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세상에 뿌려진 로라장만큼

<그 시절 그 장소: 로라장>

by 진샤



5학년이었는지, 6학년이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어쩌면 3학년이나 4학년이었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 한 시절 나는 매일 로라장을 가는 소녀였다는 사실이다. 이쯤에서 '비행 어린이였군'하는 오해를 하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진짜 오해이다. 우리 반에서 1등과 2등과 3등 하던 친구들이 다 같이 갔다. 나는 어떤 때는 1등도 하고, 다음 시험에서는 2등도 하고 3등도 했으니 나름 모범생이었다. 그러니까 그 시절 나에게 로라장은 친구들과 건전하게 로라를 타는 곳, 그런 곳이었다.

한 시간에 천 원이었던 것 같다. 좋은 로라를 잘 고르는 것이 관건이었지만, 대부분 로라스케이트는 앞에 구멍이 났거나 비슷하게 생긴 다른 짝이거나 바퀴가 조금 틀어져 있었다. 대충 내 발에 맞는 스케이트를 신고 작게 한 바퀴를 돌아본다. 별 문제없으면 스테이지(?!)로 나가는 것이다. 한 시간 동안 내 인생의 무대가 될 그곳으로.

로라장을 가득 채운 특유의 냄새마저 좋았다. 돌이켜 보면 그 냄새는 곰팡이 냄새였다. 세 바퀴쯤 돌고 나면 내 코와 폐는 로라장의 곰팡이와 땀 냄새로 충만해진다. 눈은 오로지 앞을 향하고 귀는 뭐라고 하는지 알 수 없는 노래들이 차지했다. 나의 할 일은 그저 반시계 방향으로 돌고 돌고 또 돌고 도는 것이었다. 음악 소리에 친구의 말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고 나눌 이야기도 많이 없었다. 음악과 로라와 내가 합일(合一)되는 것, 그보다 중요한 일은 없었다.

어라, 쟤가 언제부터 저걸 탈 수 있었지. 은희가 갑자기 뒤로 타기 시작했다. 이런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분명 나랑 똑같이 탔는데 아니 나보다 더 못 탔는데, 어쩌다 뒤로 탈 수 있게 된 거지. 나중에야 알게 된 것이었지만, 은희 엄마가 로라스케이트를 사주셔서 따로 연습을 할 수 있었다. 오로지 로라장에서만 스케이트를 타는 나와는 연습량이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분했다. 막상 뒤로 돌아보긴 했지만 발이 나아가지 않았다. 발을 떼기만 하면 넘어지는 기능을 장착한 로봇이 된 것 마냥 꽈당 넘어졌다. 저쪽에 앉은 잘생긴 오빠가 풉 웃은 것 같기도 했다. 김은희, 이게 다 너 때문이야. 어라, 권계옥 너는 왜 그래? 왜 나랑 같이 뒤로 타기 시작했는데 쭉쭉 나가는 거야? 십분 넘게 뒤로 서 있기만 하다가 의자에 털썩 앉았다. 고개를 숙이고 질질 짰다. 나만 뒤로 타지 못하는 로라 스케이트, 벗어서 집어던지고 웃으며 신나게 타는 모든 사람들을 이곳에서 쫓아내고 싶었다. 나만 나가면 될 일이었지만 꼴에 자존심이 있어서 그건 또 싫었다. 그냥 다 싫었다. 나가지도 못하고 일어서지도 못하고 울음을 그치지도 못하고 총체적 난국이었다.

그때, 내 인생을 관통한 질문이 된 노래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여전히 내게는 모자란 날 보는 너의 그 눈빛이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 알 수 없던 그때

그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라도 나는 울음을 멈춰야 했다. 곰팡이 냄새가 가득 채운 공간을 청량하게 만드는 목소리였다. 처음 듣는 음악이었는데, 어쩐지 몇 번 들어본 것처럼 익숙했다. 마치 잘 아는 노래를 듣는 것처럼 고개를 까딱이고 흥얼거렸다. 어차피 소리가 크고 울려서 내가 흥얼거리는 건 다른 이들에게 들리지 않았다. 열 살이 갓 넘은 존재의 허세와 객기 충만한 몸짓이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느껴질 우리의 거리만큼
난 기다림을 믿는 대신 무뎌짐을 바라겠지


