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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석 Oct 26. 2024

기능에서 진심으로, 오피스의 역할이 바뀌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오피스의 조건

좋은 오피스를 만드는 일은 쉽습니다. 최적의 시설, 기자재와 함께 업무에 필요한 공간을 모두 만드는 것, 직원들이 원하는 것을 최대한 반영하는 것이죠.  하지만 우리 모두는 알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이건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말이죠.

 

그런 꿈속의 오피스 말고, 진짜 좋은 오피스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미국의 오피스 디자인 업체 스트롱 프로젝트의 CEO 제프 포체판은 한 경영전문지에 ‘성공적인 스타트업이 따르는 사무실 디자인 규칙’이라는 글을 기고했는데요. 비용과 공간의 한계 속에서 업무 효율성과 직원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필수 규칙 세 가지를 제시합니다.


1. 직원들의 니즈가 반영되고 기업의 문화가 담긴 공간을 만들 것

2. 트렌드를 따라가지 말 것

3. 각기 다른 직무의 직원들을 일반화하지 말 것 


저는 이 아티클을 매일경제신문에서 번역해 다룬 기사를 통해 처음 접했는데요. 그 제목이 아직도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습니다. 기사의 제목은 <직원들을 '섬기는' 사무실을 디자인하라>였습니다. 본래 기고문의 제목과는 다른데 해석이 아주 기가막힙니다. 저는 이 제목이 바로 현재 우리 사무환경이 나아가야할 방향과 상당히 흡사한 주제의식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과거 오피스의 가장 큰 목표는 기능이었습니다. 1960~70년대는 일할 수 있는 목적을 가진 특수한 공간을 확보하는 것, 그리고 1980~90년대는 PC를 비롯한 OA 기기들이 등장하고 정착하는 흐름에 따라 이를 적절히 수용해서 생산성을 고도화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2000년대와 2010년대의 흐름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CRT 모니터는 LCD 모니터로 변화되고, PC 크기도 점점 소형화되고, 때로는 PC가 노트북으로 대체되기도 했습니다. 처리하는 정보의 양은 빠르게 늘어났고, 이를 효율적으로 개인, 또는 공동으로 수납하는 기능도 더욱 디테일하게 진화했으며, 영상회의를 비롯한 새로운 업무 보조 시스템이 등장할 때마다 새로운 공간이 생기고 그에 맞는 가구 등의 환경이 조성됐습니다. 2010년대의 스마트오피스 기조 또한 많은 의미를 담고 있지만, 그 시작은 모바일 워킹이 가능해진 기술적 환경을 수용해 업무 효율을 극대화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2000년대부터는 기능과 동시에 근무자의 심리를 고려하는 전략적 사무환경의 흐름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심미적 디자인와 재충전, 커뮤니케이션의 활성화 등 구성원의 심리적 만족과 직장 내 삶의 질 향상, 보다 효율적이라 여겨지는 업무적 행위의 유도를 위한 전략들이 나타난 것이죠.


이제 업무 효율을 위한 기능은 이미 공간의 기본이 되었으며,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을 배려하는 환경이 중요해졌습니다. 직원들이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옵션을 제공하고, 이제는 오히려 업무영역의 비중은 축소되면서 휴게실이나 탕비실 등 직원들 간의 커뮤니케이션과 휴식을 위한 비중이 높이지는 추세를 보입니다.


저는 지금도 좋은 오피스를 구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심리'라고 생각합니다. 일하는 사람의 심리를 적절히 자극해서 조직에 필요한 마인드와 행동양식을 만드는 것이죠. 그런데 그 심리를 보는 관점이 2020년대 들어서 한 단계 진화하고 있는듯 보입니다.


그것은 바로 진심입니다. 제가 앞서 '섬기는 사무실'이라는 단어를 강조한 것 또한 이 때문입니다. 


그 동안의 오피스에서 작용하는 심리의 원리는 조직의 입장이 강했습니다. 일하는 사람의 기능을 궁극적으로 끌어올리는 데 목적이 있었죠. 하지만 이제는 일터로 오고 싶지 않은 사람들, 나에게 핏한 더 좋은 일터로 떠나고 싶은 사람들을 잡아야 하는 상황이 되고 있습니다. 팬데믹으로 촉발된 재택, 원격근무의 확산 분위기에서 사람들을 다시 회사에 오게 하거나 회사에 와 있는 것 이상의 소속감과 충성도를 유지하는 것, 조직의 오래된 문화에 맞출 생각이 없는 젊은 세대들에게 이곳이 당신이 일해도 좋은 곳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바로 요소입니다.


즉,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 그들의 심리와 니즈를 헤아리고 그들을 모셔오기 위한 매력적인 일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제도와 시스템, 기업의 가치관, 조직문화, 사무환경 등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이에 따라 사무환경은 직원들이 공감하고 함께 따를 수 있는 그 기업만의 가치관과 문화를 만들고 보여줄 수 있는 공간, 구성원들의 다양한 니즈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담아낼 수 있는 공간, 새로운 세대들이 이질감을 느끼지 않고 그들의 방식과 관점을 존중받으며 일할 수 있는 공간을 추구하는데 큰 목적을 둬야할 것으로 보입니다. 젊은 세대들이 혹할 수 있는 트렌드에 집중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그 안에는 그들에 대한 진심 어린 이해가 담겨야 하며, 기업의 일하는 방식과 문화가 자연스럽게 연계된, 겉멋이 아닌 실제 공감을 주는 방식을 취해야 합니다. 큰 방향에서 제프 포체판이 제시한 3가지 원칙과도 상당한 유사점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오피스는 이러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어떤 방향을 가져야 하며, 또 그것을 구현하기 위한 전략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이 시리즈의 초반부에서 밝힌 바 있듯이 아직 우리의 오피스는 실험의 시대에 있기에 제 의견이 모두 정답일 수는 없으며, 세상에는 제가 전해드릴 수 있는 아이디어 외에 무수히 많은 방법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 사무환경의 미래를 고민해 온 한 사람으로서 사람들에게 더 좋은 오피스가 무엇일지에 대한 저의 생각을 조심스레 공유해볼까 합니다. 적어도 저의 시각이 어떤 분들에게는 새로운 방향성을 고민하는 계기, 또는 자극이 될 수도 있고, 더 나은 아이디어를 위한 힌트, 영감이 될 수도 있을 테니까요. 


앞으로 이어질 글들은 그 '진심'을 구현하기 위해 지금 우리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깊이 있게 이해해보는 과정, 그리고 이것이 사무환경에 시사하는 점, 마지막으로 그 시사점을 어떻게 실제 공간에 녹여낼 수 있을 것인지 방법론적 측면까지 단계별로 다뤄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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