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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콤플렉스 43화(3부 10화)

잠깐만, 아주 잠깐만(1)

by 이정석

그렇게 어렵고도 지난하게 느껴지던 시간이 지나고, 어머니의 발인 날이 다가왔다.


성이는 당연히 내 옆을 지켰고, 동주 역시 빈소를 뜨지 않았다. 익숙한 친척들이 널브러져 겨우 잠을 이루던 자리에서 동주는 피곤한 몸을 웅크린 채로 내 옆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전날부터 눕지 않았고, 성이 역시 내 옆에서 잠시 숨을 고르다 퍼져 누웠다. 그리고 발인을 앞둔 그날 밤은 그렇게 두 사람이 바싹 붙어 내 옆을 지켜줬다.


동주는 모텔이라도 가라는 성이와 나의 말을 무시했다. 어떻게 하겠다는 합당한 대응도 없이 그저 침묵하고, 자세를 굳혔다. 그녀는 이미 그 시점에 아무도 그녀를 건들 수 없음을 인지하고 있었다.


외삼촌의 태도는 누그러졌지만, 이미 우리는 어머니와 각자의 관계 속에서 추모와 슬픔의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그 가냘픈 시간의 귀퉁이를 동주는 파고들었다. 성이는 굳건하고 어른스러운 모습으로 내 상체를 지탱했다면, 동주는 현실적 감각을 무디게 만들며 나의 눈을 안정시켰다.


발인을 하는 동안, 나는 외할머니와 외삼촌, 이모와 함께 어머니의 진정한 마지막을 함께했다. 외삼촌의 친구 몇 분과 성이가 관을 들었고, 감사하게도 나는 어머니의 영정사진을 들고 관 앞에 설 수 있었다. 동주는 관이 앞으로 나아가는 행렬, 그 뒤 어딘가에서 일면식도 없는 나의 가족, 친척들과 섞여 뒤를 따랐다.


화장은 꽤 허무한 의식이었다. 입관 당시 우리는 어머니의 지친 육신에 염을 하고, 관에 담는 의식을 지켜보며 많은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죽음 앞에서야 정돈될 수 있었던 그 고된 육신은 나무 관에 담긴 채 한 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달린 후에야 화장터에 닿았다.


우리는 자세한 과정을 보지 못했지만, 생각보다 짧고도 간단한 과정을 거쳐 어머니의 관은 화장터 가마 속으로 들어갔다. 아니, 우리는 하다못해 어머니의 관이 가마에 들어가는 모습조차 보지 못하고, 그저 가마의 스위치가 작동하고 디지털 액정의 수치가 올라가는 것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장례 버스에서 내려 전문 인력의 안내를 받아 유리창 밖에서 가마 안에 갇힌 어머니의 마지막을 흘려보내며, 나는 깊은 허무함을 느꼈다. 심지어 어머니의 관이 완전히 소멸하기까지 걸린 시간도 예상보다 너무 짧았다. 입관을 비롯해 한 인간의 삶을 정돈하는데 걸린 지난 시간마저 어쩌면 화장이라는 절차를 신속히 끝내기 위한 과정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아주 엄청난 의식인 것처럼, 우리는 순식간 – 적어도 감정적으로는 – 앞에 다가온 어머니의 마지막 흔적을 보고 다시 버스에 올랐다. 사람의 형체도, 그 형체에 대한 그림자 같은 기억도, 오랜 시간 겪고 다져온 수많은 시간도 그 하얀 조각과 가루들 사이에서는 아무런 위력도 발휘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 번 울었다. 어머니를 화장한 흔적을 하나의 밀봉된 그릇에 담아 이동하는 그 과정을 나는 견딜 수 없었다. 인간의 삶이 그렇게 가볍다는 게,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어머니의 삶이 그렇게 간단하게 정리될 수 있다는 게 허탈하게만 느껴졌다.


그 상황, 순간마다 동주는 내 손을 꼭 잡아줬다. 그녀는 마치 장례라고 이름 붙여진 그 허망한 절차의 순간순간, 처음 이를 경험하는 나의 흔들림을 고스란히 느끼는 듯했다. 성이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나를 살피고, 오히려 할머니와 외삼촌, 이모까지 챙기고 있었다면, 동주는 온전히 나의 상태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녀가 내 손을 잡을 때 주었던 온기와 마음은 그 순간에도, 그 상황들을 돌아본 훗날에 생각해도 나를 온전히 유지하는 데 있어 믿을 수 없을 만큼 큰 힘을 발휘했다.