지금까지 흥얼거리며 좇던 남자의 목소리보다 더 청량한 여자의 목소리, 가사를 듣는 순간 나는 나의 로라스케이트를 내려다보았다. 촌스러운 주황색 바퀴, 더 촌스러운 남색 브레이크와 형광 민트가 발광하는 스케이트 끈. 보란 듯이 뒤로 타는 은희와 그를 따르는 계옥이, 스피커, 멀쩡한 한 짝이 거의 없는 로라스케이트, 화장실 지린내가 풍기던 로라장 입구, 이 모든 것이 언젠가는 사라질 것임을 미리 보았다, 아니, 느꼈다. 우리 모두에게 지금은 생각도 못할 거리가 생길 거고 그걸 받아들여야 할 테고, 살다 보면 무뎌진 건지 어떤 건지 모른 채 무뎌져 있을 테고.


사랑은 그렇게 이뤄진 듯해도
이제와 남는 건 날 기다린 이별뿐


사랑이 이뤄지는 게 어떤 건지 겪어보지도 못했는데 벌써 이별을 받아들인 기분이었다. 이 노래를 이렇게 끝낼 수 없었다. 로라장 아줌마에게 물었더니 아줌마는 테이프를 멈추고 꺼내 보았다. 덕분에 로라를 타던 사람들이 멈칫해야 했다.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 아줌마의 광대뼈에서 나오는 듯한 걸쭉한 목소리와는 안 어울리게 예쁜 제목이었다.


그날부터 나는 꽤나 자주 ‘세상에 뿌려진 사랑’이 얼마만큼일지를 상상했다. 어떤 날은 사랑이 지구를 아니 우주를 가득 채우는 듯했고 또 어떤 날은 세상에 사랑이 뿌려진 적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뿌려진 사랑을 고민하다 보면 은희의 뒤로 타기나 나의 정체된 스케이트 실력은 더는 고민거리가 되지 못했다.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 과연 나는 그 사랑만큼 사랑하며 살 수 있을까, 한동안 이것이 가장 큰 인생 과제였다.

천천히 빠르게, 나이를 먹고 사회라는 걸 실감하고 결혼과 육아로 무뎌진 건지 어떤 건지 모르며 살아오던 어느 날, 라디오에서 다시 이 노래를 들었다. 무의식적으로 폰을 들고 ‘로라스케이트장’을 검색했다. ‘롤러스케이트장’으로 검색된 이미지에는 예전과는 다른 세련됨이 있었다. 그래도 아직 로라장이 있긴 있구나, 어쩐지 다행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은희는 미국에서 사는 것 같다. 계옥이는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그 시절 함께 한 이름 대부분과 그렇게 거리감을 갖게 되었고, 이제 와 남는 건 날 기다린 이별뿐이란 걸 체감하며 살고 있다. 10살 즈음 가진 미지의 경험이 진짜 나의 것이 되는 데에 30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랑을 세상에 뿌리며 살아온 걸까, 이 질문의 답을 찾는데도 그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까. 알 수 없는 까마득함이 느껴지지만 아주 난감하지는 않다. 기다림을 믿으며, 무뎌짐을 바라며 지내다 보면 그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걸 이제는 아니까.






그 시절, 세상에 로라장은 지금보다는 많았을 테다. 잠시 사라졌다가 신복고 혹은 ‘레트로’라는 이름 뒤에 숨어 다시 생겨나고 있다.

문득 세상에 뿌려진 사랑은 어쩌면, 세상에 뿌려진 로라장만큼, 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절에 좀 더 충만하게 느껴진 감정, 그것을 사랑이라 한다면 결국 사랑은 로라장만큼 세상에 뿌려진 게 아닐까. 예전의 로라장과 지금의 로라장은 많이 달라졌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곳에서 함께 하고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 노래를 듣는다면, 세상에 사랑은 충만하지 않은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세상에 뿌려진 로라장만큼, 그만큼 사랑하며 남은 생의 시간을 살아야겠다.






* 사진출처: 동아일보


봄꽃이 눈을 산란시키는 계절, 작당모의가 돌아왔습니다. 봄처럼 따스한 수필을 쓰시는 파우스트님이 함께 하시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2주에 한 번 목요일, 작당모의다운 글들로 찾아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4인 4색, 결 다른 사람들이 글쓰기 위해 모였습니다.

제대로 한번 써보자는 모의이며, 함께 생각을 나누며 어울려 살자는 시도입니다.

주 목요일 매거진에 글로 작당 모의할 예정이니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자, 그럼 수작(手作) 들어갑니다~, 큐!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