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교집합 중 크게 차지한 것이 바로 ‘교련’이었어. 물론 드라마 허준, 후렌치파이 사과, 신화와 SES, 요즘 말로 ‘수포자’였다는 정도의 공통점이랄까 이야깃거리랄까 하는 게 있었지만, 교련에서만큼은 우리는 한 몸처럼 반응했지.
군인이었다던 남자 선생님께 한학기동안 배운 건, 좌향좌우향우였어. 줄을 잘 서고 전체 이동을 흐트러짐 없이 하는 것. 땡볕에 다들 비슷하게 인상을 쓰면서 서 있었어. 도대체 이딴 걸 왜 해야 하는 걸까,라고 속으로 목이 쉬도록 외쳤지만 입은 정직한 한 일 자를 유지했지. 선생은 그리 열정적이지도 나태하지도 않은 목소리로 일관되게 좌향좌, 우향우를 가르쳤어. 그가 그걸 가르쳐서 그에게 남는 건 월급이었고 우리에게 남는 건 짜증이었지.
다음 학기엔 여자 선생님으로 바뀌었어. 남자 선생이나 여자 선생이나 하나같이 나이 들고 매력 없었지. 정말 최악의 과목다운 선생들이었어. 좋아진 것이 있다면 단 하나, 체육복을 갈아입고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
대신 우리 손엔 동그란 것이 쥐어졌지, 붕대. 열심히 돌리고 감았어. 친구의 손목에 어깨에 머리에. 네 머리가 동그래서 붕대를 감다가 자주 빠져나왔지. 빠져나오는 순간은 너나 나나 푸하하하 하고 웃었지만 막상 실기시험이 다가오면 나는 내심 조마조마해졌어. 시험 때는 빠지면 안 될 텐데. 너는 다행히 큰 불만 없이 쉬는 시간, 점심시간에 나의 붕대 마네킹이 되어 주었어. 덕분에 손재주 없는 나도 머리 붕대감기 A를 받을 수가 있었고.
추워져 가는 늦가을 어느 날이었어.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더라. 너네가 교련 마지막 학년이라고, 내년부터 없어진다고. 약간의 탄식과 수군거림이 있었고 다시 다들 집중해서 붕대를 감았지. 짝의 손에 팔에.
그 말을 듣고 넌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일순간 화가 났어. 왜, 왜 이따위 영양가 없는 과목을 나까지 들어야 하는 거냐고, 왜 한 살 차이 난다는 이유로 아래 학년은 이 과목을 듣지 않아도 되는 거냐고. 거지 같은 과목을 나까지 듣는다는 사실이 너무 화가 났어. 망하려면 다 같이 망해야지 왜 나만 망해, 이런 기분. 그날따라 붕대는 또 예쁘게 감겨서 그 화를 금방 잊긴 했지만.
한 학기 내내 붕대를 손목에 감고 팔에 감고 머리에 감다가 문득 물었어. 선생님, 근데요 이거 왜 배워요? 예전엔 전쟁 나면 다친 사람 응급용으로 배웠는데, 요즘은 사고 후 처치 목적으로 배우는 거지, 갑자기 다칠 거 대비해서 배워놔야지. 다치면 119를 부르고 병원을 가야지 무슨 붕대를 감고 있어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어. 평생을 붕대 감는 법을 가르쳐온 사람에게 예의는 차려야 할 것 같아서.
한편으론 붕대 감는 게 수학보단 낫겠구나, 싶은 생각도 드는 가을이었어. x와 y와 z가 그래프에서 널을 뛰는 삼차 방정식을 도대체 어디에 써먹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실생활에선 쓰이지 않을 거 같은데 그거에 비하면 실용적인 건 사실이니까. 열일곱 살의 가을이 그런 실용적이고 한편으론 쓸모없는 생각으로 돌돌 말리고 겨울이 펼쳐졌어. 그렇게 교련의 마지막 수업 날도 다가왔고.
우리의 교련 마지막 수업 날이 어땠는지 알아? 난 기억이 안 나. 그냥 그저 그렇고 건조하고 별로였을 거야. 그만큼 내 인생에 아무 임팩트 없는 날이었을 거야. 교련이 끝나고 2학년부터 이딴 거 안 배워도 된다는 생각은 좀 좋았을 거고 수능을 보고 대학생이 되고 연애를 몇 번 하고 출산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세 번을 했어.
