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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Feb 14. 2023

온도를 확인하고

김유림, < 자기만의 방 >



여전히 

차가운가요.



그대 곁의 온도를 궁금해할 따름입니다.

어떤 유해도 없이

어떤 자극도 없이

어떤 불순도 없이

이것만은 궁금해해도 되지 않나요. 

그대를 감싸고 있는 온도가 차갑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대의 곱슬한 머리카락이 단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저녁을 상상할 때 

사사로운 질문은 하지 않겠습니다. 저의 어떤 사사로움은 종종 그 정의를 놓치기도 합니다. 

계절이 단골처럼 우리를 두드릴 때 

세상은 자못 진지했습니다. 게으른 저는 부지런한 당신처럼 생활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저만의 부지런함 속에서 그대 곁의 온도를 체크합니다.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대가 잠드는 시간을 알지 못해 어떤 밤인사를 올리는 것이 적절한 지 

그대의 입김과 담배연기 중 무엇이 더 하얗게 공기 속으로 사라질지

그대의 얼굴이 어느 시간에 가장 그리워하기 좋은 낯빛을 가지는 지 

알 수 없듯이 

그대를 알 수 없음이 저의 천직이자 천형이기도 하여

그대를 둘러싼 온도만을 확인하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대 곁의 온도, 이것만 궁금해하고 말 거예요. 금방 해결될 궁금증이라 조금 애석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불을 정리합니다. 아이의 냄새가 이국처럼 배어 있습니다. 어제보다 꿀을 많이 탄 우유를 데웁니다. 읽다 만 소설의 주인공이 할머니인데 자기 나이에 나누기 삼을 해야 하는 나이의 남자를 사랑해요, 아름답죠,라고 말을 합니다. 문득, 지금은 따뜻해졌나요,라고 말을 합니다. 다시 소설을 읽어요. 애틋한 사랑이지만 애틋하고 말 사랑이라 조금 애석하기도 합니다. 

어느 말은 하지 않습니다. 그런 말이 많습니다. 

비가 오면 깊은 웅덩이가 생기는 주차장은 대개 여름이었습니다. 그 주차장은 그대로인지 궁금합니다. 주차장에 들어서기 십여분 전에 보이던 벚나무에서는 와와와와, 소소소소 벚꽃이 피던 소리가 들릴 지경이었습니다. 봄이 늦은 땅이어도 봄은 온다는, 봄이 늦는다고 여름도 늦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증거 하듯이 흰 벚꽃 위로 초록 잎을 조급히 피우던 벚나무는 어떠한지요. 제 기억이 맞다면 그 벚나무의 봄은 

아직 멀었습니다. 

그대 곁의 온도처럼요.

햇살이 예각의 그림자를 배반하고 오후는 경력이 오랜 암살범의 발걸음처럼 익숙하게 공간에 퍼집니다. 꿀을 넣었던 우유는 선악과의 약속처럼 잊혔어요. 다만 참회의 색을 닮은 커피를 끓입니다. 근육통은 궁금하지 않아요, 오직 빠르게 차가워지는 온도를 염려합니다.

잘 지내실 걸 알고 있기에 잘 지내시냐고 묻지 않겠습니다. 저 없이 잘 지내시는 그대, 곁의 온도와 주차장과 벚나무 따위를, 그대 없이 잘 지내고 있는 제가 궁금해할 뿐입니다.


저녁이 하루의 상념을 지우는 소리보다 아이의 기침소리가 먼저 들려옵니다. 




그대의 잊음에 방해가 되지 않는 곳에서 평안하고 온화하게 사라질 테니 그대도

부디 무탈함을 자랑삼아 저에게서 멀어지시길.  





진샤와 폴폴이 시에 관한 모든, 뭐든 주고받습니다


제 앞에는 캠퍼스 노트와 볼펜과 컵, 무음 처리된 핸드폰과 말라 버린 물티슈, 늘어난 머리끈과 오래된 소설집, 두 번 접힌 영수증이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등이 있습니다.
자세가 곧고 검은 셔츠가 잘 어울립니다.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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