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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우리가

팔공 구공 이야기, 프롤로그

by 진샤


진샤 _

솔직하게 말해야겠다. 어떤 연재를 하자고 했을 때, 나는 재미있고 코믹한 기획을 해보고 싶었다. 굳이 옛날이야기를 꺼내자는 그런 말이 오고 갔을 때 나는 ‘설마’라고 생각했다. 속마음과 다르게 나는 깨방정을 떨며 찬성을 했다. 자신 있다고 했다. 그렇게 80, 90년대 이야기를 쓰자고 정해졌고 나는 조금 난감해졌다. 80년대 초 태어난 나에게 80, 90은 아직 스물도 되지 않은 인생이었다. 재미있는 이야기보다는 조금은 애잔하고 서글프고 서럽기도 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다시 주제를 뒤엎고 싶었지만 이미 첫 발행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렇게 마흔의 봄과 여름에, 내 스무 살 이전을 훑어보았다. 애잔하고 서글프고 서럽기만 할 줄 알았는데, 그렇기만 한 것은 아니어서 나는 조금 놀랐다. 애잔하고 서글프고 서러운 가운데, 어떤 보드랍고 말랑하고 따스한 것이 있었다. 기대하지 못한 것이었다. 과거의 사실에 시간이 화학작용을 일으켜 다듬어 놓은 것, 그것은 ‘추억’이었다. 추억의 실체를 만져보기엔 내 나이 마흔, 아직은 덜 익은 기분이 들었다. 추억거리를 더 만들어야 할 것 같은 나이였다.

그럼에도, 추억은 추억이었다. 네 명이 다른 나이를 지닌 채 함께 걸어왔던 같은 시간대는, 서로 다른 추억으로 우리 안에 새겨져 있었다. 웃으며 울며 그렇게 서로의 추억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며, 그렇게 우리만의 추억을 만들어 갔다.

결론부터 말하면 팔공 구공 이야기는, 재미있고 코믹한 기획이었다. 그뿐 아니라 아련하고 서글프지만 따스하기까지 한 기획이었다. 그 기획 속으로 들어가기 전 준비해야 할 것은 오직 하나, 흑백텔레비전에서 컬러 브라운관으로 넘어가는 시절을 받아들일 풍요로운 마음뿐이다.





민현 _

나의 80년대와 90년대는 빠르게 지나갔다. 모든 게 빠르게 변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마음을 전하는 방법은 손편지에서 이메일로 변했고, 손을 내미는 방법은 집전화에서 삐삐, 휴대전화로 바뀌었다. 초등학교 때 친구와 연락하던 수단을 중학교 때의 친구와는 쓸 수 없었고, 인화된 사진으로 새겨지던 고등학교 때의 추억은 대학교에 들어가고선 디지털에 담겼다. 2000년대가 되면서 어른이 되었다. 주위의 다른 사람들처럼 직장생활을 하고, 평범한 어른의 삶을 살았다. 어쩌면 어른이 된 이후의 20년의 세상이 어린 시절 20년의 세상보다는 훨씬 빠르게 변했을 텐데, 그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 어른으로의 삶은 지루했다. 느려진 것만 같은 시간이었다.

내 인생의 80년대와 90년대는 숨 가쁘고 강렬했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까지의 찬란했던 학창 시절이 그 시기를 꿰뚫었다.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이루어질 것만 같았고, 접하는 모든 것들이 몸에 새겨졌다. 이제는 밋밋하고 느려진 시간 어느 한 지점에 서서 그 시절의 눈부셨던 기억을 끄집어낸다.





소운 _

지구를 지키는 방위대, 독수리 5형제는 5형제인데 작당은 채워져도 4형제이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내가 맏이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연령별 40대 50대 비율, 성별도 2대 2, 아주 좋은 비율인데, 대열을 정비했을 때 각과 모양이 안 산다는 아쉬운 점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렇지! 우리가 ‘글’로 모인 사이인 만큼 가장 중요한 ‘글’을 1인으로 삼으면 안정적이고도 환상의 조합이 되는 것이다. 이제 구도가 좀 잡혔다. 승리의 ‘V’ 자 꼭짓점에 ‘글’이란 녀석을 꽂아 놓으면 완벽하다.

사람의 생김새가 다르듯 작가의 글 모양이 다르고 색깔도 제 각각일 터. 우리는 같은 주제로 과거에서 비롯된 현재의 ‘나’를 찾아보고자 했다. 모든 타인은 ‘또 다른 나의 모습’이기도 하니까. 서로 다른 사람과 현실이지만 우리는 서로가 일부분 개입된 과거를 살아가고 있다고 믿었으니까. 우리는 다른 손과 펜을 거치며 지난 삶의 흔적에 기대어 보고 싶어 했다. 작가 고유의 문체를 일컬어 민현체, 소운체, 진샤체, 파체 부르며 서로를 독려했다. 어메이징 작당, 언빌리버블 작당… 을 확인하는 시간, 순간들은 함께여서 매 순간이 좋을 수밖에 없을 터였다. 서로 기대어 나아가 보기로 했다.





Faust _

어중간한. 지금 내 삶을 말해주는 말이다. 한때는 치열하게 살았다. 그럴수록 내 삶은 잔혹해졌다. 폭풍이 어느 정도 지났을 나이가 되니 인생 꼼수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덥지도 차지도 않은 미지근한 인생을 선택했다. 내가 들여다봐도 졸음이 올 정도다. 이렇게 사니 무얼 해도 중간치도 못하는 반풍수 다됐다. 사람들은 나를 중늙은이, 그냥 늙은이, 찌그러진 냄비라 불렀다. 이런 지극히 사심의 세월을 살다가 「작당모의」를 만났다. 그들의 수작에 넘어가 인생 뜨겁게 달구어지기 시작했다.







* 대문 그림 출처: 일러스트 이윤정(인스타 yoons_grimn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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