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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수 Nov 02. 2023

나, 지금에 만족할 줄 알기

생각아 그냥 흘러가라

애들도 다 크고

몸이 아프셔서 보기만 해도 안쓰러웠던 내 친정 부모님들도 그리움만 남았고.

알게 모르게 예민한 나를 힘들게 했던 시부모님도 다 돌아가셨다.

꽤 오래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이 모든 일들이 삼 년 동안에 생긴 일들이다.

얼마 전 시어머니 49재까지 끝났다.

요즘 사람들은 칠칠재니 사십구재니 하는 말들을 낯설어하고 제사도 점점 없애는 추새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나의 도리라 생각해서 모두 진심으로 참여했다.

시어머님은 앞으로 제사는 지내지 말라며 제사를 없애시고 깔끔하게 마무리를 해 주셨다.

그래도 남은 자들에게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 살아있는 자손들의 마지막 효도라고 생각하며 한 번 한 번 재를 올릴 때마다 묵은 감정들을 정리할 수 있었다.

문득문득 생각나는 아쉬움들도 조금씩 희석되면서 이제는 시어머님의 편안한 다음생을 빌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는 첫 번째 주말을 맞이했지만 일을 쉴 수 없었다.

집 안 일로 빠진 수업을 보충하느라 이 좋은 햇살아래 아이들을 불렀다.

수업을 하다가 청명하다는 이름을 가진 창문 밖 하늘을 보았다.

잔잔해진 일상이 이제 다시 시작되었다.

홀가분한 이 기분은 무엇인지... 그러면서 밀려오는 불안감은 또 무엇인지... 


갱년기...

그래서인가?

누군가는 생을 마감하고 누군가는 태어나고 그 와중에 우리들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반복된 일상이 펼쳐진다. 그러나 어떤 시기는 어제와 오늘이 다를 수도 있고 같을 수도 있다.

이제 내게 벌어지는 앞으로의 날들은 어떤 변화가 있을까?

자다가 문득 등에서 식은땀이 나면서 나 지금 왜 살지?

나의 어머니는 아버지는 마지막 숨을 거둘 당시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고 나니 이제야 생각들이 꼬리를 들고 줄줄이 일어난다.

너무 기력이 없다가 돌아가신 어머니에 반해 아버지는 계속 말씀을 하셨다.

입에 호흡기를 꽂아야 했던 탓에 무슨 말씀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때 목소리를 곱씹어 생각하면 

' 집에 가야 한다 '

라고 하신 것 같다.


내 기억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마지막 숨을 들이쉬시고 날숨을 영원히 내 쉬지 못하신 걸로 기억한다.

아니... 내쉬시고 들이쉬지를 못하셨던가?

그냥 다음 숨을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일초... 이초... 삼초... 우리도 숨을 참고 기다리다가 아.... 맥박이 삐---------------- 울리는 경고음을 듣고서

돌아가셨다고 깨달았다.

그리곤 우리는 숨을 멈추고 의사를 쳐다봤고... 통보를 듣고서야 그렇구나라고 인지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지금 숨 쉬고 있는 건 살아있다는 증거고

언젠가는 내 숨도 멎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지금의 이 순간이 허망하면서 소중하다.


그렇지만 학원 학생들을 보면 한 문제라도 맞히길 기도하며 가르친다.

인생의 마지막 길에는 그렇게 도움이 안 되는 감정들에 내 에너지가 소모되는 것 같다.

숙제를 안 해 오면 안타깝고 먼저 수업 때 알려준 문제를 또 못 풀면 속상하다.

내 목소리 톤이 나도 모르게 올라간다.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 나 화났나? '

높아진 내 목소리 톤을 아이들은 듣기 싫을 것이다.


나도 듣기 싫은데.

반복되는 잔소리와 반복되는 숙제와 검사와 나의 설명과 풀이들...

아이들은 얼마나 힘들까?

'사는 동안 서로 편하게 해 주자.'

'할 일은 알려주되 감정을 실지 말자.'


그래도 학생들을 만나고 나면 나도 에너지가 충족됨을 느낀다.


앞으로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날들이 훨씬 많은 학생들은 내일을 계획하며 오늘의 귀찮음을 참으며 인내하는 연습이 매번 필요해서일까?

오면 오늘 얼마나 힘들었는지 종알 종알 얘기를 풀고 공부를 한다.

그런 얘기를 듣고 있으면 살아있는 에너지란 고민과 좌절과 극복 속에서 꿈틀거리는구나 생각된다.

나도 그 시절 참 열심히 연습하고 실천하고 시행착오를 거치며 살았고 지금은 그 주제만 바뀌었지 달라진 게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허무감이 밀려오는 시기이다.

내 속에 일어나는 모든 생각들이 휘몰다가 다시 가라앉고 이제는 좀 평정심을 찾았나 하다가 늦은 밤 잠이 깨면 다시 휘몰아 올라온다.

이 순간 소중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내가 불행하다 생각되는 건 아닌데... 이 불안감은 뭘까?

이유를 찾아 생각해 보면 결국

잘 살았으니 너무 불안해하지 말라고 내게 말하며 스스로 다독이려 생각을 모아 본다.

내 친정 부모님도 그 부분은 인정해 주실 것이다.

열심히 살았고 열심히 살고 있음을...

하지만,

세상은 열심히 살아도 잘 안 되는 부분들이 있다.

그렇지만 가끔 그 문제 때문에 속이 상해도 잘 안된 부분만 너무 생각하다 보면 우울해진다.

지금이 그런 때인 것 같다.


무득 자다가 깨면 드는 생각

이데로 내 숨이 멈추면 난 무엇이 억울할까?

나의 부모님은 무엇이 마지막 숨을 힘들게 했을까?


떠오르는 억울한 일은 많은데 하나하나 풀어헤쳐보면 억울해할 게 아니라 버려야 할 집착들일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세상이 그렇다 하면서 내 생각에 연습을 시킨다.


꽃이 아름다우면 그냥 꽃이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말기를

하늘이 예쁘면 그 하늘을 볼 수 있는 지금 그냥 쳐다보기를

늙은 나의 강아지를 보면 같이 나이 들어감을 보듬어 주기를

배고픈 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따뜻하게 해 줄 수 있으면 따뜻하게 해 주고

그냥 그렇게 마음 쓰고 말기를


지금 잠시 멍 때리고 싶으면 잠시 멍~ 하기를


그렇게 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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