어머니의 집안에는 가족 봉안당이 있었다. 어머니의 유골은 그곳에 모셔졌다. 나는 알지도 못하는 낯선 땅에 어머니의 지난 삶이 있었고, 그녀 생후의 자리마저 이미 잡혀있었다는 사실이 아득히 비현실적인 일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그저 할머니와 이모, 외삼촌을 따르며 하나하나의 장례 절차와 이를 통해 어머니가 흙더미 같은 세계 속으로 자취를 감추는 모습을 무력하게 바라봐야만 했다.


성이와 동주는 어머니의 유골이 봉안당에 모셔지는 것을 본 뒤에야 내 곁을 떠났다. 성이는 삼우제가 끝나고도 한 며칠은 지나야 가게를 열 거라고 했다. 그게 언제일지는 온전히 내게 달렸다고도 말했다. 이전이라면 내가 없이는 장사할 엄두조차 못 내는 녀석에게 서운했을지 모르지만, 그 순간에는 그의 판단이 실질적인 행위의 곤란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이고, 이주일이고 돼. 그냥 충분히 추스르고 와. 어머니가 집을 떠난 뒤부터 네가 겪은 혼란이 어쩌면 이제야 정리되는 것 같다.”


성이는 전에 없이 침착하고도 무거운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삼우제까지 지내고 하루 더 할머니 집에 머문 후, 청주를 떠났다. 가장 먼저 형주 선배에게 연락을 했다. 여전히 그는 대전에 머물고 있었고, 내 연락에 반가움을 표했다. 어머니의 빈소를 찾은 모두가 고마웠지만, 그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인물이었다. 대전이라 가장 가까운 곳에 있어서이기도 했지만, 그런 그에 대한 마음은 더욱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대전에서 만났을 때, 그는 꽤 무거우면서도 능숙한 표정으로 나를 맞았다. 내가 알던 이전의 그와는 아주 달랐다. 인위적으로 배운 표정이나 감정, 예절의 느낌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에 대해 복합적인 표현, 대응을 할 수 있어야 하는 사회의 원리에 익숙해진 느낌이었다. 장례식장에서 봤던 그때와는 또 다른, 조금은 더 성숙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자리가 바뀌어서 그런가, 그날이랑은 또 달라 보이네요.”

“거기는 내가 끼어들어 간 자리고, 여기는 내 홈그라운드 아니냐.”


일부러 우습게 던진 말에 그는 의기양양해졌다. 그리고 내 의중 따위는 묻지 않고 길을 앞장서 어딘가로 나를 이끌었다.


고맙다는 말 뒤로, 오늘은 내가 한 잔 사겠노라고 덧붙이고 싶었으나, 그는 말도, 행동도 내가 먼저 나서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어디서든 서둘러 자리를 잡고, 술과 음식을 시키고, 어느 정도 그 자리에서 마셨다 싶으면 내가 화장실을 다녀오는 사이 계산을 마치거나 계산대 앞에서 실랑이하다 나이와 예전의 권위로 나를 밀치고는 당당히 계산을 치렀다.


그렇게 오후 4시경 그와 만나 3차까지 술을 마셨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위로와 그 상황에서 내가 겪었을 슬픔과 고통에 대한 가벼운 공감의 언어가 오갔고, 나는 진심으로 그의 위로에 힘입어 짧은 순간 지난 며칠 느꼈던 충격과 비참한 감각을 잊을 수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아직 자정도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우리는 만취한 상태로 다음 장소로 자리를 옮겼다. 나는 이미 기억과 감각조차 힘을 잃고 간헐적으로 떠오르는 장면의 불완전한 흐름 속에 겨우 몸을 가눴다.


그 불완전한 기억 속에 우리는 분리된 방으로 들어섰고, 그 안에서는 술과 안주 대신 너무도 밝은 표정의 누군가가 나를 반겼다. 술을 찾아 잠시 두리번거리던 나는 그곳이 어떤 곳인지 인지한 순간 지금까지 끊어진 기억보다 아찔하고도 찡한 두통을 느끼며 그 누군가의 품 안으로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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