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가 전해준 목공 한수-1
긴 나사못, 잘 박고 싶다
작업을 하다 보면 간혹 분노조절 장치가 고장나는 순간이 찾아온다. 추운 날 망치질을 하다가 언 손가락을 못대가리로 오인 타격하거나, 툭 튀어나온 모서리가 정강이나 발가락과 정면충돌하거나, 방금 쓰고 던져놓은 망치를 반나절 동안 못 찾거나, 숨이 턱까지 차있는데 날파리가 목젖 너머 예민한 부위에 들러붙어 웩웩- 거리게 만드는 상황 등이다.
그렇게 일고여덟 개를 짚어가다 보면 나오는 케이스가 ‘박으려는 나사못이 드릴만 대면 툭툭 자빠지는’ 경우다. 작은 못이야 무난하지만 5~6cm 이상 되는 긴 나사못은 아무리 정신일도 드릴링을 해도 몇 번이고 보란 듯이 자빠지고 만다. 드릴 끝 자석이 못을 약간 잡아주긴 해도 완전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특히 사다리 위에서 작업하다 나사못이 열두 개째 수풀 아래로 사라지면 분노 게이지는 곱빼기로 치솟는다. 약이 바짝 오른 나머지 ‘누가 이기나 끝까지 해보자’며 죄 없는 물체와 감정이 나기 일쑤다.
“긴 나사못 잘 박는 법 좀 알려줘.”
오랜 시행착오 끝에도 도무지 방법을 모르겠어서 나는 긴 나사못 잘 박기로 소문난 동생 겸 고수를 찾아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나사못을 안 자빠트리고 잘 박는 법이 있다면 꼭 배우고 싶었고, 내 꿈이 목수인데 나사못 때문에 성질이 괴팍해지는 꼴을 더 보고 싶지도 않았다.
답답해 물었지만, 나는 물으면서 낯이 뜨거워졌다. 아무리 목공의 초보라도 이런 멍청이 질문을 백주에 맨 정신에 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 대 패고 시작해유”
나의 우문에 고수는 기막힌 현답을 내놓았다.
"정 안 되겠으믄 망치로 나사못 대가리를 한 대 패고 시작해유."
“응? 망치로?”
“못 박듯이 망치로 쳐서 나무에 살짝 고정한 뒤에 드릴을 쓰라고.”
아, 나사못은 반드시 드릴만 써야 한다는 초보의 편견을 단숨에 까부수는 파격적인 혜안이 아닌가! 그렇지. 긴 나사못 대가리에 우주선 도킹하듯 휘청휘청 드릴만 들이댈 게 아니라 망치로 한 대 쳐서 기절시킨 뒤 드릴링을 하면 될 것을.
(이것은 마치 쇼핑 초보들이 마트에서 장 볼 때 범하는 어리석음에 비견할 만하다. 물건을 가득 담은 카트를 자동차까지 끌고 간 뒤 트렁크에 빈 박스를 넣고 나서 장본 물건을 담으면 편할 텐데. 대부분 초보들은 마트 초입 박싱 코너에서 굳이 물건을 죄다 꺼내 박스에 담은 뒤 차까지 낑낑 대며 들고 간다. 그러다 밑이 빠지며 물건이 주차장 바닥이 죄다 쏟아지고. 데굴데굴 굴러가던 노란 참외가 마침 진입하는 자동차 바퀴에 깔려 와작 부서지면 한 편의 시트콤은 완성된다.)
“오, 과연 천재구나.”
“나사못을 박을 땐 드릴 돌리기 전에 한 번 꾹 눌러 주는 게 좋아. 아니면 일전에 알려준 대로 드릴로 구멍을 먼저 뚫고 나사못을 박던지. 그럼 못이 튕겨나가지도 않고, 나무가 쪼개지지도 않지."
긴 나사못 박기 시범을 보이는 동생 겸 고수의 자세를 유심히 관찰해보니, 내 자세와 다른 점이 확연했다. 나는 몸이 저만치 떨어진 상태에서 드릴 든 손만 나사못 위로 이동하는 반면, 동생 겸 고수는 배꼽 위 상체 전체를 나사못 위로 이동시켜 못대가리를 내려다보며 지엄하게 꾸짖는 형국이지 않은가.
“역시 자세도 다르구먼.”
“손기술 말고 장비로 잘 박고 싶다면 토션 비트(torsion bits)를 쓰면 좋지.”
“토션 비트가 뭐다냐?”
“전동 드릴에 끼워 쓰는 십자 막대기 중 하나가 토션 비트여. 나사못 대가리를 자석으로 한 번 잡아주고, 둥근 홈이 감싸듯 또 한 번 잡아줘서 못이 튕겨나가지 않게 해 주지. 토션 비트의 궁극의 용도는 물론 드릴의 강력한 회전으로 나사못이 쓸 데 없이 깊이 박히거나, 반대로 못은 안 들어가고 대가리의 십자 홈만 뭉개지는 낭패를 방지해주는 것이야. 자동차
브레이크로 치면 ABS 기능 같다고나 할까.”
