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국이 시국인지라 당분간은 개인적으로 해외여행 갈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출장이 잡히는 바람에 얼떨결에 스페인과 이집트에 가게 되었다. 출장이 결정됐을 때만 해도 확진자 수가 잠잠해지고 세계 여러 나라들이 빗장을 풀며 해외 여행객들과 출장자들이 떠날 시동을 걸던 시기였다. 그러나 고작 일주일의 짧은 출장 기간 동안 상황은 급변했고 싱숭생숭한 순간의 연속이었다.
<스페인 입국>
스페인 마드리드는 입국절차가 까다롭지 않았다. 11월 말 기준으로 한국에서 스페인으로 갈 경우 영문 백신 접종증명서를 가져가면 격리가 면제됐다. 더불어 SpTH Spain Travel Health 사이트나 어플에서 FCS form을 작성해야 한다. 개인 정보와 항공편, 숙소 등을 입력하면 바로 QR코드가 발급되며 소지해야 한다.
오랜만에 방문한 인천공항은 신기할 정도로 텅 비어 있었다. 대한항공 체크인 데스크에 갔더니 백신 접종증명서와 QR코드를 확인 후 티켓을 발급해주었다.
면세점은 그나마 문을 열었는데 식당은 대부분 문을 닫았다. 텅 빈 공항의 여유로움을 느끼며 보딩을 위해 게이트로 갔더니 갑자기 항공사 측에서 내 동료의 이름을 호명해 필요 서류 확인을 요구했다. 동료는 모바일 체크인을 하는 바람에 나처럼 체크인 데스크에서 서류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아 게이트에서 확인하는 것 같았다.
동료가 백신 접종증명서와 QR코드를 보여주니 직원이 PCR 테스트 결과서를 요구했다. 우리는 백신 접종증명서만 있어도 되는 것으로 확인했다고 했지만 직원은 PCR 검사가 필수이고 QR코드는 처음 본다고 했다. 나는 체크인 데스크에서 통과시켰으면서 동료한테는 왜 말이 바뀌는 건지 모르겠다. 항공사 측에서 한참을 논의하고 전화 걸고 하더니 비행기 출발 직전에 겨우 우리를 탑승시켜 줬다. 스페인행 승객들이 많을 텐데 항공사에서 이렇게 제대로 된 정보를 알고 있지 않다는 것이 의외였다. 출발 전부터 뭔가 찝찝한 느낌이었다.
항공기는 좌석이 20% 정도밖에 차지 않아 다시 한번 코로나를 실감할 수 있었지만 덕분에 몸은 편하게 갈 수 있었다. 긴 비행시간 내내 마스크 쓰는 것이 힘들지 않을까 싶었는데 워낙 평소에도 업무 시간 내내 마스크를 써와서 그런지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았다. 이제 마스크가 내 몸에 익숙해졌나 보다.
환승지인 암스테르담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 안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마스크를 잘 쓰고 있었다. 시간이 여유로워 천천히 면세점을 구경하고 있는데 갑자기 문자가 왔다. 확인할 것이 있으니 데스크로 오라는 것이다. 출발 전 항공사 측과 실랑이를 했던 것이 떠올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데스크에 갔다. 다행히 별 건 아니었고 백신 접종증명서와 QR코드 확인을 하는 것이 다였다. 아마 우리가 환승이다 보니 환승 항공편인 KLM 측에서 내 서류를 체크할 기회가 없어 탑승 전에 확인한 것 같다.
한국에서 온 비행기와는 달리 이번 비행기는 빈 좌석이 없었다. 확실히 유럽 내에서는 자유롭게 이동을 많이 하나보다. 마드리드에 도착해서는 여권 검사도, 어떤 질문도 없이 QR코드만 찍고 후다닥 공항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마드리드 솔 광장
유럽은 코로나 전으로 돌아간 것 같이 일상생활을 한다고 들었는데 마드리드는 대부분이 실내외에서 마스크를 잘 착용하고 있었다. 백신 접종율도 다른 유럽 국가 대비 높다고 한다. 확실히 여행이 뜸해진 건지 관광대국인 스페인인데 동양인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집트 입국>
이집트 역시 PCR 검사 결과가 없어도 백신 접종증명서만 있으면 격리 면제가 가능하다. 단, 인식 가능한 QR코드가 기재된 증명서여야만 한다. 처음에 출장 스케줄 잡을 때만 해도 우리나라 질병관리청에서 발급한 백신 접종증명서에는 QR코드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이집트 입국 전 PCR 검사를 할 계획이었는데 출국 전날 증명서를 발급받아 보니 갑자기 QR코드가 생긴 것이다. 괴로운 검사를 한 번이라도 줄일 수 있게 되어 신났지만 한국인 중에 이 새로운 증명서를 갖고 입국한 사례를 아직 본 적이 없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현지 대사관 및 항공사에서도 QR코드가 있는 백신 접종증명서면 문제없다는 답변을 받았지만 그래도 안전하게 PCR 테스트를 받으라는 현지 직원의 권고를 듣고 결국 검사를 받았다.
