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다시 일어나기까지의 시간들
61세에 정년퇴직이라는 보장된 나이를 버리고 59세에 명예퇴직을 선택했습니다. 2년 6개월이라는 시간을 당겨서 퇴직하기까지는 글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그물처럼 단단한 조직에서의 계획적인 담금질이 있었습니다.
퇴직 후 침대는 제 몸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되었습니다. 3개월 동안 이불 속에서 천장을 바라보며 흐르는 시간과 함께 저 자신도 녹아내렸습니다. 아침이면 눈앞에서 꼬물대는 두 아이가 방문을 열고 "엄마, 오늘도 회사 안 가?" 라고 묻는 맑은 눈동자가 가슴을 찔렀습니다. "엄마가 몸이 좀 아파서..."라는 말로 대답하며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울음을 삼켰습니다. 그렇게 밤낮없이 이어지는 공허함 속에서 우울증은 제 영혼 깊숙이 뿌리를 내렸고, 몸은 점점 무거워졌습니다. 어느 날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와 냉장고를 열어보고는 "엄마, 먹을 것이 없어"라고 말하는 순간, 중력보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야 했습니다. 한 발 내딛기조차 버거웠지만, 두 아이의 엄마라는, 그 지워지지 않는 이름표가 저를 어둠 속에서 세상으로 기어 나오게 했습니다.
사람의 시선이 두려워 최대한 사람을 만나지 않는, 그러면서도 생계를 이어갈 일을 찾았습니다. 결국 좁디좁은 골목길 끝에 간판도 제대로 없는 조그만 가게를 얻어 반찬가게를 시작했습니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이었습니다. 첫날, 떨리는 손으로 고춧가루를 섞다가 그릇을 깨뜨렸고, 김치를 담그며 소금 간을 얼마나 해야 할지 몰라 밤새 인터넷을 뒤졌습니다.
처음 찾아온 손님은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여기 전에는 뭐하셨어요?"라고 물었습니다. 그 순간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서러움을 꾹 눌러 삼켰습니다. "그냥... 직장 좀 다녔어요"라고 짧게 대답했을 뿐입니다. 그날부터 주변의 시선들이 따가웠습니다. "저 사람 원래 회사 임원이었다던데", "명예퇴직 했다더라", "결국 저렇게 끝나는구나" 같은 수군거림이 들릴 듯 들리지 않을 듯 귓가를 맴돌았습니다.
그런 시선들 속에서도 저는 매주 금요일마다 동네 독거노인 세 분께 반찬을 무료로 포장해 드렸습니다. 처음에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위선적인 행동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르신들의 주름진 손이 제 손을 꼭 쥐며 "고마워, 참 맛있더라"라고 말씀하실 때마다 제 안의 무언가가 조금씩 치유되었습니다. 가게 매출은 형편없었지만, 그 작은 봉사가 저를 지탱해주는 힘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는 손님은 점점 줄었고, 예전 직장 동료들이 가끔 지나가다 힐끗거리는 시선이 날카로운 칼처럼 가슴을 찔렀습니다. 1년 6개월을 버텼지만, 더 이상은 견디지 못했습니다.
반찬가게를 정리한 후, 먼지 쌓인 서랍 속에서 오래전 취득한 교사자격증을 꺼내들었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먼지를 털어내며 이것이 마지막 희망이라 생각했습니다. 학교 시간강사로 지원하기 시작했지만, 새로운 시작은 철벽처럼 단단했습니다.
"나이가 좀 많으신 것 같은데...""젊은 선생님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습니다..."
면접에서 들려오는 말들은 공손했지만 결과는 늘 같았습니다. 이력서를 낸 스무 곳 중 열아홉 곳은 불합격이었습니다. 메일함에 도착하는 거절 메시지를 볼 때마다 가슴이 무너져 내렸지만, 두 아이의 엄마이자 가장인 저는 무너질 수 없었습니다.
밤마다 아이들이 잠든 후, 노트북 앞에 앉아 제 인생의 아픔을 글로 풀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울분을 토해내는 수준이었습니다. 키보드를 두드리며 흐르는 눈물이 손등을 적셨습니다. 글을 쓸 때만큼은 숨이 턱 막히는 현실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글 좀 써보세요, 언니."
우연히 만난 문학 동아리 회원의 권유로 무료로 책을 발간해주는 인터넷 사이트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아무도 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밤마다, 때로는 새벽 세 시, 네 시까지 글을 다듬고 또 다듬었습니다. 퇴고하는 과정에서 글은 단순한 하소연에서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이야기로 변해갔습니다.
"당신의 글이 제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용기를 얻었어요."