가끔 꼰대 같고 싶을 때, 내 나이가 적잖다 라는 걸 유치하게 드러내고 싶을 때 술에 취한 척 혀를 꼬고는 볼륨을 높여 말하곤 해. 야, 나 교련 배운 여자야. 다들 웃어. 이대 나온 여자도 아니고 교련 배운 여자라니. 어떤 웃음인지 종류는 중요하지 않아, 웃는다는 게 핵심이지.
여기저기서 대답이나 질문들이 튀어 오르지. 나도 교련 배웠는데. 그 말의 주인이 남자였을 때 몇 번 물어본 적이 있어. 너넨 뭐 배웠어? 우리? 총검술. 몇몇 남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슉슉 뭔갈 휘두르는 자세를 취해 보이기도 했어.
총검술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나올 단어는 아니었으면 좋겠지만 우리나라 남성들, 90년대까지 고등학교를 다닌 남성들에게 교련과 총검술은 한 세트였어. 라떼와 조각 케이크, 탈모방지 샴푸와 린스, 항생제와 유산균, 비빔면에 오이채, 교련과 총검술. 열일곱열여덟의 남자아이들이 목각 총검을 휘두르는 동안 그 옆 여고의 열일곱열여덟 아이들은 그들이 다칠걸 대비하여 붕대를 감았지, 손목에 어깨에 머리에.
교련 배운 여자야, 에 튀어 오르는 질문도 있지. 교련을 배우지 않은 순수함이 묻어있는 그래서 내가 좋아하지 않았던 표정들로, 교련에서 뭐 배워요? 남자들은 총검술, 나는 붕대감기라고 답했어. 그거 왜 배워요?라는 질문이 바로 이어졌어, 대부분. 그러게, 그런 걸 왜 고등학교에서 가르치고 배운 걸까.
요즘 삼사십 대를 보면 교련 과목을 배운 사람이나 안 배운 사람이나 비슷하게 힘들고 상처받고 즐겁고 열심히 사는 것 같아. 역시나 교련은 삼차방정식만큼 우리 일상에 쓸모가 없는 거였어, 우리에게 가까운 건 붕대보다 119니까.
그런데 있잖아, 난 가끔 ‘교련’이라는 단어를 떠올려. 그 시대를, 굳이 쓰자면 '군사정권의 잔재’가 얼룩덜룩하게 남아있던 시대를 지나온 우리가 만든 지금의 시대에 교련이 어떤 흔적을 남기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야. 흔적이 없어,라고 함부로 말하지 못하겠는 건 우리 무의식 속에 총검과 붕대가 여전히 휘두르고 가르고 말고 펴고 하고 있는 것만 같아서. 우리의 생각을, 사고를, 사회에 대한 관념을, 현상에 대한 반응을, 생명에 대한 존중을, 감정과 감각을, 인격을.
한편으론 지금의 아이들이 교련의 직접적인 영향 없이 자랄 수 있는 게 다행이다 싶어. 삼차방정식은 여전히 그들을 평가하고 재단하겠지만, 총검술이나 붕대감기를 배울 시간에 배려술이나 상처 감싸 안기 같은 걸 배울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천천히 사회가 투명해지길 바라니까.
마지막 교련 교과서
교련수업 마지막 날 우리는 어땠을까 정말 궁금해지네. 분명한 건 우린 함께했다는 거고 나름의 속 시원함을 공유했을 거고 어떤 첨가물 없는 웃음을 지었을 거라는 사실이야. 교련이라는 과목이 이끈 시대가 저물고 우리의 열일곱이 그렇게 함께 지나가고 있었다는 사실, 그거면 되는 거야.
오랜만에 연락해서 ‘교련 마지막날 기억나?’ 물어도 그러려니 해줘. 추억이니 그립니 이런 말들은 쑥스러우니까, 내 한 시절에 예쁘게 있어줘서 고맙다는 말도 부끄러우니까, 그냥 '교련이 뭐냐 교련이'하고 웃으면서 넘어가 줘. 그 핑계로 그냥 네 목소리 오랜만으로 들으려는 것 뿐이니까, 나와 같은 색깔의 추억을 간직한 너의 안부를 듣고 싶은 것 뿐이니까.
* 사진 출처: 피터팬 님의 블로그, 무명의더쿠넷
4인 4색, 결 다른 사람들이 글쓰기 위해 모였습니다.
제대로 한번 써보자는 모의이며, 함께 생각을 나누며 어울려 살자는 시도입니다.
격주 목요일 매거진에 글로 작당 모의할 예정이니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자, 그럼 수작(手作) 들어갑니다~, 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