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만, 아주 잠깐만(2)
잠시 내 몸은 자유로워졌다. 이끌리는 손길에 따라 옷이 한 꺼풀씩 벗겨지고, 그 손길은 이내 술기운에 잠들어 있던 피부 한 부분, 한 부분을 여태껏 느껴보지 못했던 예리한 감각으로 파고들었다.
나도 모르게 온몸이 파르르 떨리고, 손과 피부가 가볍게 스치던 잠깐의 시간을 지나 감각의 절정을 향해 생애 처음으로 예기치 못한 신체 일부가 반응했다. 생전 처음 느끼는 과도하게 폭발적인 감각 속에서 몸을 거칠게 움직였다.
당장 몸이 느끼는 타락한 감각과 지난 시간 나를 괴롭혔던 기억과 상념이 뒤섞이고 충돌하며 나는 걷잡을 수 없는 혼돈에 빠져들었다. 그랬다. 내가 느낀 그 감각은 이제껏 경험해본 적 없는 극도의 쾌락 같으면서도 어느 순간 내 정체성과 자존심을 무너뜨렸다. 내 인생의 첫 타락이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순간적으로 에워싸면서 몸에 열기가 돌고, 두통은 심해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토악질이 나올 것 같았다. 열에 잠식당한, 마치 쪼개질 듯한 머리를 감싸 쥐고, 나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달렸다. 방향도, 목적지도 모른 채 그저 달렸다.
어딘지도 모를 대전의 밤거리는 매우 찼다. 이를 악물었지만, 어디선가 내가 울부짖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다가와 주위를 둘러쌌다. 그 느낌이 너무 고통스러워 나는 발을 멈출 수 없었다.
그 흔한 별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철물점 따위가 늘어선 듯 이제는 생기도, 열기도, 빛도 느껴지지 않는 어둡고 처량한 거리를 온몸과 마음이 혼란한 상태로 달렸다. 달리다, 결국 버티지 못하고 어느 골목 구석에서 참았던 토악질을 터뜨렸다.
어떻게 된 일인지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다행히 바지와 티셔츠는 걸친 상태였다. 속을 한참 게워낸 뒤에야 나는 지금까지의 상황을 이해하고, 힘 빠진 몸을 바닥에 눕혔다. 처음에는 엉덩이를 대고 앉았지만, 몇 초 지나지 않아 나도 모르게 몸을 뉘었다. 그리고 한참을 소리 내어 울었다.
아무도 없는, 그리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선 골목에 혼자 서지도 못하고 몸을 던져놓은 자신이 한심하고, 그것이 어머니의 손을 놓은 후 처음으로 마주한 생의 한 장면이라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선배와는 연락할 틈도 없이 택시를 타고 유성 고속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그리고 첫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약간의 토사물이 흔적처럼 묻은 티셔츠가 지난밤의 불쾌하고 부끄러운 기억을 되새기게 했다. 첫차였기에 탑승 인원은 적었지만, 아마도 함께 버스에 올랐던 몇 명의 사람들은 내가 느끼던 그 이상의 불편한 감각을 후각으로 온전히 느끼며 시달렸을지도 모르겠다.
집에 돌아와서는 잠만 잤다. 집안 어른들의 조언으로 삼우제를 지내는 동안 빈소를 방문해준 귀중한 이들에게 감사의 문자 메시지는 이미 보내 놓았다. 선배와 과하게 마신 술을 몸이 견뎌내지 못한 탓도 있지만, 버스를 타고 오며 술이 깨는 동안 부끄러움이 더 깊이 나를 잠식했다. 어머니의 장례, 그리고 이어서 찾아온 허무가 이전까지의 삶과 앞으로의 삶을 단절시키는듯했다.
보지도 않는 TV를 틀어놓고, 이틀을 식사도 하지 않은 채 누워있었다. 초반에 한 번 2리터들이 생수병을 가져온 후 이따금 입을 대고 그 물을 몇 모금씩 목구멍으로 넘겼다. TV에서 흘러나오는 내게는 무의미한 소리가 무의미한 시간을 안고 어딘가로 사라져갔다.
이틀 동안 몇 차례 전화벨이 울렸다. 문자는 오지 않아서 누군지는 알 길이 없었다. 나는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미안해졌지만, 딱히 무언가를 해야 할 필요는 느끼지 못했다. 연락이 닿지 않는 나에게 문자를 보내지 않은 그들은 나를 배려하는 것이거나, 나를 포기하는 것이거나 둘 중 하나일 테니.
