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하늘은 무너지고(3)
일년 선배였던 그는 나와 상당히 친밀한 사이였다. 아무리 내 위치가 위협을 받아도 그는 항상 내가 최고라며 용기를 북돋워 줬다.
하지만 그 말을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위로는 삶을 바꾸지 못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프로에 갈 확률이 높은 위치에 있는 그가 혹시라도 도움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겨우 관계를 유지했을 뿐인지도 몰랐다.
선배는 자리에 앉자마자 소주 뚜껑을 따 종이컵을 채웠다. 그리고 혼자 술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처음엔 의례적인 인사가 오가고, 그 뒤에 문득 놀랄만한 한마디를 듣게 됐다.
“감독님이 알려주시더라. 나는 그래도 너랑 좀 친하니까 한 번 가보면 어떻겠냐고. 뭐 우리 팀 연고지가 대전인 것도 있고.”
나는 고개를 숙였다. 역시 사회생활은 사람을 달라지게 하는 모양이다. 평소 상당히 둔한 편인 줄만 알았던 선배가 내 반응을 눈치채고 곧장 말을 이었다.
“사실은 감독님도 얘기하지 말라고 했어. 미안해서 할 말이 없다고. 그래도 빈소랑 제일 가까이 있고, 그나마 너랑 친분이 있는 나한테는 얘기해야겠다 싶었나 봐.”
이어진 선배의 얘기는 충격적이었다. 그때 감독은 어떻게든 나를 끌고 가고 싶어 했고, 나처럼 어렵게 선수 생활을 했던 선배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생계가 중요했고 소심한 사람이었던지라 현실 앞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지만, 그 역시 많이 힘들어했다. 내가 점심시간마다 학교를 떠나는 동안에도 감독은 나름의 싸움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와 감독 사이에도 내가 모르는 이야기가 있었다. 나는 어머니가 일방적으로 감독의 요구를 수용한 것으로 알았지만, 나름 그 상황에도 돌파구를 찾고자 둘은 꽤 많은 대화를 했다. 감독은 아무래도 어머니의 간곡하고도 단단한 부탁, 혹은 마음을 접을 도리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축구를 그만두기 일 년 전부터 나의 거취에 대한 고민은 두 사람 사이에 이미 한참 동안 진행되고 있었고, 두 사람이 미안한 마음을 뒤로 감춰둔 덕에 나는 일 년은 더 꿈꿀 수 있었다.
선배의 말을 듣고 처음에는 화가 났다. 어차피 이렇게 될 거, 왜 나를 남겨두고 둘만 그렇게 답 없는 고민을 일 년이나 이어갔을까. 하지만 어머니의 영정사진을 돌아보며,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사진 속 무거운 미소에서 그녀가 힘겹게 감당했을 일 년의 시간이 느껴졌다.
형주 선배가 내 손에 봉투를 건넸다. 부의함에 넣은 것 외에 따로 준비한 봉투였다.
“이건 좀 받아줬으면 좋겠어. 부조는 감독님 이름으로 했어. 이건 내 봉투인데, 그냥 꼭 너한테 주고 싶었어. 거절하면 좀 쪽팔릴 거 같으니까 그냥 받아놔.”
선배는 그렇게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전화번호 하나를 남겼다. 일 다 치르고 나면 한 번 연락해. 한 잔 살게. 내가 해줄 게 이것밖에 없다. 나는 몰랐다. 세상에 나에게 미안하고 애잔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줄을 이을 것이라고는.
저녁이 깊어 갈 무렵, 또 한 팀의 손님이 왔다. 상가번영회장과 몇몇 상가 사장들이 빈소를 찾았다. 나도 모르게 감사하다는 말 대신 어쩐 일이세요, 라는 말로 그들을 맞았다. 아직 한참 장사해야 할 시간이었다. 우리는 상가번영회에 세를 내긴 해도,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나 그들과 친밀할 존재도 아니었다. 그들의 방문 자체가 내게는 과도한 친절로 느껴졌다.
나는 성이에게 이끌려 그들과 함께 테이블에 앉았다. 조금은 그 자리가 불편했다. 내가 인지했던 관계보다 가깝게 밀착해 들어 온 그들이 낯설기도 했고, 형주 선배가 다녀간 여파인지 순간적으로 감정을 견디기 버거웠다. 테이블에 앉자마자 다시 눈물이 쏟아졌다.
막상 선배 앞에서는 남의 얘기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던 감정의 파고가 잠시 휴지기를 보낸 후 거칠게 부서져 내렸다. 그 무너지는 순간을 나는 예감하고 있었고, 그것은 이 관계에서 용인될만한 수준이 아닐 것으로 여겨졌다.
