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인생의 미스터리_사람 >
우리의 결혼식 주례를 서 주셨던 분은 제주에서 4년간 살던 때 알게 된 분이었다. 아내와 함께 들었던 평생교육원 회화 수업에서 같은 수강생의 신분으로 처음 뵈었는데, 수강생 중 남자는 나와 그분뿐이어서 당시 내 나이의 두 배나 되는 어르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금세 친해졌다.(내가 연락하는 사람들 중 가족을 제외하면 이분이 나이가 가장 많다. 압도적으로 많다.) 젊은 시절 서울에서 사업체를 꾸리셨고,(그래서인지 제가 호칭을 뭐라고 하면 될까요? 하고 물었을 때 조금 고민하시더니 대표님이라 불러 달라고 하셨다.) 이런저런 부침을 겪으셨고, 은퇴하고 나서는 제주에 땅을 사 전원주택을 지어 살고 계셨다.
초대를 받아 몇 번 가 본 대표님의 전원주택은 멀리 제주의 북쪽 바다가 보이는 애월 중산간에 있었다. 짙은 회색으로 마감된 2층 주택 앞 넓은 마당은 적당한 높이로 깎인 손이 잘 탄 잔디가 덮여 있었고, 대표님 대신 마당을 차지한 개 두 마리가 간간히 심어진 나무를 반환점 삼아 돌며 뛰어다녔다.
두 마리 개의 이름은 원돌이, 제돌이였는데, 두 녀석 중 눈길이 계속 가는 놈은 순수 진돗개 혈통을 이었다는 원돌이었다. 사람만 보면 좋아서 신들린 듯 꼬리를 흔들며 달려드는 제돌이와는 달리 원돌이는 지금 자기 눈앞에 있는 사람이 적인지 아군인지, 자기 주인에게 해를 끼칠 마음을 몰래 숨기고 있는 사람은 아닌지 가늠하는 눈빛을 보내며 경계했다.(해를 끼칠 마음을 품더라도 자신이 지켜보고 있으니 소용없다는 당당한 눈빛이었다.) 대표님이 원돌이를 쓰다듬으며 괜찮아, 손님이야, 하며 진정시키면 그제야 드러냈던 날카로운 이를 안으로 숨겼지만 경계의 눈빛은 풀지 않았다.
대표님의 댁에는 여러 번 들러 식사를 같이 했고, 그럴 때마다 몇 시간씩 머무르며 서로 얼굴을 익혔는데도 원돌이는 끝내 곁을 내주지 않았다. 윤기가 흐르는 검은 털과 군살 없는 날렵한 몸매에 홀려 나도 모르게 손을 뻗으면 어김없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난 너 따위에게 내 몸을 내줄 마음은 없다, 라는 눈빛과 함께 으르렁댔다. 대표님 앞에서는 진돗개 혈통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발라당 누워 배를 드러내고 애교를 부리는 걸 보면 원돌이도 보통의 다른 개와 다를 바가 없었는데, 나에게는 단 한 번도 제 몸에 닿는 손길을 허용하지 않았다. 넌 내 사람이 아니다, 라고 말하는 듯했다.
사회생활을 하는 내내 주변의 사람들을 늘 두 가지 부류 중 하나로 갈랐다. 마음속에 그어 놓은 선을 기준으로 사람들을 선 안쪽에 들여놓거나 선 밖으로 밀어냈다. 선 안쪽의 사람에겐 발라당 누워 배를 보였지만, 선 밖의 사람들에겐 경계의 눈빛을 보내며 이를 드러냈다. 내 주변의 사람들은 나에게 0 아니면 1, 흑 아니면 백, 적 아니면 아군이었다. 중간은 없었다.