이틀이 지나고, 우선 성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괜찮아? 성이가 물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다 통화 중이라는 사실을 떠올리고 뒤늦게 으응, 이라고 답했다.
괜찮을 것도, 아닐 것도 없었다. 나와 내 시간은 그저 혼란을 견디고 있을 뿐이었다. 그 혼란이 어머니의 죽음에서 비롯된 것인지, 형주 선배와의 만남에서 비롯된 것인지 확신할 순 없었다. 다만 그 혼란이 긍정적이지 않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안 괜찮네. 일단 더 쉬어. 근데 연락 닿은 김에 일 얘기 좀 해도 될까?”
성이는 내 어설픈 대답을 듣자마자 잠시 한숨을 쉰 뒤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한번 아차, 하며 ‘어, 얘기해’라고 답했다.
“상가번영회장님이 한번 보자셔. 혹시 자기 가게 인수할 생각이 있는지 물어보시더라고.”
난데없는 소리에 잠깐 정신이 들었지만, 이내 급격한 두통이 몰려왔다. 몸뚱이가 본능적으로 깊은 이야기는 피하고 싶어 했다. 그래도 거기서 모든 얘기를 끊을 수는 없어, 겨우 왜, 라고 한 마디를 물었다.
“좀 쉬고 싶으신가 봐. 원래 그 분이 아들한테 그 가게를 물려줄 생각이었거든. 근데 그 아드님이 어쩌다 먼저 갔다는 것 같아. 대학도 못 가보고 어렸을 때 그랬다는데, 그게 사고인지 병인지는 잘 모르겠어. 그러다 장례식장에서 너 보고 뭔가 비슷한 느낌을 받았나 봐. 본인은 아들을 잃었고, 너는 부모를 잃었고. 어쩌면 당연한 세상의 흐름일 수 있는데, 같은 업계에서 일하다 보니 남 일 같지 않았는지, 그날, 네 감정에 묘한 기분이 드셨는지…….”
이야기를 들으며, 여러 생각이 떠올랐다. 그럼 우리의 포장마차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인수하는 데 돈은 얼마나 필요할까, 회장님은 갑자기 왜 이런 얘기를 하시는 걸까. 하지만 한 마디도 뱉을 수 없었다. 내가 건네는 말은 본격적인 논의와 의사결정이 시작됨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아직 내게는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어, 무슨 얘기인 줄은 알겠어. 나도 생각해볼게. 지금은 나도 좀 피곤해서…….”
“아, 그래. 알겠어. 일단 알고만 있고, 좀 쉬고 난 다음에 다시 얘기하자. 회장님도 막 그렇게 급하고 그런 건 아니야. 뭔가 생각난 김에 말씀하신 것 같더라고.”
나는 이어 고마워, 알겠어, 라는 말과 함께 통화를 끝냈다. 아니, 그래야 했다. 휴대전화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나는 ‘잠깐만’이라고 말했다. 그러다 다시 ‘아니야’라고 말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망설였고, 떠올리기 주저했고, 그럼에도 그런 의식된 마음보다 말과 행동이 먼저 뻗어나갔다.
“동주는…… 네 걱정은 하지만, 일부러 물어보지는 않아. 그나마 이런 얘기도 그냥 지영이한테 들은 거야. 끊는다.”
묻지도 않았는데 성이는 동주 이야기를 들려주고 전화를 끊었다. 녀석은 내가 동주와 가까워지지 않기를 바라는 듯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나 역시도 동주의 친구라면 그녀가 지금의 나와 감정을 쌓는 것을 좋게 보긴 어려웠을 것이다. 성이는 내 친구인 동시에 그들의 친구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그 모든 상황을 이해하는 동시에 누구도 모를 더러운 기억과 그에 따른 가책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사실 성이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내게 몇 번 전화를 걸었는지 묻고 싶었다. 부재중 통화 중 몇 개가 동주의 것이었는지 알고 싶었다. 어차피 정확하지는 않았다. 할머니나 이모, 혹은 외삼촌에서도 전화가 올 수 있고, 상가번영회장님이 내게 먼저 전화를 걸었을 수도 있었다. 그 외에도 전화를 줄 수 있는 사람은 차고도 넘쳤다.
하지만 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성이가 건 전화가 아니라면, 그것은 동주가 아닐까. 그녀의 연락을 파악하려던 마음이 미안하다는 말을 위해서인지, 고맙다는 말을 위해서인지 헷갈렸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녀에게 연락할 자격이 되지 않는다는 것쯤은 분명했다. 그래서 성이와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잇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