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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Feb 03. 2023

불가능한 일

< 내 인생의 미스터리_사람 >



  클수록 아빠는 모를 사람이었어. 분명 나한테 좋은 사람인데, 가끔 그렇지 않은 모습이 있기도 하고. 어쨌거나 나한테 좋은 사람이니까 그럼 됐지, 하면서 넘어가는 횟수가 적어서 그냥 아빠를 좋아했어. 아빤 분명 좋은 사람이었으니까.

  성인이 된 동생과 이야기하던 어느 날 우리는 나름의 합의를 보았지. 아빠는 좋은 사람이지만 좋은 아빠는 아니라고. 동생과 나는 그 이후 약간의 끄덕임과 꽤 긴 침묵을 나눴어. 너무 공감해서 굳이 말을 해야 할 필요도 못 느낀 거였지. 그 후에 말을 붙인다면 그 말들은 모두 사족이 되었을 테니까. 뱀에게 붙어있는 다리, 아무 쓸모도 없고 필요도 의미도 없고 뱀에게서 떼 봤자 뱀만 아플 뿐인 그런 말들.

  아빠는 왜 좋은 아빠는 되지 못했을까. 한없이 다정하고 따뜻하고 자유로운 마음의 좋은 사람이었으면서, 왜 좋은 아빠의 미덕은 갖추지 못했을까. 가족을 위해 생계를 책임지지 않고 그럴 노력도 않고 오히려 잊을 만할 때마다 어떤 한숨을 불러일으키는. 그래서 말이지, 아빠는 내 인생의 최대의 아이러니야. 아빠를 좋아하면서도 남편으로서의 이상형은 ‘아빠와 정반대인 사람’이었고 그런 사람을 만났으니까. 그래서 아빠 같은 다정함과는 거리가 있는 – 물론 그만의 다정함은 있지만 나는 아빠 같은 다정함에 익숙한 사람이라 – 생활을 하고 있지, 너도 일정 부분 알고 있다시피.

  아빠는 이제는 좀 알 것 같기도 해. 그러나 말 그대로 ‘좀’이야. 알았다 싶을 때 이벤트를 터트리는 아빠를 보면 여전히 내가 모르는 사람이야. 영원히 알 수 없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


  

  과대 그 녀석은 어땠고. 그러고 보니, 너에게 그 말은 안 했었구나. 너에게 은근히 많은 말을 하지 않았었네. 넌 나에 대해 다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역시 우리 사이엔 이렇게나 많은 사이들이 있구나. 그 녀석, 일 년 후배와 그렇게 동네방네 소문 다 내는 연애를 하고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나에게 말했지. 예비역 오빠들이 다 보는 앞에서(아마 그들이 부추겼을 거야). 너 좋아해. 뭐? 너 좋아한다고. 예비역 오빠들이 옆에서 오오, 킥킥킥, 하면서 소리없는 박수를 치고 엄지를 세워 보였어. 그 아이보다 오빠들이 괜히 더 괘씸했던 기분은, 기분 탓은 아니었을 거야. 아, 그래? 그랬구나, 몰랐어. 나의 대답에 그 녀석은 장작을 가지러 갔고, 그렇게 원어연극부 엠티가 끝나는 날까지 어색하게 지냈어. 그 이후는 여름방학이어서 다행이었고. 더는 그 녀석의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방학 동안 그 아이는 (너와도 너무 친했던) 내 친구와 몇 번 만나 밥도 먹고 영화도 봤대. 그러곤 말했다지, 너 좋아한다고. 도대체 남자 놈들이란. 그래서 넌 뭐라고 말했어? 친구는 나라면 생각도 못할 대답을 했더군. 군대 가기 전에 여기저기 쑤셔보는 거냐. 빌어먹을 연애 경력. 연애 경력 십N차를 자랑하는 친구다운 대답이 왜 그렇게 부러웠던 건지. 연애 경력 0차에 빛나는 나의 맹숭맹숭한 대답의 그나마 남아 있던 존재감마저 싹 사라지게 하더라. 그래도 어쨌건 둘은 나름 썸 비슷한 걸 타며 지내다 입대로 애매한 관계를 종결시켰지.