낯선 이들의 댓글이 하나둘 달리기 시작했고, 그것이 제게는 살아갈 이유가 되었습니다. 6개월, 1년... 시간이 흐르며 첫 번째 책 '어둠 속의 불빛'이 탄생했습니다. 교정을 보느라 밤을 새우고, 표지 디자인을 고르느라 아이들과의 약속도 미루었습니다. 두 번째 책 '다시 서다'를 준비할 때는 컴퓨터가 고장 나 모든 원고를 잃어버려 처음부터 다시 썼습니다. 세 번째 책 '새로운 나, 새로운 길'을 완성했을 때는 양손의 관절염으로 손가락을 펴기 어려웠습니다.
그 3권의 책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상실감, 배신감, 두려움, 그리고 끝내 피어오른 희망까지... 제 영혼의 피와 눈물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았고, 인세라고 할 만한 수입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저는 제 안에 숨어있던 또 다른 저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새로운 시작'이었습니다.
그렇게 제 60대가 시작되었고, 세상이 말하는 '촛불 하나, 미역국 하나, 전화 한 통' 없는 환갑을 지나 진갑(進甲)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어제의 태양은 이미 땅속 깊은 곳에 관으로 들어가 버렸지만, 오늘이라는 선물과 함께 시작한 을사년은 조금씩 터널에서 빠져나오고 있습니다.
3군데 서류를 낸 곳이 모두 합격이었습니다. 그렇게 죽어라 되지 않던 곳도 합격이 되니 오히려 불안하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제 두 번째 인생은 새롭게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제, 저는 이 길의 끝에서 새로운 시작점을 발견합니다. 제가 걸어온 이 험난한 여정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하지 못한 서러움을 안고 살아가는 이 시대의 수많은 중년들에게 손을 내밀고 싶습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어머니이자 아버지, 누군가의 아내이자 남편으로 살아오며 자신의 이름을 잊고 살았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우리만의 꿈과 희망이 있었고, 그것을 다시 찾아야 할 때가 왔습니다.
오십 대의 끝자락에서 예순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명예퇴직이라는 이름의 쓰디쓴 현실을 맞닥뜨린 이들에게, 사회가 던진 '이제 당신은 필요 없다'는 차가운 선고 앞에 무릎 꿇은 이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오히려 진짜 우리를 위한 시간이 이제야 시작되었다고.
노을과 함께 빨간 이불을 찾는 파도가 춤추는 어느 바닷가에서, 매일 아침 햇살을 받으며 상추도 뜯고 고추도 따면서, 제가 좋아하는, 아니 제가 사랑하는 글도 쓰고 노래도 부르면서 살아갈 날들을 상상합니다. 그곳에서 저는 더 이상 누군가의 평가에 움츠러들지 않을 것입니다.
길을 잃고 방황하는 이들에게 등대가 되고 싶습니다. "여기 당신과 같은 길을 걸었던 이가 있어요. 괜찮아요,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라고 말해주는 목소리가 되고 싶습니다. 우울한 밤, 폭풍우 치는 마음의 날씨 속에서 작은 우산이 되어줄 이야기들을 전하고 싶습니다.
누군가는 제 이야기를 통해 내일 아침 한 번 더 용기 내어 일어나기를, 누군가는 제 글을 읽고 자신의 상처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갖기를, 누군가는 저처럼 50대에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하기를 바랍니다.
인생이라는 거친 바다에서 우리는 모두 같은 배를 타고 있는 여행자입니다. 때로는 파도에 휩쓸리고, 때로는 폭풍우를 만나고, 때로는 안개 속에서 방향을 잃지만, 결국 우리는 각자의 항구를 찾아갑니다. 저는 그 여정에서 만난 모든 상처와 눈물이, 지금의 제가 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선물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 깨달음을 함께 나누며, 저와 같은 아픔을 겪는 이들의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가는 동반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것이 제가 꿈꾸는 '새로운' 세상입니다.
삶이 우리에게 던진 돌이 빛나는 보석으로 변하는 순간, 그것이 바로 '새로운' 시작의 아름다움입니다. 어제의 상처가 오늘의 힘이 되고, 오늘의 눈물이 내일의 웃음이 되는 그 여정 속에서 저는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저 자신을 발견합니다.
인생의 봄, 여름, 가을을 지나 또 다른 봄을 맞이하는 나이, 제게 주어진 이 '새로운' 계절을 감사함으로 맞이합니다. 모든 시작은 낯설고 두렵지만, 그 낯섦 속에서 피어나는, 전에 없던 나의 모습을 기대합니다. 새로운 길, 새로운 빛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