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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나귀똥 Oct 04. 2021

방콕1. 퇴사여행의 시작

2019. 7.18~7.27 방콕 (1)

진짜 퇴사여행

2019년 여름, 약 10일간의 방콕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한 달 전 셧다운 휴가로 찾은 치앙마이에 이어 이번에는 진짜 퇴사여행이었어요.


평소처럼 짧지만은 않은 일정이었고 업무 생각 없이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다는 좋은 요건을 갖추었지만 사실 제 맘은 그리 편하지 않았습니다.


1년 동안 모든 걸 쏟아부은 일에서 손을 떼고 나니 가슴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허전했어요. 게다가 헤드헌터를 통해 제안을 받아 입사가 거의 확정시 되었던 전 직장의 경쟁사로부터 “투자 받는 게 잘 안되어서 여러 포지션의 채용을 잠정 보류하기로 했다. 한 달 정도 기다려줄 수 있냐”라는 실망스러운 연락을 받기도 했습니다.

-내가 정말 원했던 것이 퇴사였나
-인생은 정말 계획대로 되지 않는구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저의 퇴사여행은 생각만큼 홀가분하지 않았습니다.


오랜 단짝 친구들. 낡고 헤져 지금은 모두 내 곁을 떠났다


낯설게, 새롭게

이번 방콕여행의 기록은 10일간의 여정 중 극히 일부에 대한 기록이 될 것입니다.


2018년부터 휴가를 쓸 수 있는 기회만 있으면 고민 없이 방콕을 찾은 탓에 이전과 다른 ‘새로운 경험’이 그다지 많지는 않았거든요. (게다가 불과 한 달 전에 치앙마이에 다녀왔고요)


시간이 한참 흐른 후 기억에 남은 것은 결국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낯설고 강렬했던’ 추억들뿐이라는 게 그렇지 않은 날들이 더 많은 지금을 조금 슬프게 하는 것 같아요.


'3번 출구에서 만나요!'


방콕과 야간비행

여유로운 일정에 마음이 급하지 않았던 저는, 자정이 넘은 시간에 도착하는 밤 비행기를 타고 수완나품 공항 인근에서 여유를 부려보기로 했습니다.


수년 전 동생과 처음으로 방콕에 갔을 때에도 늦은 밤 공항에 도착했어요. 당시에는 다른 선택지를 생각지도 못하고 무조건 택시를 잡아 3박 4일간 머물 호텔로 향했습니다. 초행길에 심야 택시라니. 쫄보 자매인 저희는 한시의 긴장감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숙박비가 그리 싼 호텔도 아니었는데 그렇게 하루를 날려버린 것이 꽤 아깝게 느껴집니다. 당시만 해도 방콕에 대한 ‘진짜 정보’가 좀 부족했던 것 같아요.


시간이 흘러 알게 된 것은 방콕에는 밤에 도착하는 여행객들이 많아 체크인 시간 기준으로 체크 아웃을 할 수 있는 숙소가 많다는 것. 일단 공항 인근에서 쉰 다음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프로여행객들이 많다고 합니다.


게다가 몇 차례 홀로 방콕을 찾으면서 나름의 노하우도 생겼어요. 지하철이 운행할 시간대에 도착하는 밤 비행기라면 지하철로 갈 수 있는 적당한 위치의 저렴한 도미토리에서 1박을 하는 것. 조금 불편한 공간에서 눈을 붙여야하지만 다음날 아침이 되면 ‘나는 무리하지 않고 편안한 상태에서 본격 여행을 시작한다!’와 같은 자아도취에 젖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지하철 운행이 끝난 심야 시간대에 도착하는 늦은 비행기였어요. 떠나기 전 혹시나 하고 찾아보니, 저처럼 심야에 도착하는 여행객들을 위해 픽업 서비스를 해주는 공항 인근의 숙소가 있더라고요. 바로 여기다! 싶었습니다.


미리 약속해둔 장소에 도착한 커다란 승합차를 보고 살짝 쫄기도(?) 했지만 약 10분 만에 숙소에 도착하고 나니 '가격 대비 너무 좋은 서비스다!'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효율적인 숙소 <MORN-ING HOSTEL>


MORN-ING HOSTEL

수완나품 공항과 가까이하고 있는 <MORN-ING HOSTEL> 저렴한 가격에 널찍한 1인실을 갖추고 있는 효율적인 숙소였습니다. 과거 지하철을 타고 도심 인근에서 머물렀던 도미토리에 비하면 훨씬  쾌적하고 고급스러웠어요.  자고 일어나, 다음에도  비행기를 타면 무조건 여기 와야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게다가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조식까지! 끽해야 시리얼 정도가 아닐까 싶었는데 나름의 정성이 들어간 조리식이 나왔습니다. 덕분에 더 기분 좋은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어요.


조식을 제공하는 1층의 식당


차갑게 식은 것은 다소 아쉬웠지만 의외의 조식에 감사했다


여담, 여행과 향수

여담이지만 저는 여행 때마다 향수를 구매합니다. 어떤 여자 연예인이 ‘여행을 추억하기 위해 향수를 산다’고 인터뷰한 걸 보았는데 저도 비슷한 이유에요. 물론, 평소에 쓰던 향수가 떨어져 같은 제품을 재구매하는 경우도 있지만 기왕이면 평소에는 쉽게 살 것 같지 않은 유니크한 향수를 저렴한 면세가로 도전해 보려 합니다. 그러다 우연찮게 인생 향수를 찾게 될 때도 있어요.


이름 모를 연예인의 인터뷰가 기억에 남는 것은, 저 또한 향수가 불러일으키는 여행의 추억에 깊이 공감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한참 흐른 후 여행지에서 뿌렸던 향을 다시 맡으면 그곳에서 보고 느꼈던 아주 섬세한 기억들이 불현듯 되살아나곤 해요. 참 반갑습니다.


인생 향수가 된 <에메로드 아가르>


당시의 저는 아뜰리에코롱의 <에메로드 아가르>를 구매했습니다. 지금은 국내에서 단종되어 쉽게 구매할 수 없는 제품이 되어버렸는데, 당시의 사진들을 보다 보면 하나같이 <에메로드 아가르>의 기분 좋은 우드향이 떠올라요.


이런 것도 Tip이라면 Tip이 될 수 있을까요. 면세품으로 산 향수는 한 이틀 정도 반듯하게 세워 둔 다음 쓰곤 하는데 이를 참지 못하고 바로 뿌렸다가는 제품이 갖는 본연의 향이 잘 나지 않을 수도 있어요. 비행 중 마구 마구 흔들렸을 테니까요.



여담이 길었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낯선 방콕 여행’ 이야기를 이어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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