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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델리 Apr 27. 2023

2화. 우리는 동거를 할 수 있다

우리가 함께 생존하게 된 이유를 물으신다면, 대답해드리는 게 인지상정!

답변 : 잘 살려고 하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아델리네 친가는 가부장적 유교, 외가는 4대가 기독교 집안으로 여느 평범한 가정보다 엄격하고 생활규율도 많은 편이다. 일요일은 주일이라는 이름의 요일로 당연한 양 지정되어있어서 성인이 되기 전 학생 시절엔 예외 없이 붙박이였다. 일주일에 하루를 꼬박~ 교회에서~ 아버지, 어머니, 아델리, 델리의 여동생까지 내내 있다가, 저녁 시간 즈음에서야 지친 몸으로 귀가했다. 대충 감이 잡히는가? 아델리가 독립을 원했던 이유는 비단 이 문제뿐만이 아니다.


첫 시도는 스무 살, 대학이었다. 외국이어도 좋으니 집에서 먼 대학으로 입학하면 기숙사에 살면서, 금단의 외박(친구네집..)도 해보고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 하지만 성적이 반대하여 외국엔 가지 못했고, 수능등급과 장학금의 가성비를 따지다가 그만 집에서 아슬아슬하게 통학 가능한 기독교재단 대학에 수월하게 입학해버렸다. 두 번째 시도는 워킹홀리데이였다. 미주 국가로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이미 다 따놓은 상태로 2년여간 부모님 돈 안 빌리고 어학연수 할 겸, 넓은 세계를 경험하고 오겠다 선언했었다. 당시 변사체로 발견된 가엾은 유학생 등의 뉴스가 등판하는 바람에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강제성을 띤 간곡한 반대로 무산되었다. 현재 만 18세 이상 30세 이하를 넘어 서른두 살이 된 아델리가 두고두고 땅을 치고 후회할 선택이었다. 세 번째 시도부터는 미션임파서블을 구상했다. 사회물을 먹은 펭귄령 스물 중반, 남극에서 한시간 반 거리 회사에서 통근이 가까운 친구의 집에서 월화수목금 지내고 일요일에 교회에 얼굴을 비치겠다는 카드를 내밀었다. 이십 대 중반의 1년여 남짓. 난생처음 늦게까지 텔레비전 보고, 야식먹으면서 반주도 마셔보고, 친구와 수다를 떨며 잠들고, 주말엔 흐드러지게 늦잠을 자고 일어났다. 어쩌면 아델리는 이때부터 마음맞는 사람과 함께 사는 삶을 꿈꿨는지도 모른다.


쿼카는 골때리게도 나와 정반대 케이스였다. 쿼카는 ‘가족은 가족과 함께^.^’ 살고자 했는데, 어머니께선 자식의 독립을 권장하셔서 틈만 나면 독립을 시키려고 하셨다. 얌전히 어머니 곁에서 꽁냥거리던 쿼카에겐 청천벽력이나 다름없었다. 가령, 쿼카가 장기간 집이 아닌 곳에서 근무하게 될 때면 계속해서 그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응원하셨다. 쿼카는 주말마다 꼬박꼬박 어머니를 보러 집에 갈 때면, 너무 자주 본다고. 필요할 때만 왔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쿼카는 슬퍼했다고 한다. 그렇게 쿼카와 쿼카 어머니는 서로를 밀고 당기며 십여 년을 한 둥지에서 지냈다. 쿼카는 캥거루과여서 아가를 주머니에 넣고 키운다. 작은 쿼카는 더 작은 아가 쿼카를 주머니에 넣고 살뜰하게 키운다. 몸집이 다 자라면 주머니에서 빼고(안 들어가니까!) 얼마간 먹이 찾는 법을 알려준 뒤, 독립시킨다. 마치라잌 어느 날, 쿼카의 어머니가 자신의 집으로부터 부르면 달려올 수 있는 정도의 거리에(?) 쿼카만 살 수 있는 1인 둥지를 마련해주신 것처럼! 이 일로 쿼카는 쿼카 어머니와 인생을 놓고 싸웠다고 한다. 당시 쿼카는 갑자기 혼자가 되어 황망한 마음이었다. 이때 쿼카의 나이 귀여운 서른다섯이었다.