마드리드 공항에서 카이로행 항공권 티켓팅을 할 때 체크인 데스크에서 서류를 확인하는데, PCR 결과서는 보여주지 않고 백신증명서만 보여줬는데도 별 말이 없어 역시 PCR을 괜히 받았나 싶기도 했다. 이번에도 만석인 비행기를 타고 카이로에 도착했는데 비행기에 이집트 쪽 직원들이 타더니 승객들의 서류를 검사했다. 결국 PCR 검사를 받은 것은 괜한 선택이 아니었으므로 결론지어졌다. 동료는 백신 접종증명서만 제출했는데 반으로 접힌 증명서를 펼쳐보지도 않고 대충 통과시키더니 나는 갑자기 백신 증명서에 이어 PCR 검사 결과까지 달라는 것이다. 역시 애매하면 전부 다 준비하는 것이 안전한 것 같다.
기자 피라미드의 관광객들
카이로 공항은 공항 직원조차도 마스크를 쓰지 않는 등 분위기가 확 달랐다. 시내에서도 마스크 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이곳은 PCR 검사도 정부 지원 없이 유료고 비싸서 국민들이 검사받기 힘들다고 한다.
피라미드에는 현지인 관광객들이 대부분이고 동양인들은 보이지 않았다. 공항과 호텔에서는 백인 관광객들이 꽤 많이 눈에 보여서 일부 국가들은 정말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나 보다 싶었다. 현지가 마스크 안 쓰는 분위기면 나 역시 마스크 쓰는 것이 눈치 보이지 않을까 싶기도 했는데 어차피 마스크를 안 써도 동양인이라 주목받는 상황에서 나는 외국인이라 좀 달라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눈치 볼 것도 없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녔다.
귀국을 며칠 남겨두고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가 등장했다. 내가 거쳐 온 네덜란드, 스페인도 오미크론 확진자가 나왔고 심지어 그 확진자가 이집트에서 온 사람이란다. 아프리카 남쪽 국가발 비행기의 입국 제한도 시작됐다. 우리나라에서도 나이지리아에서 입국한 확진자 중에 오미크론 변이가 의심되어 조사 중이라는 뉴스까지 나왔다. 한국에 정상적으로 입국할 수 있을 건인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출국일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두바이를 거쳐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탔다. 가뜩이나 불안한데 카이로에서 두바이로 가는 비행기에서는 많은 현지인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심지어 기침을 계속하고 코까지 풀고 감기약까지 먹으면서도 마스크를 벗고 있어서 황당했다. 승무원이 마스크 쓰라고 얘기하면 잠깐 쓰고 있다가 다시 턱 밑으로 내린다. 기본적인 에티켓이 너무 없어서 화가 났다.
<대한민국 입국>
출국할 때와는 달리 두바이에서 인천으로 오는 비행기는 만석이었다. 인천에 무사히 도착해 안도하며 비행기에서 내렸다. 승객들의 검역 서류들을 다 확인해야 하다 보니 대기줄이 엄청 길었다. 끝에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아프리카에서 온 사람들은 나오라는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호명에 마음을 졸이며 직원을 따라갔는데 백신 접종증명서와 PCR 검사 결과서 등을 확인하고 페이스쉴드와 장갑까지 주며 착용하라고 한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오늘 바로 PCR 검사를 하고 음성 결과가 나올 때까지 격리란다. 나름 오미크론 관련 뉴스를 주시하고 있었는데 이런 정보는 전혀 알지 못했어서 너무 당황스러웠다.
입국 심사 후 아프리카발 승객들만 따로 모아 공항 근처의 호텔로 이동할 대기를 했다. 그 이후에는 버스를 타고 호텔로 이동해 PCR 검사를 받은 후 각자 방으로 입실하는 절차가 이어졌다. 사실 검사야 코 한 번 찌르는 것이 다여서 금방 끝났는데 앞에 대기자들이 얼마나 밀려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기 시간이 한없이 길어져 비행기에서 내린 후 호텔 입실까지 6시간은 족히 걸렸다. 버스 안에서 너무 오랜 시간 대기하다 보니 이렇게 갇혀있는 게 더 위험한 것 아니냐는 컴플레인도 나오고 방역당국 직원들도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고 그 와중에 나이지리아에서 입국했던 오미크론 의심환자가 결국 오미크론 변이로 확정됐다는 발표까지 나와서 얼마나 싱숭생숭했는지 모른다. 더불어 며 칠 후부터 모든 해외 입국자는 10일 자가격리라는 조치까지 발표되었으니 나 역시 조금만 늦었으면 해당자가 될 뻔했다.
PCR 검사받은 시간이 늦은 밤이었는데 다음 날 저녁에야 결과가 나온다고 했다. 하루 종일 호텔에 머물면서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나는 음성이어도 나와 같이 버스 타고 온 사람들 중에 확진자가 나오면 나는 여기서 더 격리를 해야 하는 건지 이런저런 생각이 다 들었다. 다행히 음성 판정을 받아 바로 퇴실 후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6~7일 차에 PCR 검사를 한 번만 더 받으면 모든 절차는 끝이다.
스페인에서만 해도 해외여행을 자유롭게 다닐 날이 머지않은 것 같았는데 불과 며칠 만에 상황이 변할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어찌 됐든 이 시국에 해외 나갈 일이 생긴다면 공항이든 항공사든 정부든 모두가 다 우왕좌왕인 상황이니 본인 스스로가 변화하는 상황과 국가별 입국 요건 및 필요 서류들을 꼼꼼히 챙기고 갑작스러운 격리에 대비해 필수적인 소지품들을 여분으로 챙기는 것이 도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