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 무료

깜깜한 터널 속 마주 오는 등(燈) 하나 있었다

초등학교에 다시 입학하다

by 시가 별빛으로 눕다

1. 단절의 터널, 탕진된 세월과 짓밟힌 이름

친정이라는 이름은 내게 안식처가 아닌, 서서히 나를 옥죄어오는 올가미였다. 5년 전, 내가 그 터널 속으로 스스로를 유배 보낸 것은 살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사람들은 흔히 핏줄은 물보다 진하다 말하지만, 그 진한 피가 때로는 가장 치명적인 독이 되어 혈관을 타고 흐른다는 사실을 나는 뼈아프게 체중으로 견뎌냈다.

가장 먼저 무너진 것은 '큰딸'이라는 이름의 위엄이었다. 장녀라는 숙명은 언제나 희생의 다른 이름이었고, 친정엄마는 그 희생을 지휘하는 냉혹한 지휘자였다. 엄마의 손짓 한 번에 나의 권위는 모래성처럼 허물어졌고, 내가 일궈온 삶의 조각들은 '가족'이라는 명분 아래 난도질당했다. 금전적인 갈등은 단순한 숫자의 싸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신뢰의 파산이었고, 존재의 부정이었다. 그렇게 땀 흘려 일궈낸 아파트 4채가 연기처럼 허공으로 흩어지는 것을 지켜보며, 나는 내 생의 기둥이 뿌리째 뽑혀 나가는 소리를 들었다.

무엇보다 용서할 수 없는 것은 내 아이들에게 새겨진 주홍글씨였다. 어른들의 탐욕과 무질서한 감정의 배설구로 내몰렸던 아이들의 눈동자. 그 맑은 눈망울에 맺힌 상처는 지울 수 없는 얼룩이 되어 내 가슴에 박혔다. 내 부모와 형제들이 내 아이들에게 준 상처는, 내가 받은 고통보다 백 배는 더 시리고 아팠다. 부모라는 방패가 되어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밤마다 나를 괴롭혔고, 그들을 향한 증오는 차갑게 식어 단단한 벽이 되었다.

그렇게 쌓인 벽들이 모여 거대한 터널을 만들었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그 깜깜한 어둠 속에서 상처를 핥으며 홀로 서 있었다. 나도 조금씩 늙어가며 마음의 빗장을 만지작거리기도 했지만, 문득문득 떠오르는 그날의 잔인한 기억들은 다시금 내 마음의 문을 철컥, 하고 닫아걸게 만들었다. 이 터널은 끝이 없을 것만 같았다.

2. 어둠을 걷어낸 한 마디, '수술' 헌신과 의존, 그 팽팽한 슬픔

어제 남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평생을 공직자라는 이름 아래 곧고 성실하게 살아온 동생이었다. 퇴직 후에는 그간의 짐을 내려놓고 남은 생을 오롯이 자신의 것으로 채워가길 바랐건만, 운명은 그에게 쉴 틈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퇴직과 동시에 엄마의 전담 보호자가 되었다. 노쇠한 엄마는 이제 동생 없이는 단 한 걸음도 자립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고, 동생은 자신의 노후를 반납한 채 엄마의 일거수일투족에 매달려 하루를 보낸다.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동생의 목소리에는 짙은 피로가 묻어 있었다. 여든일곱 엄마의 백내장 수술 소식. 그 투박한 문장 속에는 단순히 눈을 고치는 일을 넘어, 엄마의 남은 생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동생의 고단함이 함께 실려 있었다. 동생에 대한 미안함과 안쓰러움, 그리고 자식의 손을 놓지 못하고 끝내 의지할 수밖에 없는 엄마의 무기력함이 내 가슴을 짓눌렀다. 한때는 그 서슬 퍼런 위세로 내 삶을 휘둘렀던 엄마였으나, 이제는 스스로 눈 하나 밝히지 못해 아들의 등에 업혀 병원을 오가는 가련한 노인일 뿐이었다.