지금도 쿼카는 어머니께 종종(치고는 많이) 전화하는데 양을 닮은 쿼카 어머니는 굉장히 귀찮은 목소리로 “용건도 없는데 왜 자꾸 전화하니~?” 라는 멘트를 가장 많이 하신다. 그럴 때마다 쿼카는 “딸이 엄마가 잘 지내는지 궁금해하는 게 이상한 거야?”라고 웅앵웅하고 전화를 끊는다아델리는 쿼카 어머니 쪽을 더 공감하는 바이지만, 쿼카가 상처받을까 봐 조용히 방문을 닫고 쿼카가 원할 때 마다 어머니와 통화를 하게 해 주는 편이다. 그리고 전화를 끊고 쿼카가 울망이고 있으면 토닥토닥을 해준다. 사실 이렇게 말하는 쿼카는 쿼카 어머니를 매일 본다. 그리고 자기는 마마 쿼카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참으로 귀엽다.


이쯤이면 둘이 독립을 하게 된 계기는 충분한 것 같다. 한동안 남극 집에서 어머니와 부대끼고 살기 어려워서 직장 근처의 서울행을 결심한 아델리는 근처 부동산을 물색하던 중이었다. 그러던 아델리의 앞에 나타난 쿼카는 아델리가 원하는 직장 근처에 홀로 살고 있었다. 처음 쿼카네 놀러 갔던 아델리는 외로움도 무서움도 많이 타는 쿼카가 혼자 살기엔 다소 큰 집에 덩그러니 놓여있단 생각을 했다. 집은 무척이나 깔끔단정하고 예뻤는데, 그 쿼카둥지에 사는 쿼카는 별로 즐거워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아델리는 결심했다. 더 나은 둥지로 쿼카를 데리고 나가야겠다! 자세히 보니, 쿼카와 아델리의 생활 습성을 모두 담아내기엔 둥지 환경이 적절하지 않았다. 빛, 온도, 습도, 공기, 사냥터, 주차, 이웃, 하... 따뜻한 호주와 차가운 남극의 모든 사계절을 담은 동아시아 한반도 남부에 위치한 서울 어딘가에 작고 아담한 쿼카델리하우스는 탄생하게 된다. 우리만의 둥지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으나, 지면이 부족한 관계로 추후 설명할 기회를 마련하도록 하겠다.


우리가 함께 살게 된 이후, 눈부신 인생의 변화가 있었다. 아델리는 회사에서 남극까지 통근하지 않게 되어 자유시간이 늘어났다. 늘어난 시간 만큼 아델리펭귄의 사백안같은 흰 눈을 덜 무섭게 뜨는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이다. 전에는 퇴근하고 남극집에 가더라도 계속 부모님과 부딪히고 편히 쉴 수가 없었다. 쿼카델리하우스에 살게 된 후 아델리는 퇴근 후 집으로 곧장 뒤뚱거리며 퇴근하여 쿼카와 밤에 맛있는 야식을 먹으며 하루 회포를 풀고, 쿼카는 그 시간에 고민도 털어놓고 힘든 일도 서로 이야기하며 힐링 캠프를 매일 밤 가졌다. 그게 뭐 눈부신 인생의 변화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스트레스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편안한 상대와 함께 하루의 끝을 맺는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아델리가 감명깊게 본 「월간 집」의 대사를 나누고 싶다.


‘집이 있었으니까. 

힘든 하루의 끝에 돌아갈 안식처가 있었으니까. 

나에게 집은 내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고,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받을 수 있는 곳이었다. 

비록 내 집은 아니었지만 내가 나답게 살 수 있는 그런 집이 있어서 

지금껏 버틸 수 있었다.’


쿼카와 아델리 둘 다 서로 이유도 다르고, 시기도 달리 맞이한 독립이었지만. 이제야 완전하고 건강한 독립을 한다. 우리는 서로의 안식처가 되어주기로 했고, 철저하게 서로를 위한 둥지를 꾸린다. 어렵고 힘들고 지칠 때 내 편이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진정 ‘집’이 아닐까? 우리가 함께 생존하게 된 이유라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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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같이 살게 된 쿼카델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다리 짧은 두 동물에겐 높은 둥지는 힘들어..

To be continu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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