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리수 Jul 03. 2023

내게 편안함을 허락한다

어려운 한 명이 가고 귀여운 두 명이 오고

세상은 내게 너그럽다.

요즘 그런 이치를 깨닫고 있다.

내게 이롭게 해석하느라 그러는지는 몰라도.


오랜만에 아이들이 모처럼 집에 모여서 식구들이 다 같이 식탁에 앉는 시간이 잦아졌다.

이 시간이 참 좋은데 나이가 들어서일까? 조금씩 체력이 달리는 느낌이다.

결국 입병도 터지고... 피곤한 하루하루가 누적되어 가고 있는데 중간고사 준비시키느라 주말까지 수업하니 넉다운이 되어 잠깐 책상에 엎드려 자면 꿀잠이 들 때가 종종 있었다.

학원 쉬는 날은 집안일 마당일로 양평에서 오래된 주택에서 사는 삶은 하루가 너무 바빴다.

새로운 문제유형을 파악하려면 몇몇 문제를 풀어봐야 하는데 그 시간 확보하기가 쉽지 않았다.

쉽지 않은 시간 안에서 효율적으로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루하루 쫓기듯 시간을 보내다 보니 모처럼 집에서 여유 있는 오전 시간이 낯설고 아깝다.

뭘 해야 하는데...

식탁에 아침을 치우고 잠깐 앉아 둘러보니 마당이며 부엌이며 오래되고 쑤셔 넣은 물건들이 눈에 들어온다.


으휴 오늘은 부엌만 정리하는 걸로 할까?

라고 생각해 보니 얼마 전에 부엌을 정리했으니 이제는 부엌 앞에 있는 데크를 정리할 차례인데 그 사이 부엌이 지저분해진 거다.


식구들이 요즘 집에 있어 아침 점심 저녁을 모두 해결해서 급식소가 된 부엌은 늘 어수선하다.

각자들 매일 스케줄이 다르다 보니까

예전 아이들 학창 시절처럼 챙겨줄 수가 없다.

엄마라는 역할에서 밥 챙겨주는 일을 줄이자고 결심하고 각자 한 끼를 챙겨 먹자고 했지만 부엌살림을 도맡아 하다가 각자 먹고 싶은 것을 하나씩 요리해 먹는 공유주방으로 가는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결국 내가 밥이며 기본 국이나 반찬을 해 놓아야 내 맘이 편했고 남편이나 아이들은 각자 스케줄에 맞게 내가 학원 간 사이 일하다 짬짬이 해 놓은 기본에 뭘 더 얹어 먹고 싶은 모양으로 차려 먹는다.


처음엔 집에 식구들이 있어서 어디 나가기도 맘이 편해서 좋다고 했는데 안에서나 밖에서나 피곤하다 보니 슬슬 짜증이라는 놈이 고개를 내민다.


그런데 꼭 그럴 때 내 마음을 힘들게 하는 학생이 하나 등장한다.

어느 때나 있었던 일이지만 힘이 드니 유난히 신경 쓰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늘 불안하고 늘 초조해서 누군가 자신의 불안함을 해소해 주길 바라는 청소년기의 아이들이 있는데 특히 수학은 이 학생의 불안에 자꾸 불을 지피는 요인이 되고 있었다.


자신보다 문제를 빠르게 잘 파악해서 푸는 학생이 친구로 존재하기까지 하니 매일 친구랑 만나서 자신의 무능력을 입증하며 우울해했다.

목표가 자신의 이해가 아니라 그 친구만큼 풀고 싶다는 욕구를 충족시키기에는 살짝 역부족인듯한 아이한테 대놓고 네가 수학에 접근하는 방법이 문제라고 돌려 말하긴 하지만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다.

여러 가지로 방법을 제안해도 노력을 그만큼 하지 않고 마음의 짐만 잔뜩 안고서 자신이 노력했다고 착각하는 아이에게 현실을 직시하는 방법은 그저 점수일 뿐... 근본을 들여다볼 생각을 못한다.


한숨 쉬는 학생에게 계속 원론적인 잔소리만 하게 된다.

오답노트 잘 작성해라.

네가 풀어보고 모르면 여기서 이 부분으로 넘어가는 부분을 모른다... 등으로 질문해라.

구체적인 방법을 이야기해도... 그저 어려운 문제집을 사서 많은 양의 문제를 푸는데만 목표로 삼다 보니 결국 중각고사 이후에 친구 따라 힘든 학원 간다고 해서 나를 살짝 속상하게 했었다.


그런데 그 연락을 받은 다음 얌전한 학생 둘이 새로 들어왔다.


그래...

이렇게 저렇게 해줘도 불안하다고 칭얼대던 학생 때문에 나도 덩달아 스트레스받았는지 그 아이 수업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진이 빠져나갔나 보다.

 그 학생이 관둔다고 할 때는 공들인 만큼 알아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우울했는데 막상 다음날 수업시간이 되어보니 맘이 편안해지는 게 아마 걔랑 공부하는 게 은근 에너지를 많이 썼나 보다 했다.


그리고는 지인소개로 새로 학생 둘이 들어왔는데 가르치는 게 무척이나 수월하다.

내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힘들었지?

이제 보니 그 학생한테 너무 과한 공감으로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다.

지금 이렇게 편한 걸 보면...


나이를 먹어도

내가 어디서 허덕이고 있는지 잘 모른다.

그곳에서 나와야 내가 허덕이던 곳이 보인다.


이제야 편해진 시간과 마음...

내게 편안함을 허락해 주려고 힘들던 학생은 나가고 편안한 학생이 새로 나와 인연이 되었다.

세상은 내게 잘 대해준다.

그걸 잠깐 잊었다.

잠시 지나가는 바람을 잡으려 했던 주먹을 놓으니 이렇게 편안한 것을.

손바닥을 피고 손가락 사이로 흐르는 바람을 느끼라고 내게 말한다.

돌고 도는 시험 준비.

기말 준비하며 내게 말한다.

쉽게 쉽게 생각해...

아이들이 문제를 틀려도 못 풀어도 너무 네 속을 긁지 말아라. 다독다독...

작가의 이전글 자연스럽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