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지금의 우리에게

팔공 구공 이야기, 에필로그

by 진샤


Faust _

찐 맛없는. 과거의 내 삶이 그랬다. 볼품없는 과거를 없애고 싶었다. 그래서 죽였다. 세월 지나 알았다. 옛날은 죽여 없앤다고 사라진 게 아니라 얼음처럼 깡깡 굳어 있었다는 것을. 역시 글은 뜨겁더라. 열이 가해지면 얼음은 녹고, 진흙은 단단해지는 법. 뜨거운 글이 닿는 순간, 옛날은 녹고, 이미 멘탈은 단단해져 있더라는 것이다. 참 다행스러운 건 추억은 나를 증오하지도, 나에게 등을 돌리지 않았다는 거다.

과거로 발을 내딛는 순간, 익숙함이 아닌, 낯섦의 세계와 마주쳤다. 그것은 두려움이었다. 이를 어쩌나, 이미 살았던 생을 다시 무를 수 없으니, 더 가보는 수밖에 없지 않겠나. 옛날로, 옛날로 끝까지 가보면 뭐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 어느 지점에 아프고 수치스러운, 그럼에도 그 순간이 진실했다는 진심 하나, 과거와 만난 활자가 주는 미세한 울림 하나쯤 있다면 여한이 없을 것 같았다. 그래, 낯섦과 직면하자. 내 안에서 갱신이 일어나고 이상 징조가 보였다. 변하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변해야 한다. 비록 실패하고, 부끄럽고, 지질한 장면들이지만 과거를 쓰면서 현재가 읽혔다. 그토록 찐 맛없었던 지난 삶과 어깨동무하고 싶다.





소운 _

시절에 대한 이야기는 모든 것이 그리움 그 자체였다. 돌이켜 생각하면 아름다운 이야기, 아쉬웠던 이야기들이 어디 한둘이랴. 그 시절을 함께 지나오며 감정을 공유하고 마음을 나눈 사람들이 한 둘이랴. 나의 미래를 위해 고민하고 아파하고 노력한 흔적들이 또 어디 하나 둘이겠는가. 그래서 글 소재를 정하고 글을 쓰면서 때론 먹먹했고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와 참을 수 없었고 가끔 눈물을 흘렸다. 그래서였을까? 함께 8090의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다른 작가들의 글에서도 그런 감정의 예민함과 섬세함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살아온 시대와 시절, 공간은 달라도 치열하게 살아온 삶의 궤적과 추억의 본질은 같은 것이구나 하는. 그래서 모자란 나의 옛이야기도, 바보스러웠던 행동과 생각마저도 하나의 과정으로 다소곳이 이해되었다. 지금의 나의 모습이 한 여름밤의 꿈처럼 허황된 역사가 아니라 밤하늘에 콕 박혀 지나온 역사를 증거 하는 별처럼 이어져 내려온 것이로구나. 그래서 오늘의 나는 소중하고 귀한 존재로구나… 어제의 나에서 아름다운 지금의 나를 함께 내보여주고 공유한 소중한 기록과 순간들이었음을, 뒤돌아서 내 가슴에 남은 파문의 결을 더듬어 보는 이 시간이 더없이 좋다.





민현 _

아내는 누구보다도 내 브런치 글을 먼저 읽는다. 글에 아내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은 만큼 아내의 팩트체크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글을 읽고 난 아내는 자신을 묘사한 부분에 왜곡이나 과장이 없을 경우 통과! 합격! 등의 말을 외치며 글 발행을 허락한다. 나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주된 내용인 이번 매거진의 글을 읽고 난 아내의 반응은 이전 글들과는 조금 달랐다. 아내는 글을 읽고 나면 늘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당신한테 그런 일이 있었어? 하고 물었다. 그럼 음? 내가 얘기 안 했던가? 하며 글에서는 미처 쓰지 않은 더 깊고 자세한 뒷 이야기를 펼친다. 냉장고 안의 맥주가 꺼내지고, 아내의 어릴 적 이야기가 더해지면서 서로가 나누는 추억들은 맥주 한 모금의 안주가 된다. 그럴 때면 아내는 함께 나눈 어릴 적 이야기를 지금의 나에게로 끌고 온다.

"그래서 지금의 당신이 있는 거구나."

지금의 나. 글을 쓰면서도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린 시절의 글을 쓴다는 건 평범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더듬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아내의 말을 듣고 보니 글로 써낸 하나하나의 추억들은 모두 지금의 나였다. 그 시절의 추억으로 내놓은 여섯 편의 글은 나를 이루는 여섯 개의 퍼즐 조각이었고, 그것들이 나의 피와 살이었다. 글을 쓰는 내내 설렜다. 어쩌면 그 설렘은 내 글을 읽은 아내와 함께 맥주를 마시며, 몰랐던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진샤 _

과거를 훑어보는 일은 즐겁지 않은 일이다. 인생이 절반의 확률로 즐겁고 슬프면 좋겠지만, 돌아보면 어쩐지 슬픈 일이 더 많은 것만 같다. 기쁨은 잠시이고 슬프거나 화나거나 애잔한 일이 대부분 인 것만 같다. 이런 기분이 들 때면 글을 쓰는 일상이 까마득하게 미워진다. 글을 쓰며 과거를 들추며 슬퍼하지 않아도 일상은 자질 구리 한 슬픔과 분노 투성이다. 굳이 과거까지 들추지 않아도 충분히 슬프고 화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과거를 들추었다. 오래 울었고 조금 웃었다. 오랜 시간 전의 나와 가족과 친구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일부러 슬퍼했고 그때의 분노를 상기시켰다. 마침내 나는 정화(淨化)되었다. 찌꺼기처럼 남아있던 내 안의 아이 같은 감정들을 글 속으로 보내 주었다. 분명 찌꺼기였는데, 그 감정들은 글 속에서 ‘추억’이 되어 반짝였다. 글은 늘 그랬다. 내 안의 것을 탈탈 털어 늘여 놓으면 어느새 컬러가 되었고 빛이 났다. 이상한 일이었지만, 나는 그 경이로운 경험을 잊지 못해 중독된 사람의 모습을 하고 글을 썼다.

작당의 힘을 빌려 80년 정확히는 83년 이후 내 기억 속의 몇몇 이야기들을 꺼냈다. 분명 별 것 아닌 이야기들이었는데, 어느새 이렇게 또 반짝이고 있다. 작당의 힘이자 글의 에너지이다. 내가 작당이라는 이름의 사람들과 함께 글을 써 내려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 대문 그림 출처: 일러스트 이윤정(인스타 yoons_grimnori)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