진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오후의 햇살은 따스하지만, 이곳의 공기는 묘하게 차갑다. 연수원 교실마다 젊은 학생들의 활기와 열정이 가득하고, 그 사이에서 나만 동떨어진 이방인처럼 느껴진다.
벽에 걸린 일정표와 공지사항들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듯하지만, 60대 후반의 내게는 마치 다른 세상의 언어처럼 보인다. 책상 위에 놓인 노트북과 태블릿을 다루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조금은 크기가 다른 노트북 꺼내드는 내 모습이 문득 초라하게 느껴진다.
수십 년간 서울대 영어교육학과 교수로 일했던 자부심은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한 겹씩 벗겨지고 있다. 젊은 강사의 새로운 분야에 대한 강의가 이어지고 내 오랜 지식은 구식이 되어가고, 디지털 도구를 활용한 현대적 교육 방식 앞에서 나는 자꾸만 움츠러든다.
서울대학교에서 30년 넘게 영어를 가르쳐온 나는 퇴직 후 또 다른 도전을 위해 디지털 자격증 과정에 등록했다. 나의 경험과 지혜가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교수님, 이 앱 어떻게 다운로드하는지 아세요?" 친절하게 물어보는 20대 조교의 말에 심장이 내려앉는다. 평생 '교수님'이라 불리며 누군가를 가르치던 내가, 이제는 가장 기본적인 것조차 모르는 학생이 되었다.
수업 시간, 강사가 던지는 질문에 답하지 못할 때마다 내 안에는 깊은 균열이 생긴다. 지식의 전달자에서 이제는 어설픈 수용자가 된 나. 평생 쌓아온 전문성은 이곳에서 아무런 가치가 없다. 오히려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는 데 방해가 되는 듯하다.
점심 시간, 다른 수강생들은 자연스레 무리를 지어 대화를 나눈다. 내 나이대의 수강생은 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은퇴 후 새 경력을 쌓으려는 40-50대다. 그들조차 나와는 다른 세대다.
"선생님, 요즘 노인분들은 유튜브를 많이 보시나요?" 선의에서 던진 질문이겠지만, 그 순간 나는 '노인'이라는 단어에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평생 '교수'였던 내가 이제는 그저 '노인'일 뿐이다.
퇴직한 지 1년, 나는 여전히 아침에 알람을 맞춰놓는다. 습관일까, 아니면 여전히 사회에 속해있다는 착각을 유지하기 위함일까. 연수원에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문득 창밖을 바라본다. 빠르게 지나가는 도시의 풍경처럼, 세상은 나를 놓아두고 계속 변화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지식과 경험보다 기술과 새로움에 가치를 둔다. 수십 년의 경험과 전문성이 단 몇 년의 기술 발전 앞에서는 무력해진다. 평생 배움을 가르쳐왔지만, 정작 내가 배우는 입장이 되었을 때 그 무게를 견디기 어렵다.
하지만 오늘, 연수원의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60대 여성과의 대화가 내게 작은 희망을 주었다. 그녀도 퇴직 후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었고, 비슷한 좌절감을 경험했다고 했다.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웃음 짓게 되었다. ☕
"우리가 평생 쌓아온 것들이 완전히 쓸모없어진 건 아니에요. 다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죠."
그녀의 말이 내 마음에 깊이 와닿았다. 어쩌면 나는 내 가치를 인정받기보다, 새로운 방식으로 기여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젊음만이 가치 있는 사회에서, 우리의 경험과 지혜는 어디에 있나요? 수십 년의 전문성과 깊이 있는 통찰이 단지 나이라는 숫자 앞에서 무너지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60대, 70대의 우리들은 여전히 배우고, 성장하고, 기여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도움이 아닌 기회입니다. 우리의 경험을 새로운 형태로 나눌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합니다. 세대 간 지식과 경험이 서로 존중받고 공유되는 사회, 그것이 우리 모두를 더 풍요롭게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가 함께 걸으며 서로의 이야기를 나눌 때, 그 자괴감은 조금씩 희망으로 바뀌어 갈 것입니다.
오늘도 연수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지만, 이제는 조금 다른 마음으로 걸어봅니다. 내일은 조금 더 가벼워질지도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