'수술'이라는 단어는 내 마음속 깊이 가라앉아 있던 어둠을 단번에 밀어냈다. 내가 5년 넘게 쌓아 올린 단절의 벽 너머에서, 엄마는 점점 시력을 잃어가며 캄캄한 세상을 더듬거리고 있었다. 동생의 헌신이 엄마의 세상을 겨우 지탱하고 있을 때, 나는 내 상처가 아프다는 이유로 그들의 고군분투를 외면해왔던 것은 아닐까. 엄마의 눈을 가린 하얀 막이 비단 육체의 질병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명치 끝이 아려왔다.

동생의 지친 목소리는 나를 흔들어 깨웠다. 미움과 원망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에, 노모를 모시는 동생의 고단한 어깨와 빛을 잃어가는 엄마의 흐릿한 눈망울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터널 끝에서 마주 오는 그 가련한 등불 하나를, 나는 이제 더는 외면할 수 없었다.

3. 고(膏)를 내는 시간 , 핏줄이라는 잔인한 인연의 덧칠

내가 움직이는 것은 결코 사죄가 아니다. 5년의 세월, 내가 그 터널 속에 스스로를 가둔 것은 나의 잘못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약탈당했고, 지휘당했으며, 내 삶의 근간이었던 아파트 네 채가 허공으로 흩어지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보아야 했던 피해자였다. 장녀라는 허울 좋은 이름 뒤에서 나는 그들의 말도 안 되는 폭거를 온몸으로 받아낸 과녁이었을 뿐이다. 그 서슬 퍼런 칼날 아래서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핏줄이라는 이름의 지독한 족쇄가 내 발목을 짓누르고 있었기에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내 아이들의 눈동자에 새겨진 상처를 볼 때마다 나는 부모와 형제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는 대신, 내 살점을 뜯어내며 울분을 삼켰다. 그것은 착한 심성이 아니라, 끊어내지 못한 천륜이 부린 잔인한 마법이었다.

그런데 오늘, 나는 다시 무거운 몸을 일으켜 시장으로 향한다. '수술'이라는 그 투박한 단어 하나가 내 영혼에 박힌 녹슨 못을 건드린 탓이다. 엄마의 눈이 멀어간다는 소식 앞에, 내가 5년 동안 공들여 쌓아 올린 증오의 성벽이 잠시 안개에 가려졌다. 억울함이 사라진 것도, 그날의 상흔이 아문 것도 아니다. 다만 '엄마'라는 거부할 수 없는 두 글자가, 내 마음의 지옥을 잠시 덮어버린 것뿐이다. 나는 우슬뿌리를 구하고 싱싱한 닭발을 고른다. 이것은 화해의 손짓이 아니라, 내 몸속에 흐르는 거역할 수 없는 피가 시키는 본능적인 몸짓이다. 엄마라는 존재는 내게 가장 큰 상처를 준 가해자인 동시에, 내가 차마 외면하지 못하는 가장 가련한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닭발을 씻고 우슬을 다듬으며 나는 고를 내는 일을 계획한다. 가스레인지 위에서 냄비가 끓어오르는 동안, 그 뜨거운 김 속에 내 억울한 눈물도 섞여 들 것이다. 뭉근한 불 위에서 뼈와 살이 녹아내려 진한 고가 되어가는 과정은, 어쩌면 내 가슴 속에 맺힌 응어리를 억지로 녹여내는 고문과도 같은 시간일지 모른다. 나는 엄마의 관절을 위해 이 약을 달이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이 행위는, 그토록 당하고도 끝내 냉정해지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가학적인 연민인지도 모르겠다.