나에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은 늘 선 안쪽의 사람이었다.(당연한 일이다. 선 밖에 사람들은 충분히 멀리 밀려나 있어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었다.) 원인을 따져보면 분명 사소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가 건넨 건 장미였는데 내가 가시를 움켜쥐었는지도 모른다. 상처는 무방비 상태여서 아팠다. 쉽게 아물지 않았다. 혼자 골방에 틀어박혀 자꾸 상처를 헤집었다. 더디게 아물던 상처는 몇 번이고 다시 곪았다.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선 안쪽의 공간은 그 사람이 있던 자리만큼 좁아졌다.
내 사람이라고 믿었던 사람에게 받는 상처는 익숙해지지 않았다. 내성이 생길 법도 한데 상처가 늘어갈수록 오히려 견디기가 더 어려웠다. 나이가 들수록 선 안에 들여놓는 사람보다 선 밖으로 밀어내는 사람이 많았다. 밀어낸 자리를 메꾸려 선을 내쪽으로 당겼다. 안쪽의 공간이 좁아질수록 마음이 아늑하고 편했다. 가끔은 적막하고 쓸쓸했지만 아픈 것보다는 나았다. 더는 사람을 선 안쪽에 들여놓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다시는 누군가에게 무방비 상태의 배를 드러내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사람이 들어올 공간 자체가 없기도 했다. 그때 아내를 만났다.
아내는 선 밖에서 안을 기웃거렸다. 선을 잡아당겨 자신이 들어갈 만한 공간이 있는지를 엿봤다. 발을 내밀어 디뎌보고 무른 바닥이 단단하게 다져지기를 기다렸다. 느슨해진 선을 다시 조이면서도 내 안에 하나 둘 남긴 아내의 발자국이 싫지 않았다. 어느 봄날 아내는 두 발을 들여 선 안쪽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고는 선 안이 좁다는 듯 마음껏 뛰어놀며 선 안쪽의 공간을 넓혔다. 조금씩 넓어진 공간이 다시 좁아지지 않도록 아내는 잔디를 깔고 나무를 심었다. 아내와 함께 바라보는 선 바깥은 애월의 북쪽 바다처럼 잔잔해져서 더 이상 이를 드러내고 경계할 필요가 없었다.
원돌이는 3년 전 제주 오름으로 산책을 나서다 모퉁이에서 갑자기 나타난 트럭에 치어 세상을 떠났다. 대표님의 상심이 컸다. 볼 때마다 저놈 나와 비슷하구나, 하며 마음이 가던 녀석이었어서 나 역시 무척이나 슬프고 안타까웠다. 그래도 자기 사람이라 믿었던 대표님에게 상처받는 일 없이 평생 사랑만 받았으니 짧게나마 머물렀던 삶은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며 위안했다.
죽음은 언제나 가까운 내 사람들을 다시 한번 둘러보게 한다. 스스로 조여버린 그 좁은 공간을 기어이 비집고 들어와 내 사람이 되어 10년을 함께한 아내가 새삼스럽다. 내 안에 갇혀 사람들을 버리고 암울해하던 나를 아내는 어째서 겁도 없이 자기 사람으로 택했을까. 미처 숨기지 못하고 나도 모르게 한 번씩 거칠게 드러냈었을 이를 보면서도 좁기만한 내 안에 뿌리를 박았을까.(살아보니 외모만 보고 고른 남자치고는 괜찮지 않아? 라는 농담을 아내에게 하긴 한다.)
아내에게 무방비 상태로 배를 드러내면서 난 그게 여전히 미스터리야, 라고 묻는다.(역시 외모인가?) 아내는 말장난하듯 입가에 웃음을 지으면서도 눈빛만은 진지하게 답한다. 그건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이유를 따져 보더라도 답이 있는 건 아니라고. 그러니까 그건 그냥 데스티니인 거라고.
4인 4색, 결 다른 사람들이 글쓰기 위해 모였습니다.
제대로 한번 써보자는 모의이며, 함께 생각을 나누며 어울려 살자는 시도입니다.
격주 목요일 매거진에 글로 작당 모의할 예정이니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자, 그럼 수작(手作) 들어갑니다~, 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