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6.22~6.25 치앙마이 (6)
또 다른 아침
다음 날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 전날 찜해두었던(?) 새로운 요가원으로 향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치앙마이에서의 3박 4일은 몹시나 짧은 일정이었는데 아침 일찍 하루를 시작한 덕분인지. 혹은 별다른 계획 없이 보냈기 때문인지 제법 알찬 시간을 보냈던 것 같아요.
치앙마이에서 요가하기 2
그랩을 타고 도착한 <Satva Yoga>. 전날 방문한 <Freedom Yoga>가 아늑한 다락방같은 공간이었다면 이곳은 탁 트인 시원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어요. 수련자들도 많았는데 처음 방문한 사람은 저뿐인지 모두들 익숙한 듯 보였습니다. 인사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한국 분들도 꽤 계셨어요.
정확한 수업명은 기억나지 않지만 수련의 방식이 전날의 빈야사와는 좀 달랐습니다. 옆에 있는 대나무 기둥을 활용해 근육을 이완하고 몸의 정렬을 맞추는 시간이었는데 동작 자체가 힘든 건 아니었지만 그동안의 수련 스타일과는 달라 조금 헤맸어요. (땀 이모지 마구 넣고 싶어요;;;)
특별한 사바아사나
요가 수련의 꽃인 사바아사나. 송장 자세라고도 합니다. 마치 죽은 송장처럼 온 몸에 힘을 풀고 바닥에 스며드는 몸을 느끼며 이완하는 자세인데 저는 이 사바아사나를 정말 정말 좋아합니다.
이전의 동작들을 열심히 하고 난 후의 사바아사나는 더욱이 좋아요. 단순히 쉬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바닥에 녹아드는 듯한 내 몸의 무게를 느끼고, 호흡소리가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는 과정을 살피다 보면 이 또한 명상 혹은 수련이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사바아사나를 하다보면 가끔 가수면 상태에 빠질 때도 있고 어린 시절의 기억 혹은 까맣게 잊고 있던 대화 같은 것들이 갑자기 떠오르는 신비한 경험을 할 때도 있어요. 이 몽롱한 느낌이 좋아 요가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낯선 수련에 긴장한 탓인지 이날의 사바아사나는 특히나 더 편안했습니다. 긴장감이 스르르 풀려 제대로 이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감고 있던 눈을 뜨는 사바아사나의 ‘진짜 마지막’ 순간. 천장이 꽉 막혀있는 도심에서의 실내 요가와 달리 맑은 하늘과 푸르른 나무, 원색의 장신구들이 시야에 환하게 펼쳐졌습니다.
꼭 만화 속 한 장면처럼 낯설고 생경한 풍경이었어요. 덕분에 제 머릿 속도 한 결 맑아진것 같았습니다.
가벼워진 마음으로 산책하기
요가가 끝난 후 숙소로 돌아와 동네 산책에 나섰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없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구글맵을 보다 보니 공원부지가 눈에 들어왔어요. 정확히는 <Phra Chao Kawila Monument>.
커다란 나무 그늘 말고는 특별할 게 없는 곳이었지만 그래서 더 특별한 곳이기도 했습니다. 점심 도시락을 먹고 낮잠을 자고 있는 한 여인과 매점 앞에서 쉬고 있는 아저씨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새 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정말 고요한 곳이었어요.
저는 이 한적한 휴식공간에서 뜨거운 아메리카노와 시원한 생수를 번갈아 마시며 소소한 행복을 누렸습니다. 하루키의 <태엽감는 새>를 읽다가 책 속에 나오는 연주곡을 찾아 듣기도 하는. 아주 평화로운 시간이었어요.
그러다 문득, 그동안 뭐가 그렇게 바쁘고 여유가 없어 이런 시간도 갖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어요. 지난 1년 동안 나는 정말 행복했나, 하는 생각을 하다 보니 마음이 조금 헛헛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지금 이 순간을 아주 그리워하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는데 그 예감은 매우 정확했습니다.
2년이 지난 지금, 그곳에서의 시간이 몹시나 그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