  뭐, 사실 그 정도면 나쁘지 않지. 키도 크고 사지 멀쩡하고 정신 상태는 더 멀쩡하고(그런데 나한테 왜 그랬을까) 성격도 좋았던(그런데 도대체 왜 나한테 그랬냐고) 녀석이라 호감을 떠나 연락 정도는 해봐도 될 만했는데, 나는 맘껏 오해하라는 나아가 오해 끝에 그어놓은 선을 알아채라는 투의 대답을 했어. 그래도 그렇지, 알 수 없는 놈 같으니라고, 그렇게 바로, 그것도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유를 너는 이쯤에서는 눈치를 챌까. 아마도 나라는 사람이 너에게 아마 가장 알 수 없는 사람이지 않을까 싶거든, 적어도 내 생각엔. 스무 살에 처음 만나 너에게 단 한순간도 다정하지 않은 적이 없었지. 널 정말 좋아했거든. 예쁘기도 했고 성격도 좋고 재미있고 노래도 잘하고 솔직하고. 널 좋아하지 않는 친구들이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어. 그런 너에게 나의 갑작스러운 행동은 진샤답지 않았을 거고, 술을 마시고서야 나에게 겨우 물어볼 용기를 낼 수 있었을 거고. 왜 나 끊은 거야? 나는 여전히 다정스럽게 거짓말을 했지, 너에게 솔직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이미 너는 너의 진짜 모습을 이십 년 동안 아무렇지도 않게 드러냈어, 나에게만. 너의 친구이기도 했던 나의 친구들에게는 나만큼 쉽지 않아서 위선을 보였지만, 나는 너의 친구이기도 한 나의 친구들에게 너의 위선을 듣는 데 지쳤어. 그들에게 보인 위선이 나에게만큼은 솔직하게 보일 때 내가 느끼는 비참함에 대해 혹시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넌 그런 종류의 감정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더구나. 나에게 술을 먹고 용기를 내어 물었다는 그 밤 나는 알았지, 너는 나에 대해 진지해본 적이 없다는 걸. 너 왜 나한테 갑자기 이러는 거야. 갑자기라니, 내가 너를 견딘 시간이 몇 년인데 갑자기라니. 네가 나에게 처음으로 진지하려던 순간 나는 너에게 처음으로 위선적이 되어 버렸어. 그리고 그게 마지막이었고. 험하지 않게 마지막이 되어 주어서 고맙고.


      




  나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살고 있어.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니. 사람이 사람을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야,라고 확신하고 살아왔어.

  그런데 있잖아, 얼마 전에 그 확신이 조금 깨졌단 말이지. 여덟 살의 끄트머리를 살고 있는 첫째가 묻더라. 엄마, 엄마는 왜 맨날 화가 나 있어요? 처음엔 그냥 푸하하 웃었어. 너무 진실된 질문이어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솔직엔 솔직. 그건 말이야, 엄마라서 그래. (너네만 보면 화딱지가 나서)는 ( ) 안에 숨겨서 100% 솔직은 아니긴 하지만 어쨌든.

  대답을 하고 보니 삼십 년 전의 내 엄마 생각이 나더라. 나의 내 딸의 차이가 있다면, 궁금해도 묻지 않는 아이와 궁금해서 묻는 아이라는 것. 엄마는 왜 맨날 화가 나 있을까. 그 질문의 답을 삼십 년이 지나 찾은 거지. 엄마들은 화가 나있는 사람. 물론 내 엄마의 화는 다른 이유 때문이라는 것도 어렴풋이 알 것 같아. 이것 봐, 엄마는 늘 화가 나 있는 존재라는 사실만 알았을 뿐, 그 이유가 다 다르다는 걸 겨우 알았을 뿐 여전히 다는 알지 못하잖아. 사람이 사람을 안다는 것, 그건 역시나 불가능한 일이야.

  그러니 너도 내가 왜 그렇게 너를 갑자기 끊었는지는 절대 알 수 없겠지, 네가 나한테 만큼은 왜 조금도 진지하지 않은 채 그저 편하기만 했는지 나도 알 수 없는 것처럼.


  우리 그렇게, 서로에게 영원히 미스터리로 남자.






사진 출처: 글그램




4인 4색, 결 다른 사람들이 글쓰기 위해 모였습니다.

제대로 한번 써보자는 모의이며, 함께 생각을 나누며 어울려 살자는 시도입니다.

격주 목요일 매거진에 글로 작당 모의할 예정이니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자, 그럼 수작(手作) 들어갑니다~, 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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