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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 Jun 05. 2021

혼자 하는 여행이 더 따뜻했던 이유

 사실 누군가와 동행을 하면 다가오는 현지인도 많지 않고 별 일이 잘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혼자 다니면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다가오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만만해 보이는지 이상한 의도로 접근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반대로 도움을 주는 사람들도 많다. 


 이제 막 애틀랜타 공항에 도착해 지하철을 타고 호텔이 위치한 다운타운에 내리니 저녁 7~8시 정도였다. 다운타운이 위험하다는 소리를 듣긴 했지만 호텔과 상점들이 밀집되어 있는 번화가여서 별 걱정 없이 캐리어를 끌고 역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이게 왠 걸, 기다렸다는 듯이 흑인 노숙자가 큰 소리로 말을 건다. 어디 가냐, 호텔 가냐, 어느 호텔이냐...... 노숙자 한 두 번 만나본 것도 아니고 대수롭지 않게 못 들은 척하고 내 갈 길을 갔다. 그러면 보통 쫓아오다 말기 마련인데 이 사람은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며 쫓아오는 것이었다. 나는 빠르게 걸었지만 결국 횡단보도의 빨간불이 앞을 가로막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 사람은 내 옆에서 계속 소리를 질러댔다. 다행히 주변에 몇몇 시민 분들이 노숙자를 쫓아내 주었다. 그중 한 흑인 남자가 당황한 나에게 괜찮냐, 어디 가냐 물었다. 이 상황에서 저 남자 역시 믿을 수 없으니 그냥 가야 하나 잠시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세미 정장을 잘 차려입은 단정한 모습에 그냥 호텔 간다고 말을 해버렸다. 그분은 핸드폰으로 위치를 검색해 데려다주겠다고 하며 내 캐리어까지 끌고 앞장섰다. 사실 나 혼자서도 잘 찾아갈 수 있는데 그 노숙자 때문에 겁이 나서 쫓아가기로 했다.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분은 나도 이름을 익히 알고 있는 회계 법인에 다니는데 퇴근길이었다고 한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했더니 바로 '서울'을 먼저 언급하면서 직장 동료 중에 한국인이 있다고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호텔에 무사히 도착했다. 내 명함이라도 건네주고 싶었지만 이때까지도 경계심을 갖고 있던 나는 명함과 돈이 함께 들어있는 지갑을 주섬주섬 꺼내는 행동을 하고 싶지 않아서 고맙다는 말만 전했다. 내 마음은 단순히 감사하다는 말 이상이었으나 낯선 곳에서 끝까지 경계심을 가질 수밖에 없으니 안타깝기도 하다. 피곤한 퇴근길에도 내 짐까지 들어주며 도와주신 덕분에 안전하게 여행을 마칠 수 있었던 것 같다. 




 파나마 시티 공항에 도착해 시내로 나가려면 공항버스나 열차가 별도로 있는 건 아니고 택시나 시내버스를 타야 한다. 버스는 현금을 받지 않고 무조건 교통카드를 찍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공항에서는 이 교통카드를 팔지 않는다. 따라서 여행객들은 함께 탑승하는 현지인에게 현금을 주고 카드를 찍어달라고 부탁해야 한다. 버스를 기다리는데 옆에 노부부가 있어 물어보니 마침 나와 같은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현금을 드릴 테니 버스 탑승 시 카드를 찍어주실 수 있는지 부탁드렸다. 두 분은 흔쾌히 알았다고 하셨다. 

 드디어 버스를 타고 할아버지께서 교통카드를 찍어주셨다. 그런데 막상 현금을 드리니까 안 받으시겠다는 거다. 계속 거절하셔서 할머니께 드렸더니 할머니도 됐다고 하신다. 게다가 내가 캐리어 때문에 자리에 앉지 않고 서 있었더니 할머니 옆에 자리 잡고 잘 앉아계시던 할아버지가 굳이 나오셔서 내 캐리어가 움직이지 않게 끈으로 고정시켜주신다. 할머니는 그 와중에 할아버지가 일어난 본인 옆자리에 나보고 빨리 앉으라고 하신다. 결국 나는 할머니 옆에 앉았고 할아버지는 내 짐을 끈으로 다 묶으시고는 저 뒷자리에 앉으셨다. 내가 내릴 때까지도 내릴 곳을 세심하게 챙겨주셨다. 처음 보는 외국인인 나를 마치 손녀처럼 챙겨주시니 너무 감사했다. 파나마라는 낯선 나라에 도착하자마자 이런 친절한 분들을 만난 덕분에 너무나도 기분 좋게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먼 이국 땅에서 혼자 다녀도 큰 사고 없이 좋은 기억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처음 보는 외국인에게도 조건 없는 친절을 베푼 분들 덕분인 것 같다. 아직도 이런 에피소드들을 생각하면 가슴속 깊이 몽글몽글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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