내 아버지뻘인 회장님은 내 등을 토닥였다. 그가 끌어당긴 것인지, 내가 파고든 것인지 정확하진 않지만, 이내 나는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는 그때, 아마도 약간의 당혹감과 함께 벽 구석 어딘가를 바라봤을 것이다. 내게 그것은 하나의 교감 같았다. 처음 알았다. 교감이 서로 다른 방향을 보면서도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을. 아니, 애초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감을 생각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던 나는, 그렇게 낯선 느낌으로 그 의미를 배워갔다.
중요한 것은 바라보는 방향, 몸과 몸의 거리가 아니라 그저 떠올리는 마음일 뿐인지도 모른다. 나는 어머니와의 관계를 밀착된 몸의 등과 등 사이, 온전히 지구 한 바퀴를 도는 거리로 이해했지만, 그것은 수많은 방식으로 이어진 관계의 그물 중 지극히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은 차 두 대를 타고 왔다. 그래서 두 사람은 음료를 마시고, 나머지 사장님들이 술을 마셨다. 많이는 아니고, 두 병을 서너 명이 나눠 마셨다. 회장님도 술은 입에 대지 않았다. 한 시간 정도 자리를 지킨 그들은 힘내라는 말과 함께 마치 이 자리에 없었던 사람들처럼 조용히, 그리고 흔적도 없이 빈소를 떠났다.
이후 성이와 함께 굳이 그 테이블에서 그들이 남긴 반찬으로 저녁을 먹었다. 문득 마음 한구석에서 조금씩 힘이 나는 것 같았다.
그때 젊은 여성 한 명이 빈소로 들어왔다. 성이와 마주 보고 테이블에 앉아 있던 나는 외삼촌의 부름에 부랴부랴 문상객을 맞이하러 나섰다. 그리고 외삼촌 옆에 선 채로 얼어붙었다. 동주가 눈꺼풀을 떨며 내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한참을 어머니의 영정사진을 바라보다 고개를 숙이고 소리 없이 기도를 올렸다. 그 시간이 너무도 길어서 그녀가 돌아서길 기다리던 나와 외삼촌 모두 조금 당혹스럽게 느낄 정도였다. 맞절 후 외삼촌에게 잠시 고개를 끄덕였을 뿐, 빈소에 들어선 이후로 그녀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동주는 성이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조금 전 상가 사람들이 떠난 테이블에서 남은 반찬을 젓가락으로 집어 먹기 시작했다. 장례식장 여사님들이 그 모습을 보고 서둘러 새 상을 차렸지만, 그 와중에도 그녀의 젓가락질은 멈추지 않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 앞에 마주 앉았고, 성이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미안해요.”
성이가 몇 발짝 멀어진 후 나는 말했다.
“뭐가?”
동주가 육개장에 밥을 말고 뒤적거리며 말했다.
“약속 못 지켜서…….”
동주는 밥을 만 육개장을 몇 차례 퍼먹다 잠시 몸의 모든 움직임을 멈추고 말했다.
“그게 다야?”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으며, 그녀는 다시 한번 육개장을 뒤섞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왜 나한테는 말을 안 했어? 영화는 중요한 게 아니잖아. 나하고 약속했잖아. 근데 왜 나한테는 아무 말도 안 하고 전해 듣게 만들어? 나는 너랑 꽤 중요한 사이가 됐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내 생각일 뿐이었니? 그러면 왜 영화는 보자고 했어?”
동주는 한참 동안 그저 육개장을 뒤적거리며 무심한 말투로 서운함을 털어 놓았다. 그러다 다시 급한 숟가락질로 국밥을 입에 넣었다.
목이 메는지 급히 물을 들이켠 그녀는 잠시 숨을 골랐다. 그녀의 눈이 젖고 충혈된 것을 보았다. 미안했다. 미안하고, 사람에 대한 순수한 감정 그 자체에 대해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됐다.
왜 내가 그녀에게 어두운 골목에서 영화를 보자고 말했는지, 온갖 회의적인 관계가 가득한 세상에서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 마음을 열었는지, 더 나아가 나는 왜 그렇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 홀로의 세상에 머물러 있었는지.
지난 하루 이틀의 시간 동안 나는 나를 둘러싼 관계에 대해 비로소 다른 이들이 당연히 여기는 감각으로 인지하게 됐고, 그 끝에서 한 여인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미안했고, 고마웠다. 그래서 여느 때와 달리 그녀에게만은 어떤 말이든 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혹여 그것이 아직 온기도 다 가시지 않았을 듯한 어머니의 배신감을 불러올 만큼 천박하고, 지독히도 일상적인 것에 불과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