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현상이라더군요. 말로만 들었을 때는 '황혼이라고?'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사람의 생애가 한창인 고비를 지나 차차로 기울어 가는, '황혼(黃昏)이 깃들다' 할 때 그 아름다운 말인가 했습니다. 무슨 현상인지는 몰라도 부르는 이름 꽤나 아름답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근거 사진을 보자마자 "황혼이 아니라 환혼(還魂)이로군!" 하고 외치게 되더군요. 부르는 명칭만 아름다운 게 아니라 발현되는 모습까지도 황홀할 지경이었으니까요. 사람의 혼이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이나 혼이 이 생으로 돌아오는 중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요. 아들의 말을 굳이 빌자면 '진짜 개신기'하고 '개예쁨'이니 말로 뭐 합니까.
실제로 황혼현상을 목격한 사람들이 UFO가 비행하는 것으로 착각해 전국 각지에서 신고전화가 빗발쳤다는군요. 국방부에서는 뒤늦게 고체 연료 우주 발사체 시험 과정에서 ‘황혼 현상(Twilight phenomena)*’이 발생한 것이라고 밝혔죠. 아름다운 광경을 직접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해 온 아들 덕에 희한한 구경을 하게 되었습니다. '황혼의 황홀'이든 '황홀의 황혼'이든 뭘 갖다 붙여도 찰떡입니다.
지난달 펼쳐진 쌍둥이자리 유성우가 떠올랐어요. 별똥별 말이에요. 2023년 새해 첫 우주쇼, 사분의자리 유성우도 3일 밤과 4일 새벽에 걸쳐 관찰할 수 있었답니다. 우주의 신비로운 현상에 사람들은 또 밤하늘 별을 헤며 저마다의 소원을 빌었겠지요. 새해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한 해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어디 해뿐일까요? 정한수* 한 그릇 떠놓고 우리네 어머니들은 달을 향해 지극정성 가족의 평안을 빌기도 했지요. 해와 달과 별을 향한 간절한 염원과동경(憧憬)은 어쩌면 운명을 바꾸어서라도 반드시 이루어 내고 말겠다는 의지의 상징, 극복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날 국가와 개인이 불확실한 미래의 지구에 대한 대안으로 우주개척의 꿈을 앞다퉈 실현해 나가고 있으니까요.
달 여행이 가장 빨리 이루어질 수 있겠군요. 언제 성사될지 장담하긴 어렵지만 당초 올해 가능하다고 했었으니까요. 장비와 비용의 문제만 해결되면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가능한, 머지않아 일어날 우리의 미래라 호언장담하기도 합니다. '달 관광 (Moon Tourism)'이 주목받는 이유이지요. '디어문(dearMoon)’ 프로젝트에 빅뱅 '탑'이 우리나라 민간인 최초로 우주 달나라 여행을 가게 된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이제부터는 시간 싸움이 될 것입니다. 달에 이어 지구인의 시선은 이미 화성을 향해 있기도 합니다. 스페이스 X는 2050년까지 화성에 8만 명이 거주할 수 있는 도시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죠. 그러나 "기회가 된다면 달나라 여행을 가시겠습니까?"라고 누가 묻는다면 대답은 "아니오."로 할래요. 무서운 게 가장 큰 이유이긴 하지만 그냥 저는 달을 바라보고 있는 게 더 좋습니다. 계수나무 아래서 옥토끼가 아직도 방아를 찧고 있다면 말이지요.
지난 달 30일,고체 연료 우주 발사체 시험 과정에서 발생한 황혼현상을 목격하고 아들이 찍어 온 사진(좌), 디어문 프로젝트 크루로 선정된 빅뱅의 탑 모습(우)
한마디로 '격세지감(隔世之感)이다', 이겁니다. 2023년 계묘년에 달로 여행을 가게 된다니요. 달에 사는 옥토끼가 밤새 떡방아를 찧는다고 듣고, 알고 자란 우리 세대로서는 이건 마치 천지가 뒤집어질 일이지 뭡니까. 어릴 적 달을 보면 한결 같이 방아를 찧고 있는 옥토끼가 참 대견스러워 보였거든요. 고 녀석이 앙증맞은 엉덩이를 씰룩이며 도대체 무얼 찧어대고 있는지 사뭇 궁금하기도 했고요. 그게 금덩이라면 금가루라도 뿌려줄 요량일까, 하며 달 아래에서 입을 떡 하니 벌리고 서 있기도 했지요. 불로장생 약초를 찧다 옥토끼가 야금야금 먹고선 죽지도 않고 살아 계속 방아만 찧는 게로구나 괘씸한 생각도 들곤 했습니다. 옥황상제가 사는 천계에 침입해 천도복숭아를 따먹다 결국 오행산에 갇힌 손오공처럼 저것도 조만간 인간세계 어느 산에 갇히는 건 아닐까 재미있는 상상도 했었지요. 떡이든 금덩이든 불로장생 약초든 밤새 방아를 찧어댔으니 낮에는 꾸벅꾸벅 졸밖에요.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요? 어릴 적 토끼를 키워본 적 있거든요. 회색빛 토끼도 있었고 빨간 눈에 백설기처럼 하얀 토끼도 있었죠. 학교에서 돌아온 오후에는 가끔 졸고 있는 토끼를 우리에서 꺼내 놀기도 했는데 할머니는 한 손으로 토끼귀를 움켜쥐고 다른 손으로는 등가죽을 잡는 거라 일러 주셨습니다. 우리에서 꺼낸 토끼에게는 주마가편(走馬加鞭), 엉덩이를 찰싹찰싹 때리며 달리기를 시켰는데 앉아서 하루종일 먹기만 하는 토끼는 여간 굼뜬 게 아니었지요. 월등하게 이기면 재미없을까 봐 거북이와의 달리기 경기 중 일부러 낮잠까지 즐기던 명색이, 토끼인데말이지요.우리 안에서만 자란 토끼는 전혀 뛸 마음이 없어보였어요. 먹고 자고 똥 누고 사는 편안한 생활에 익숙해져 토끼 본성을 잃어버린 것이었지요. 불쌍한 토끼 같으니라고...
