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환경의 새로운 패러다임, 스마트오피스의 등장
2000년대는 현재 우리가 일하고 있는 환경의 외형적 기틀이 자리잡게 된 시기이며, 사실상 지금도 당시 구현된 방식에서 일하는 곳도 많습니다. 언뜻 보기에 지금까지 큰 변화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데요. 하지만 사무환경에 대한 인식과 개념 자체는 이후로 굉장히 큰 변화를 겪게 됩니다.
2010년대는 바로 그러한 사무환경과 일하는 방식에 대한 대대적인 인식의 전환이 일어난 시기입니다. 바로 '스마트 오피스'라는 개념의 등장이죠.
2000년대 후반 등장한 스마트폰은 우리 삶의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꿔놓은 사건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나 무선인터넷으로 태블릿PC나 스마트폰을 이용해 타인과 소통하고, 정보에 접근∙활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런 변화 속에 2010년대는 쇼핑, 문화, 인간관계 등 일상의 많은 영역이 온라인, 디지털로 대체된 시기로 여겨집니다.
예전부터 사람들은 통신을 통해 얼굴을 보며 회의할 수 있지 않을까, 사무실 밖에서도 일할 수 있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기술적으로 결국 일하는 환경에서도 그런 꿈처럼 생각했던 일들이 실현될 수 있는 기술이 완성되고 상용화됐습니다.
그러면서 스마트오피스라는 개념이 사무환경의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경직된 위계질서를 반영한 공간 배치 대신 자유분방한 레이아웃에서 자율좌석제라는 이름으로 정해진 자리가 아니라, 오늘 내게 필요한 자리를 그때그때 찾아가며 일할 수 있게된 오피스. 먼 거리의 상대방과 화상회의를 하는 것은 일상이 되었고, 출장을 가더라도 노트북으로, 휴대폰으로 큰 불편 없이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세상이 됐습니다.
이는 업무 공백의 최소화, 고도로 압축된 시간의 운용을 가져왔습니다. 시간 단위 생산성은 급격히 올라갔고, 오랜 시간, 열심히 일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던 '하드 워크'의 시대가 지나고, 같은 시간이라도 효율적으로 일하는 '스마트 워크'의 시대로 진입한 것이죠.
여기다 2010년대 후반에는 ‘4차 산업혁명’이 전 세계적으로 화두로 떠오르며 빅데이터, AI, IoT 등의 신기술도 급격하게 발전하고 일상화되기 시작합니다. 특히 이전까지 삶의 방식과 환경적 변화가 미국 등 해외 선진국과 상당 기간 격차를 두며 나타났다면, 2010년대부터는 사실상 동시대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이었습니다.
전 세계적인 흐름 속에 우리나라에서도 제2의 벤처붐이라 불리며 수많은 스타트업이 등장하고 성공사례 또한 늘어났습니다. 기술과 시장의 급격한 변화, 4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각종 기술과 아이디어의 융합이 새로운 기회로 여겨지면서 이를 겨냥한 플랫폼, 기술 기반 스타트업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나타나고, 또 시장의 중심을 차지하기 시작합니다.
새로운 변화에 발맞춘 스타트업 특유의 수평적∙자율적 기업문화와 조직구조, 이에 따른 유연함과 신속성은 기존 기업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치기 사작했습니다.
사실 스마트 워크 시대의 시작은 업무 로스 없는 완벽한 생산성을 지향하는 경영적 측면에 본질적인 목표를 두고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화되면서 직장인의 삶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같은 시간이라도 더 높은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은 곧 업무 시간에 집중하고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 이어집니다. 이른바 워라밸의 유행입니다.
워라밸의 유행은 또 다른 사회적 배경을 안고 있는데요. 저출생 고령화 사회가 가속화되면서 일가정 양립이 사회적 화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국가적 목표 아래 시간 선택제 일자리, 재택근무 등 시공간적 유연근무를 활성화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일터에 대한 시간과 공간의 벽이 무의미해지면서 일하는 방식은 더욱 다양화됐고, IT, 스타트업 중심으로 메신저나 협업툴을 활용한 비대면 업무처리 비중도 늘어났습니다.
