갭이어의 끝과 새로운 시작의 단계에서 언젠가는 웃어버릴 나만의 도전기가 있다.
그보다 앞서 과연 무얼 기준으로 갭이어를 시작했다, 끝냈다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 일단은 내가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을 기점으로 갭이어가 끝났다고 말을 하고는 있는데, 그렇다고 내가 일을 시작했다는 것도, 수입이 발생했다는 것도, 입사지원을 하거나 더욱이 출퇴근을 한다는 것도 아니다. 그저 무언가 일을 할 의지가 생겨났을 뿐이다. 의지 외에는 지난 한 해와 큰 차이가 없다. 그리고 이 의지 또한 자연발생적인지 의무감에서인지도 모를 일이다. 제발 내 생각과 행동의 이유나 동기를 스스로 다 알아야 하는 건 아니길,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길.
하나는 단편드라마 공모전,
다른 하나는 전속성우 공채.
하나는 지난 한 해의 시간을 갈무리하면서 마음먹은 어떤 의식이랄까 그런 차원에서였다. 갭이어를 보내는 동안 집에서 드라마라는 새로운, 즐거운, 신나는 세상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일을 할 시간을 기다리면서 공백 시간을 재미있게 채워보려는 의지에서였다.(그걸 위해 열과 성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무지몽매한 도전에 염치없다고 입 밖으로 소리 내지 말아 달라, 나도 알고 있다) 일 하겠다 마음먹었는데, 일이 없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음을 깨달은 것이다. 세상의 수많은 프리랜서들과 선택을 기다리는 이들의 마음을 조금 이해했다고나 할까. 물론 공채 시험을 준비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열망과 노고를 재미 차원으로 치환하는 그런 차원은 아니었다. 그렇게 되지도 않을 일일뿐더러, 패기 있게 미래를 꿈꾸던 시절 해보고 싶었던 일 중에 하나였다. 꽤 오래 잊고 살았지만.
짧은 시간이나마 지나고 보니 참 어린애 같이 순진한 도전이다. 하지만 막상 그 행위를 하고 있을 때는 열정이란 뜨거운 엔진과 막연한 달콤함에 취해 다른 것들은 눈에도 생각에도 들어오지 않는다. 거기에 무언가 될 것만 같은 근거 없는 긍정세포는 미미한 추진기를 달아준다.
결론은 둘 다 아주 재미있고, 너무 어려웠다. 모든 '일'은 너무 어렵고, 내가 하던 일이 가장 쉬운 건가 싶다. 결과는 이런 글을 쓰고 있다는 것만으로 짐작되고도 남겠지.
온 정성과 긴 시간을 들여 도전을 하는 그리고 했던 이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수준이지만, 그럼에도 나 또한 진지하게 임했던 도전이었고(물론 도둑놈심보라고 고백하기도 했지만), 오랜만의 불합격이란 글자에 마음이 얄딱구리하다. 아니라고는 했지만, 결과발표일이 다가오면서는 두 근 반 세 근 반 하며 설마, 혹시, 그래도 하는 마음의 요동이 있었음을 부정하지 못하겠다. 그리고 웃기는 건 시작할 때보다 준비를 하면서 오히려 마음이 더 커지더라.
몇몇 친구에게 사전에 말하거나, 지원하고 나서 말했다. 그래서 그 몇몇에게 결과도 알렸다.
도전이 의미 있다, 도전이 멋지다는 말... 그날만큼은 빌어먹을 말이었다.
그리고 누가 그랬다. 혹시나 불합격이 처음인 거 아니냐고.
아니다. 당연히 불합격의 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너무 오래전의 일이다. 합격만 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랫동안 당락이 나뉘는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절의 순간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대로 끝이 아니었다.
합의점을 찾거나 대안이 있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선택의 문제는 타격이 심각하지 않다.
그런데 지금은...?
많은, 잘 나가는 리더 또는 멘토들이 세상에 건네는 '수많은 거절 끝에 오케이가 있을 수 있다'는 말(그마저도 언젠가는 오케이가 있다는 확신이 아니다)을 유일한 깨달음으로, 그래도 이거 하나 체험했다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참 당연해서 뼈아픈 일이다. 이 치열한 세상에 그동안 내가 참 안온하게 살았구나 싶다.
왜 그동안 (잘) 해오던 일을 두고 자꾸 곁눈질을 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고, 모르겠다가도 또 이해가 되지만 이러다 영영 길을 잃을까 봐 조금 보다 조금 더 많이(?) 걱정되기도 한다.
물론 그렇게 투덜거리면서 지금도 나는 다시 무언가에 도전한다.
안타깝게도 벌써 불합격의 날 공기가 어땠는지 기억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