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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 그놈들은 많았다.

<그 시절 그 장소: 男高 멸공동산>

by 진샤


브런치북 발행 규칙상 '작당모의' 브런치북 발행을 위해 제(진샤) 이름으로 재발행을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이해 부탁 드립니다. 원문은 아래 주소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매거진 발행작가: faust(https://brunch.co.kr/@love2060/128)


기억 중에는 애써 던져버려야 할 몹쓸 짐 같은 게 있다. 살다 보면 예기치 않게 그 기억이 되새겨지는 순간을 만난다. 풍우가 대작하면 작은 새소리 정도야 대수롭지 않은 법, 그것도 생의 일부분으로 여기면 유쾌하지는 않아도 헛웃음 정도로 넘길 수 있다.

멸공동산, 학교 운동장을 끼고 있는 뒷산이다. 산 이름이 ‘멸공동산’이라니, 작은 둔덕이지만 이름만으로 공산당을 멸할 태세다. 동산 입구에 소각장이 있었고, 쓰레기를 태울 때 타오르는 불을 우리는 ‘멸공의 횃불’이라 불렀다. 때는 전두환 세력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던 시대다. 폭력으로 세운 정권, 신군부.

인류 최초의 못된 짓은 폭력이다. 카인의 후예와 얼추 닮은 구석이 있는 자들이 있다면 바로 남고高다. 폭력의 뇌관을 품은 불덩어리들을 한데 모아놓은 곳, 여기서 폭력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것은 광야에 바람 한 점 없길 바라는 것과 같다. 그보다 더 당연하게 여겼던 것이 있었으니, 교사의 폭력이었다. 공무 폭력.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국가폭력이 되는 것이다.


천혜의 요새 멸공동산, 학교 폭력의 합법적 온상지였다. 1984년 4월4일 수요일, 내 생애 잊을 수 없는 날, 조지 오웰의 『1984』 주인공 윈스턴이 처음 펜을 들었던 날과 같은 날이다. 훗날 숨죽이며 읽다가 부들부들 떨었던 이 장면, 1984년 4월4일! 윈스틴을 마주한 순간 그는 곧 나였다.


4월4일, 그날 반 전체는 운동장을 돌았다. 그러다가 무에 수틀렸는지 교사는 우리를 멸공동산으로 집합시켰다. 폭력교사는 교실 속 제왕 같은 존재다. 선생은 때렸고 학생은 맞았다. 내장이 뒤틀렸다. 왕 앞으로 나아갔다. ‘이제 그만하세요.’ 이 한마디에 손바닥, 발길질, 몽둥이까지 마구 날아왔다. 흙바닥에 자존심이 깨구락지 되던 그날, 처음으로 학교를 그만 다녀야겠단 생각을 했다. 그 선생은 그날부터 ‘그놈’이 되었다.


수업이 끝나면 멸공동산은 장군(1진)과 그의 떨거지들 서식지가 된다. 하이에나 같이 먹잇감을 노리는 무리들, 잠재적 폭력배들이다. 그중 한 녀석이 나를 노렸다. 쪽지 한 장이 날아왔다. ‘끝나고 따라와, 멸공으로’ 또 멸공동산이다. 대장으로 보이는 녀석과 함께 네댓 명이 소각장 뒤쪽으로 포진하고 있었다. 그들 앞에 다가서자 녀석은 내 정강이를 사정없이 깠다. 털어! 다 털었다. ‘꼬 바치면 디 진다이~’ 3개월 모은 나이키 운동화 값과 한 달 용돈 합8만 원. 삥 뜯겼다. 녀석이 그놈2다.


제대 후, 동창을 통해 그놈1의 소식을 들었다. 돌아가셨다고 했다. 간암으로. 지금은 존재하지 않아도 마음 골백번 삭여야 부를 수 있는 이름 당신이여, 언젠가 한 번 만나면 물어보고 싶었다. ‘꼭 그랬어야 했냐고, 내가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당신의 손에, 당신의 구두 발에, 당신의 몽둥이에 폭압을 당했어야 했냐고, 흙바닥에 엎어진 왜소한 한 아이를 내려다보며 서릿발 돋은 무저갱의 언어를 던져야 했냐고’...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소식하나가 또 들려왔다. 그놈2가 공무원이 되었다고. 그것도 교도관, 교도관이라면 죄지은 사람을 교화, 교정하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 아닌가. 이런 코미디가 어딨나. 지가 교정, 교화받아야 할진대 누굴 교정, 교화하겠다는 건가. 지가 들어가야 할 그곳을 지가 지키고 있었다. 그놈2가 사는 동네에 이런 현수막 『축하합니다. 학교에서 삥 뜯던 000 이장님 둘째 아들놈이 대한민국의 교도관이 되었답니다. 감축드립니다』 이렇게 걸고 싶었다.


'옛일'이란 한 번씩 듬성듬성 떠오르다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몽환의 섬 같은 것. 목을 죄는 공포도, 진절머리 나는 기억도 깊은 한 숨 같은 것. 한 번 두 번 쉬고 나면 시간의 늪 속으로 점점이 사라지는 법. 세월이 퍽이나 흘렀다. 아내의 지인 중심으로 부부 모임이 생겼다. 남편들은 마지못했지만 이내 남자들이 더 극성이었다. 창원에서 이사 온 여성분이 아내의 지인이 되었다. 창숙씨! 우리가 사는 이곳은 도시 변두리라 분위기는 그냥 시골이다. 한쪽에는 아파트 또 다른 한쪽은 논밭 그대로다. 비교적 장벽이 낮은 합리적 텃세가 존재하는 곳.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한 창숙 씨는 토박이 모임에 남편과 함께 참여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판단했다. 몇몇 반대는 있었지만 워낙에 살가운 창숙 씨라 더는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호감이 무르익을 즈음, 이윽고 신입 부부의 첫 모임이 정해졌다. 어둑한 그날 우리는 카페에 둘러앉았다. 기분은 청량했다. 별일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느낌. 문이 열렸다. 창숙 씨가 밝게 인사를 하며 들어섰다. 남편이 줄레줄레 뒤따라 들어왔다. 큰 키에 꼬챙이 같은 몸, 배 볼록하게 나온, 퍼석한 중년이다. 고개 한 번 수그린 후, 우리 무리를 훑다가 시선이 내게 멈췄다. 그의 동공이 흔들렸다. 얼굴빛이 푸르뎅뎅하게 변한다. 낯익다. 그놈2다. 그 부부의 참여는 한 번으로 끝났다.


내 인생에 그놈들은 많았다. 마치 그놈들을 만나기 위해 만들어진 인생처럼. 두 사람 콕 집어 지면에 올리게 된 점 미안하게 됐다. 그래도 한 시절 검게 그을린 멸공동산의 기억을 헹구어 낼 수 있는 게 이것뿐이니 어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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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 4색, 결 다른 사람들이 글쓰기 위해 모였습니다.

제대로 한번 써보자는 모의이며, 함께 생각을 나누며 어울려 살자는 시도입니다.

주 목요일 매거진에 글로 작당 모의할 예정이니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자, 그럼 수작(手作) 들어갑니다~, 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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