“그렇지! 드릴링이 안 좋거나 나무가 강하면 못이 들어가다 중간에 멈추는 경우가 왕왕 있더구먼. 드릴 회전력에 못대가리 십자 홈이 다 뭉개져서 빼도 박도 못하게 되더라고. 그럴 땐 어쩌나.”
“그래서 요즘 많이 쓰는 드릴이 임팩(Impact drill)이나 해머(Hammer drill)야. 원리는 드릴로 못을 회전시키는 동시에 망치질처럼 못을 쳐주는 이중 효과를 내는 것이지.”
"못 대가리가 뭉개졌다면"
“그래도 안 좋은 드릴 쓰다가 못 대가리가 뭉개졌다면?”
“나사못을 빼지도 박지도 못하게 되는 경우 1. 나사못 대가리 뭉개진 것을 빼는 별도의 ‘리무버(remover) 비트’가 있고 2. 힘이 좋으면 펜치(penchi)로 잡아 돌려 빼거나 3. 돈 많은 장비 부자라면 그라인더(grinder)로 튀어나온 부분을 잘라내고 4. 힘도 없고 장비 살 돈도 없으면.. 이로 물어뜯던가.”
“비도 오는데, 이로 나사못 빼는 차력 좀 보여줘.”
“시끄럽고. 초보들은 나사못이 섞여있으면 뭐가 나무용인지 철재용인지 구분을 못하더라. 나무와 나무를 연결하는 목재 피스는 끝이 침처럼 뾰족하고 나사산 간격이 넓다. 못을 옆에서 보면 대가리 아래가 역삼각형 모양인 것이 특징이지. 녹이 슬지 않는대서 요즘은 아연 못을 많이 쓴다.”
“쇠를 연결하는 못은?”
“쇠에 박는 나사는 ‘직결 피스’, 현장에서 쓰는 말로 ‘기리 피스’라고도 한다. 나사산이 촘촘하고, 끝이 드릴처럼 뭉툭하다. 못을 옆에서 보면 둥근나사 대가리 바로 아래가 수평하게 딱 깎여 납작하다. ”
“나사산이 좁고 넓은 것은 뭣 때문인가?”
“나무는 두툼하고 연하니 나사산이 넓어야 꽉꽉 잡아주는 맛이 날 테고, 쇠는 대개 얇기 마련이니 나사산이 촘촘해야 지지력이 강해지지.”
"나사못도 꽤 여러 종류가 있구먼."
"나무와 쇠를 연결할 때 편하게 쓰는 또 하나의 나사못이 윙(wing) 피스야. 나사 끝에 날개가 달려있지. 나사가 나무를 파고들 땐 날개가 구멍을 넓혀줘서 나무가 쪼개지는 걸 방지해주고, 나사가 쇠에 도달해 박힐 때 날개가 뭉개지며 쉽게 들어가게 해 주지. 나무 쪼개지지 말라고 일일이 드릴로 구멍을 뚫어야 하는 번거로움을 덜어주는 똑똑한 피스야."
“아주 똑똑하네. 마지막으로 초보에게 나사못 박기와 관련해 가르쳐주고 싶은 잡기 두어 가지만 알려줘.”
“목수도 못을 일정한 간격으로 예쁘게 박으려면 먹줄을 튕긴다. 초보들이 대충 눈대중으로 드르륵드르륵 박고는 하던데, 다 박고 나서 봐라. 못대가리 들쑥날쑥한 것보다 더 뵈기 싫은 게 없다. 그런 못대가리를 안 보이게 하는 게 ‘이중 비트’와 ‘목심’이다. 이중 비트는 드릴에 끼우는 쇠막대의 뒷부분이 더 두꺼운 비트를 말해. 두꺼운 부분이 표면 아래까지 구멍을 넓혀놓으면 못 대가리가 쏙 들어가서 안 보이게 되지. 그 구멍 위로 본드를 칠하고, 목심을 끼우고, 톱이나 그라인더로 갈아내면 못 박은 자리가 감쪽같이 사라지면서 표면이 매끈해진다.”
목공 역시 장비 싸움이 될 것인가
"목공 역시 종국에는 장비 싸움이 되겠군!”
"장비가 있으면 작업이 한결 정교해지지. 예를 들어 클램프(clamp)라는 도구가 있어. 글자 그대로 물건을 꽉 움켜쥐어주는 집게 같은 거야. 혼자라 맞은편에서 누가 나무를 잡아줄 수 없을 때 클램프로 꽉 눌러놓고 와서 작업하면 흔들림이 없지. 특히 나무를 직각으로 연결해 피스를 박을 때 직각 클램프를 쓰면 각도가 어긋나지 않고 편하게 작업할 수 있다."
긴 나사못을 잘 박는 법을 배우려다 동시에 부수적인 목공 잡기까지 섭렵하고 나니 자신감이 샘솟았다. 장마가 끝나면 곧바로 착수 예정인 창고 짓기에 투지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오늘 다 설명하지 못한 나머지 목공 비법들은 다음 11화에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로 한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