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에 따라오는 상념

창 밖에 비가 내리고 난 부지런히 좌판을 두드른다 재촉하는 자는 없다

창가에 부딪히는 빗방울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직장을 떠난 후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문득 생각하게 됩니다. 반짝이는 빗방울처럼 찰나의 순간들이 모여 어느덧 제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직장의 고단함은 뒤로 하고, 이제는 제 삶의 주인공으로 다시 서게 되었습니다.


퇴직이라는 말은 얼마나 무겁게 다가오는지요. 그동안 정체성을 부여해준 직함과 일상을 내려놓는 순간, 많은 이들이 방향을 잃고 방황합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매일 아침 알람 소리에 일어나 출근하던 삶에서 벗어나 홀로 마주한 고요함은 때로는 위안이 되기도, 때로는 무거운 침묵으로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첫 번째 월요일, 모두가 분주히 출근길에 오를 때 저는 창가에 앉아 따스한 햇살과 함께 차 한 잔을 마셨습니다. 그동안 미뤄왔던 소소한 행복을 누리는 시간이었지만, 곧 이 평온함이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으로 변해갔습니다. 인생 대부분을 바쳐온,탄탄한 직장에서의 경력은 이제 과거가 되었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질문이 끊임없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아직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을까?"

이 작은 질문이 저를 움직이게 했습니다. 50+세대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들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인생 이모작 지원센터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강좌에 참여했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저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었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에서 용기를 얻었습니다.


퇴직 후 몇 달간 블로그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일기처럼 시작한 글이 차츰 제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는 공간으로 변모했습니다. 타로 카드에 관심이 있던 저는 타로를 통한 자기 성찰 방법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했고, 의외로 많은 분들이 공감하고 반응해주셨습니다. 그 작은 시작이 지금의 유튜브 채널로 이어졌고, 타로와 자기 성장에 관한 강의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정말 만만치 않았습니다. 유튜브 알고리즘을 이해하고 콘텐츠를 제작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고, 강의를 준비하는 과정은 직장 생활 못지않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구했습니다. 출판을 위한 원고를 쓰는 밤에는 지난 직장 생활이 그립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적어도 퇴근 후에는 쉴 수 있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새로운 도전들은 제게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는 이유가 생겼고, 제가 가진 경험과 지혜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꼈습니다. 직장에서는 정해진 역할만 수행했다면, 이제는 제 관심사와 열정을 따라 다양한 분야를 탐색할 자유가 있습니다.

퇴직 후의 여정이 항상 순탄한 것만은 아닙니다. 때로는 경제적 불안감에 밤잠을 설치기도 하고,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과정에서 좌절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책을 출판하는 과정에서 겪은 여러 난관은 제게 또 다른 인내심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어려움이 있기에 작은 성취가 더 값지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퇴직 후 삶에서 가장 소중하게 배운 것은 '시간'의 가치입니다. 직장 생활에서는 늘 빠듯하게 흘러가던 시간이, 이제는 제 선택에 따라 채워집니다.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정하는 것은 온전히 제 몫이 되었습니다. 가끔은 그 자유로움이 버겁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 시간 속에서 진정한 나를 발견해가는 여정이 감사하게 다가옵니다.

지금 퇴직을 앞두고 있거나 이미 퇴직한 분들께 조심스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새로운 시작은 늘 두렵습니다. 하지만 그 두려움 속에서도 한 걸음씩 내딛다 보면, 예상치 못한 기쁨과 보람을 발견하게 됩니다. 블로그, 유튜브, 강의, 타로, 출판... 제가 도전한 것들이 누구에게나 맞는 길은 아닐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용기입니다.


퇴직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풍부한 경험과 지혜를 가진 우리 세대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합니다. 우리가 걸어온 길이 누군가에게 등불이 될 수 있고, 우리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빗방울이 모여 강을 이루듯, 퇴직 후의 작은 도전들이 모여 새로운 인생을 그려갑니다. 때로는 빗소리처럼 잔잔하게, 때로는 폭포수처럼 강렬하게. 그 여정에 함께하는 모든 분들께 따뜻한 응원을 보냅니다. 우리의 두 번째 인생이 더 풍요롭고 의미 있기를 바랍니다.

창밖으로 비가 그치고 무지개가 피어오릅니다. 오늘도 새로운 도전을 위해, 한 걸음 더 내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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