2018년 도입된 주 52시간 근무제는 2010년대 후반 우리나라 기업 환경 최대 이슈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OECD 2위 수준의 장시간 노동을 하면서도 생산성은 낮은 근로방식은 기업의 경쟁력과 개인의 삶의 질을 악화시키는 기업과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문제로 지적돼왔죠.
주 52시간 근무제의 도입은 기술적 도구와 임금 수준은 높지만 기업 문화와 일하는 방식 측면에서 선진국에 뒤떨어진 우리나라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면서, 동시에 워라밸 이슈와 함께 이러한 문제 요소와 변화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는 계기가 됐습니다.
스마트오피스는 2010년대 가장 많이 언급된 사무환경 트렌드 키워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술적으로 언제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면서 기업들은 이를 활용해 기존 일하는 방식과 도구를 개선하고 창의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데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공간 또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2010년대 초반의 스마트오피스 트렌드는 기술적 인프라, 자율좌석제 등 일부 형태적, 특징적 요소를 도입하고 따라가는데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때문에 일하는 방식과 문화 등에 대한 종합적인 고려 없이 서둘러 기술과 제도만 도입하느라 부작용이 발생하는 사례도 많았고, 기술과 공간에 대한 투자에 부담으로 실제 스마트오피스 인식과 도입의 확산에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과 스타트업 열풍, 워라밸의 부상과 주 52시간 근무제 등의 사회, 산업계 전반의 변화는 점차 스마트오피스의 본질적 목표, 즉 기업 문화 및 일하는 방식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런 추세 속에 2010년대 사무환경에서 나타난 눈에 띄는 변화는 공용공간 비중의 확대입니다. 2000년대부터 이어져온 업무공간의 비중은 낮아지고 회의, 휴게 등을 위한 공간이 늘어날 뿐 아니라, 다양한 목적의 공간들이 새로 생겨났습니다.
구성원의 복지를 넘어 조직 내 소통과 창의성, 몰입과 재충전의 균형을 이루는 공간전략이 중요하게 여겨지고, 노트북 등 간소화된 업무도구와 데이터의 전산화 추세 속에 개인 워크스테이션의 규모는 축소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2010년대는 스마트오피스의 보편화까지는 이어지지 못한 과도기로서 각 기업의 문화와 일하는 방식에 따라 사무환경의 형태나 변화 수준도 천차만별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인간공학, 2000년대 감성적 사무환경에서 기술적, 문화적으로 한 단계 진보한 근무자 중심의 사무환경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는 시기였다는 점에서 의미를 둘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2010년대 오피스 환경의 이슈로는 공유오피스와 위성오피스를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공유오피스는 1인 사업자나 비교적 작은 규모의 회사들을 주 타깃으로 '공간을 공유'하는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직접 사무실을 꾸리지 않아도 월 이용료를 내고 높은 수준의 공용공간을 포함한 업무 환경을 제공받을 수 있는데다가 다른 스타트업들과의 네트워킹의 장으로서 기능까지 하면서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많은 화제를 모았고, 위워크를 필두로 수많은 관련 업체들이 등장했습니다.
위성오피스는 본 사무실 외에 각 지역 거점에 오피스를 구축함으로써 굳이 사무실로 출근하지 않고도 가까운 일터에서 업무를 보거나 출장, 외근 시 인근 오피스에서 업무를 볼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스마트오피스 초창기 그 개념에 대한 논의가 분분했을 때, 위성오피스를 스마트오피스의 개념으로 보는 시각이 따로 있었을 정도로 사무환경 혁신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2010년대 스마트오피스 초창기 공공기관을 비롯해 여러 곳에서 위성오피스를 시도했지만, 대다수가 이용률 저하 등의 상황을 맞아 실패로 돌아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몇 년의 시간이 지나 전 세계를 뒤흔든 빅이슈를 겪으며 위성오피스는 다시금 주목받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