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용 애니메이션 <퍼피 구조대> 예찬
지난 10여 년 사이 북미에서 가장 성공한 아동용 애니메이션 IP 중 하나로 <퍼피 구조대(PAW patrol, 2013~)>가 있다. 어드벤처 베이라는 가상의 작은 해안 도시에서는 공권력 대신 여섯 마리 강아지들로 이루어진 자경단이 각종 사고와 민원에 대응하는데, 이들이 바로 퍼피 구조대이다. 화재 진압과 인명구조에서부터 요인 경호, 재해 복구까지 못하는 일이 없는 강아지들에게 인간 시민들은 전적인 신뢰와 지지를 보낸다.
2023년 현재 어느덧 열 번째 시즌을 맞게 된 <퍼피 구조대>는 재능TV와 투니버스 등 네 개 방송사를 통해 한국 어린이들에게도 소개되었다. 넷플릭스를 비롯한 주요 OTT 서비스는 우리말 더빙과 원어판을 모두 지원하는데, 쉬운 일상언어 위주의 대사가 영어 입문용으로 적합하다는 평가 때문에 일부 가정에서는 아이들보다 학부모에게 더 인기가 높다. 그런데 강아지들의 귀여운 활극을 가만히 시청하다 보면 교육 효과가 언어적인 부분에만 국한되지 않음을 알게 된다.
<퍼피 구조대>의 제작사인 스핀 마스터(SPIN MASTER)의 창업 아이템은 다름 아닌 90년대를 풍미한 친환경 장난감 ‘잔디 인형(Earth Buddy)’이다. 얼굴이 그려진 흙뭉치 위에 잔디가 마치 머리카락처럼 자라는 이 인형은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식물 관찰을 하도록 돕는 한편, 최후에 화단이나 야산에 쏟아 버리면 쓰레기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었다. 스핀 마스터가 이후에 출시한 완구와 애니메이션에서도 인종, 성, 장애 등과 관련된 진보적 가치가 엿보인다. <퍼피 구조대> 또한 예외가 아니다. 화산섬 지구대 파견근무자는 휠체어를 타는 장애견이며, 청렴한 인간 공직자나 과학기술인이 대개 유색인 여성으로 그려지는 반면 악역은 백인이 도맡는 등 다분히 의도적인 장치가 산재해 있다.
개성 넘치는 여섯 강아지 대원들 중에서도 퍼피 구조대를 유독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존재는 바로 로키이다. 여타 품종견 대원들과 달리 로키는 잡종인데다가 주특기가 환경미화 및 재활용이다. 각 대원에게는 분신과도 같은 출동용 차량이 있는데, 로키의 차량은 당연히 쓰레기 압축 분쇄기 트럭이다. 평소 대민지원 때만이 아닌 긴급구조 현장에서도 로키의 트럭은 소방차나 헬리콥터만큼 유용하다. 천재적 두뇌의 소유자인 로키가 쓰레기와 잔해를 재활용해 무너진 시설을 임시 복구하거나 구조에 필요한 장치들을 순식간에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작중 로키의 활약은 적어도 세 가지 측면에서 교육적이다. 첫째로 어린이들이 막연히 동경하는 경찰·소방 업무 못지않게 미화 노동 또한 가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준다. 아울러 다소 과장된 방식이라 해도 재활용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쓰레기 배출을 신중히 하도록 유도한다. 마지막으로 각 인종과 특성을 대변하도록 배정된 강아지들의 품종—엘리트 백인에 해당하는 저먼 셰퍼드 등—중에서 가장 이질적인 잡종견이 특출난 지능을 지닌 미화 전문가라는 점에서 사회 내 비주류에 대한 존중이 드러난다.
시대가 변해도 5세 전후의 어린이, 특히 남아들에게 경찰관과 소방관은 부동의 인기 직업군이다. 제목에 구조대 혹은 포스(force, 부대)가 들어간 숱한 아동용 애니메이션이 아니었다면 아이들도 이렇게까지 공무원을 지망하지는 않으리라 확신한다. 이들 작품 속에서 경찰공무원은 보통 영민하고 책임감 있는 리더, 소방공무원은 힘세고 용감한 거한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의무대원은 실존하지 않는 핑크색 앰뷸런스를 운용하는 홍일점이다. 매년 숱하게 쏟아지는 아류작 중 의무대원 T.O.가 아예 없는 경우만 해도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아동용 구조대 애니메이션의 설정은 천편일률적이다.
여타 유사작들과 달리 <퍼피 구조대>는 상업적 성공을 위한 전형성의 바탕과 참신한 진보적 토핑의 균형을 절묘하게 맞췄다. 급진주의자의 눈에는 여전히 여섯 강아지 대원 중 여성이 단 한 마리에 불과한데다 하필 핑크색 헬리콥터의 조종사라는 점에서 <퍼피 구조대>도 여전히 갈 길이 멀어 보일 것이다. 하지만 미화원이 단역도 아닌 레귤러 멤버로 활약하는 아동용 애니메이션은 실로 전무후무하다. 약 160개국 어린이들이 시청하는 작품에서 주인공 중 하나가 쓰레기 수거 트럭을 타고 다닌다는 점 자체가 아동용 애니메이션만이 아닌 영상예술 전체로 보아도 큰 혁신이다.
편견에 반하는 방향으로 캐릭터 디자인을 하는 시도가 국산 아동용 애니메이션에서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퍼피 구조대>와 비슷하게 강아지들이 초능력 전투요원으로 활약하는 <포텐독(2021)>이 대표적이다. 리더인 잡종견을 필두로 주인공측 진영에 적대 세력보다 다분히 평범한 외모의 요원들을 배정하고, 누가 봐도 육탄전 담당일 것 같은 근육질의 적이 사실은 폭력을 혐오하는 기계공학자임을 밝히는 등 <포텐독>은 끝없이 의도된 위화감을 선사한다. EBS 방영 당시 악당이 악당답게 비열한 행동을 한다는 이유로 유해성 논란에 휘말려 후속 시즌 제작이 무산되지만 않았다면 분명 더 많은 클리셰 파괴를 보여주었을 것이다.
많은 가정에서 매일 몇 시간씩 시청하게 되는 아동용 애니메이션에 대한 몰이해와 무시는 유익한 작품의 발굴과 시청지도를 불가능하게 한다. 보호자의 무관심 속에 장르 내 비동시대성은 날로 심해지고 있다. 쓰레기 수거 차량을 탄 잡종견이 영웅적으로 인명 구조를 하는 사이, 다른 한편에서는 조신한 핑크색 여성 비버가 공들여 만든 샌드위치를 절대 주방에 출입하지 않는 우악스러운 남성 동료들이 먹어 치운다.
노동 존중과 같은 진보의 슬로건이 몸도 마음도 더 이상 성장하기 어려운 어른들에게 곧바로 받아들여지기란 불가능하다. 대신 한창 유튜브 보여달라며 울고 있는 아이들이 주역이 된 시대의 보편적 가치를 선점하기 위해서라도 아동용 애니메이션에 더 큰 관심이 필요하다.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한국도 로키 한 명보다 훨씬 더 많은 숫자의 쓰레기 수거 트럭을 탄 주인공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