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PD의 맛있는 이야기
종로 3가 탑골 공원 뒤 삼거리, 낙원상가 앞.
순대국밥 거리와 아귀찜 거리가 공존하며 그 유명한 3000원 송해 선생님 국밥집이 있는 곳.
조선을 이어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가장 오래된 중심가의 뒤 안. 익선동이 핫플레이스가 되면서 젊은이와 늙은이가 교차하는 골목에 평양냉면 노포가 있다. 유진식당.
평양냉면 한 그릇에 11,000원. 창업주의 유언 때문에 가격도 마음껏 올리지 못하는 노포다.
유명 평양냉면 값이 15,000원을 오가는 요즘, 유진식당은 2년 전에 올려서 11,000원이다. 맛이 진하네, 촌스럽네, 투박하네, 말들도 많지만 난 맛있다. 같이 간 가족도 팬이 됐다. 특히 평양냉면 맛에 푹 빠진 20대 아들은 면치기를 하며 감탄 연속이다.
“와~ 우래옥 못지않아. 맛있다, 맛있어”
종로 3가 낙원상가 부근의 풍경은 허름하다. 낙원상가의 단조로운 시멘트 건물은 무뚝뚝하게 서 있고, 상가 옆 국밥 골목은 공기는 언제나 꼬릿 하다. 인사동 초입의 건물들은 세월의 때가 가득하고, 흔한 프랜차이즈 치킨집 하나 찾을 수 없다. 중심가의 번듯함이 없는 종로 3가는 낯익은 편안함이 있다. 낙원상가 옥상의 허리우드 극장에서 영화를 보던 18살에도, 기타를 사던 21살에도, 아귀찜 골목에서 만취했던 33살에도 이곳은 똑같았다. 낡고 허름했다. 변함이 없기에 종로 3가의 뒤 안은 편안했다.
오랜만에 갔더니 면을 뽑는 여사장님의 등이 구부정하다. 누구에게 맡기지도 못하고 힘들어 죽겠단다. 유진식당은 어쩔 수 없이 오픈 주방이다. 주방이 가게 입구에 있다. 출입구 앞 공간에 가벽을 치고 면도 뽑고, 빈대떡도 부친다. 전국 냉면 노포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줄만 잘 서면 면을 삶는 사장님과 이야기도 나눌 수 있다.
“사장님 여기는 분창(면을 뽑는 구멍 뚫린 틀) 몇 호 쓰세요?”
괜히 아는 척하는 나의 질문에 사장님 대답이 명쾌하다.
“몰라요. 예전부터 쓰는 틀 써요”.
예전 그대로인 이곳은 종로 3가다.
유진식당의 냉면은 구수함이 일품이다. 짭짤한 육향의 육수와 면의 어우러짐이 좋다. 냉면 이외에 다른 음식도 수준급에 값도 저렴하다. 유진식당의 모든 메뉴를 다 시켜도 10만 원 언저리다. 이 동네 토박이 분들에게 만만한 가격은 아니지만, 그래도 싸긴 싸다. 가성비 으뜸의 이 집 음식은 기본에 충실하다. 빈대떡은 고소하고 폭신하다. 소고기 수육 한 접시에는 우설을 비롯한 4가지 부위가 곱게 담겨 있다. 잡내 없이 깔끔하다. 빼놓지 말아야 할 것이 홍어무침이다. 오독오독 씹히는 홍어(가오리일 수도 있다)의 살맛도 좋지만, 맵고 시큼한 양념 맛이 거침없다. 달달한 꾸밈이 없다. 막걸리 안주로 이만한 것이 있을까. 단, 냉면과 같이 먹으면 홍어 양념이 면 맛을 가릴 수 있다.
돌아가신 유진식당 창업주는 탑골공원 노인분들 비싸면 못 드신다고 값을 올리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큰 따님이 [허영만의 백반기행] 인터뷰 때 이 말과 함께 한숨 쉬던 모습이 생생하다.
소문은 무섭다. 탑골공원 어르신들의 식당이 노포 맛집으로 유명세를 탄다.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대기줄을 서야 한다. 가게를 넓힐 만도 한데 아직은 그대로다. 앞으로도 그대로일 것 같다. 돈보다 얄팍한 어르신들 주머니를 생각한 창업주의 마음. 그 마음을 이어가려는 현 사장님을 보며 든 생각이다.
돈의 유혹 앞에 흔들리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가게를 넓히고, 가격을 올리면 매출을 올릴 수 있겠지만, 유진식당은 그대로다. 평양냉면은 구수하고 감칠맛도 변함없고, 메뉴판의 모든 음식들도 한결같다. 종로 3가 낙원상가 앞, 탑골 공원 뒤. 낡고 허름한 곳에 유진식당이 있다.
이 집 설렁탕은 7,000원이다. 근래에 먹은 최고의 설렁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