토끼는 정말 하루종일 입을 오물거리며 먹기만 하는 것처럼 보였는데요, 어느 날 기이한 습성을 보고는 '입틀막(입을 틀어막다를 줄여 이르는 말)' 했지 뭡니까. 아침부터 예의 우물우물하고 있기에 먹을 것도 없는데 '참, 실없는 토끼로구나!' 했거든요.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곤 깜짝 놀랐다는 거 아닙니까. 글쎄 자기 똥을 먹고 있더라고요. 흉이 있어 감추려는 것도 아니고 죄를 덮으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진상을 은폐 조작하려는 것도 아닌데 말이지요. 되새김질을 하는 소처럼 먹이가 위를 두 번 지나가게 하는 습성을 지닌 것인데 토끼는 외견상 되새김질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식변(食便)을 하는 거래요. 토끼는 자기 똥을 먹어 성장과 발달에 꼭 필요한 영양소를 공급받는 것으로 보이는데 심지어 똥을 먹지 못하면 영양실조에 걸려 죽을 수도 있다네요. 신기하기도 하지요? '엽기토끼'도 아니고 말이지요. 아니면 제 똥을 먹어 치우는 '깔끔 토끼'라 불러도 무방할 듯해요.
2023년이 마침 토끼 해이기도 하니 토끼에 관한 제가 좋아하는 사자성어를 하나 알려드리지요. 얼마 전 정치권에서도 이 말이 나왔었죠. 문희상 전 국회의장의 발언인데요, 누구를 겨냥했다 말들이 많았지요. 교토삼굴(狡兎三窟)이라고도 하고 토영삼굴(兎營三窟)이라고도 합니다. 토끼는 굴을 세 개 판다는 뜻입니다. 어릴 적 동네 토끼몰이하는 것을 보았거나 토끼사냥에 대해 들었다면 쉽게 이해가 가는 말입니다. 토끼는 신체구조상 불리한 앞다리 때문에 산 아래로 몰아야 하고 피해야 할 대피처로 굴을 여러 곳 파놓았기 때문에 보이는 굴을 막으면서 나올 구멍 쪽으로 몰아야 하지요. 먹이사슬의 하위계층에 있는 토끼로서는 은신처를 많이 확보하는 것만이 살 길로 여겼을 것입니다.
꾀 많은 토끼가 굴을 세 개 판다는 고사는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를 대비하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최선'이 아니었을 때 '차선'을 염두에 두라는 의미이고, 위기의 순간에 꺼내들 패를 준비해야 한다는 첨언이며, 미래 가치를 알아보는 안목을 가지라는 조언일 것입니다. 계획은 세우라고 있는 것입니다. 설혹 이루지 못하거나 포기하게 되더라도 계획은 세울 수 있잖아요, 손해 볼 것도 없는 일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2023년 계묘년에도 이루고자 하는 일들에 대한 계획을 세워보자고요. 해가 바뀌고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았는걸요. 그리고 매일매일 떡방아 찧는 토끼처럼 매일매일 세운 계획들을 실천해 보자고요. 그걸 어떻게 매일 할 수 있냐고요? 사람이 빈틈 하나쯤 보이는 인간미가 있어야 된다고요? 방법이 있지요. 뭐냐고요? 눈에 마음에 정신에 힘을 빼면 된답니다.
토끼는 웬만하면 소리를 내지 않는 '침묵의 동물'이라 한다지요. 소리를 내는 것으로 힘을 빼지 않죠. 표현되는 외면보다 들여다봐야 하는 내면에 힘을 싣는 편이랄까요. 침묵 속에서 성실하게 매일을 살며 착실하게 세 개의 굴을 준비하는 모습이 매우 매력적으로 보일겁니다.
올해는 토끼처럼 침묵 속에서 치열하게 오늘을 살아내는 매혹적인 사람이 되어 볼래요.왜냐고요? 이유는 거창하지 않아요, 토끼해니까요.
* 황혼 현상(Twilight phenomena): 일몰, 일출 시간 내에 지상에서 로켓을 발사했을 때 성층권 위에서는 아직 햇빛이 비치고 있으므로 배기가스에 반사된 햇빛이 다양한 색상으로 관측되는 현상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