약이 고아지는 냄새가 온 집안을 채울 때, 나는 다시금 깨달을 것이다. 내 상처는 치유된 것이 아니라 그저 독한 약취에 잠시 마비되었을 뿐이라는 것을. 그럼에도 나는 불꽃을 줄이지 못한다. 핏줄이라는 것은 이토록 징글징글하게 나를 붙들고 늘어진다. 엄마가 전하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에 내 심장은 다시 요동치겠지만, 그것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에 가깝다. 그 고마움의 무게가 다시 나를 짓누를 것을 알기에, 나는 이 고를 내는 시간 동안 수만 번 마음을 다잡는다. 끓어오르는 냄비 안에는 엄마의 쾌유를 비는 마음과, 나를 파괴했던 그들을 향한 서늘한 증오가 뒤섞여 형체를 알 수 없는 진액으로 화해가 아닌 '흔적'으로 남을 뿐이다.

4. 닫히는 문 앞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오늘을 산다

약이 다 고아지고 나면, 나는 다시 나를 지키기 위해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글 것이다. 엄마의 "고맙다"는 목소리는 달콤한 위로가 아니라, 언제든 다시 나를 베어낼 수 있는 양날의 칼날처럼 서늘하게 다가온다. 나는 안다. 이 찰나의 평화 뒤에는 반드시 먹구름처럼 밀려올 배신감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지난 세월, 내가 내준 진심이 갈갈이 찢겨 돌아왔던 그 수많은 밤을 기억한다. 아파트 네 채와 함께 날아가 버린 것은 단순한 재산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그리고 부모라는 존재에 대한 신뢰였다. 배신감에 몸서리치며 어두운 방안에서 홀로 신음하던 그 고통스러운 회상의 시간들이 이제는 제발 조금씩 줄어들기를, 그 지옥 같은 기억의 파편들이 나를 덮치는 주기가 조금만 더 길어지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동시에 나는 묻는다. 아이처럼 고마워하며 환하게 웃는 엄마의 그 모습은 진심일까. 그 웃음 뒤에 또 다른 요구와 또 다른 폭거가 숨겨져 있지는 않을까 의심하는 나 자신이 가엽고도 처절하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수술대 위에 오를 노모의 두려움 앞에 서 있는 그 노년의 여인이 보여준 기쁨이 오롯이 진심이기를 바란다. 그것이 거짓이라면 나의 남은 생은 너무도 허망할 것이기에, 나는 속을 줄 알면서도 그 웃음을 믿어보기로 한다. 이것은 엄마를 위해서가 아니라, 무너지지 않고 버텨온 나 자신을 위한 마지막 예우다.

천륜을 끊고 살아가는 이 땅의 수많은 자식들에게 마음의 말을 전하고 싶다. 누군가는 핏줄을 저버린 비정함을 탓하겠지만, 그 단절은 죽지 않기 위해 선택한 최후의 생존 방식이었음을 나는 안다. 사랑받아야 할 곳에서 상처 입고, 안식처여야 할 품에서 내동댕이쳐진 영혼들이 얼마나 고독한 터널을 걷고 있는지 나는 뼈저리게 이해한다. 부모를 등지고 돌아서던 그날, 당신들의 심장이 얼마나 난도질당했을지, 그 죄책감과 증오 사이에서 얼마나 많은 밤을 불면으로 지새웠을지 나는 감히 짐작한다. 단절은 배신이 아니라, 더 이상의 파괴를 막기 위한 아픈 방어막이었음을 당신들은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이제 나는 다시 마음의 문을 닫을 준비를 한다. 하지만 이전과는 조금 다를 것이다. 완전히 꽉 막혀 숨조차 쉴 수 없던 어둠의 문이 아니라, 아주 작은 틈 하나는 남겨둔 문이다. 그 틈으로 오늘 고아낸 약 기운 같은 희미한 온기 하나가 드나들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인간이며, 피로 맺어진 인연이라 해서 반드시 아름다울 수만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상처는 여전하고 흉터는 깊지만, 그 흉터를 안고도 오늘 하루를 살아내는 당신과 나, 우리 모두는 충분히 애썼고, 충분히 장하다. 깜깜한 터널 속에서 마주 오는 그 작은 등불 하나를 바라보며, 나는 다시 나의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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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직장생활을 마치고 2년여 동안 요양시설에서 치매 노인들과 함께 하였고 현재는 AI,인권, 노인의 성,치매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강의와 크리에이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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