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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속도

by 올디너리페이퍼

지하철 환승을 위해 계단을 내려간다. 한 칸 한 칸... 옆에 비슷한 속도로 나란히 걷고 있는 할아버지가, 내가 조금만 다리를 앞으로 내밀면 발 끝에 차일게 뻔한 간격을 두고 휴대폰을 보며 내려가는 이가 아직 낯설다. 나는 요즘 천천히 걷기를 하고 있다. 그보다는 천천히 걸을 수밖에 없다.

예전 같으면 휴대폰 영상을 보며 느리적느리적, 또는 아슬아슬하게 계단을 내려가는 사람들 뒤통수를 흘기며 지나갔을 테고, 살금살금 아니면 찬찬히 계단을 내려가는 어르신들을 오른쪽으로든 왼쪽으로든(대부분 적극적인 전방주시를 통해 어느 쪽으로 앞서나가야 내 다음 걸음이 더 속도가 날지 가늠한다) 추월해 휘릭 내려갔을 거다. 끝없이 이어지는 몇몇 지하철역의 에스컬레이터조차 대부분 걸어서 오르내렸다. 에스컬레이터에서 걷지 말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지만, 오른쪽은 서서, 왼쪽은 걸어서 이동하는 것으로 한동안 교육받았던 습관이 아직 남아 있다.

하지만 당장 수술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라는 디스크 탈출 진단을 받고, 사람에게는 꼬리뼈 아래 작은 구멍이 있다는 몰랐던 사실과 함께 난생처음 겪는 느낌의 주사를 맞고, 약을 꼬박꼬박 챙겨야 하는 귀찮은 일상을 맞은 이후 나는 속도가 느린 사람이 되었다. 그나마 살 만 해졌다고 지금에야 귀찮다고 말할 수 있지만, 아프지 않을 수만 있다면, 바깥을 나가 걸을 수만 있다면 하루 몇 번을 먹으래도 챙겨 먹을 일이었다.


상대적으로 느려진 속도로 걷고 계단 하나도 살금살금 내딛으며 생각한다. 횡단보도 초록 신호등이 길다 생각해 왔지만 임산부가 되어 보니 빠듯한 시간이라 꽉꽉 채워 건너게 되었다던 친구의 말을, 닫힘 버튼을 누르고야 마는 엘리베이터의 문 열림 시간이 지팡이를 짚은 이나 유아차를 미는 이가 타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길지 않은 시간이라는 사실을, 어떤 계단이나 보도블록은 무리 없이 오르내리기에 너무 높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고 보면 지금의 이 속도가 아쉬운 것만은 아니다. 일단 긴장할 일이 없다. 빨리 걷거나 뛸 수 있을 때는 신호에 민감해진다. 신호등이 몇 초 남지 않았어도 뛰고, 신호등이 바뀌거나 엘리베이터가 닫히려고 하면 이번에 건너거나 타기 위해 서두르고, 지하철 도착 안내음이 들리거나 정차해 있는 버스를 보면 놓치지 않기 위해 달린다. 그런데 어차피 뛸 수 없으니 몸과 마음이 신호에서 벗어나 느긋하게 '다음 것'에 너그러워진다. 다음은 몸이 산책에 최적화된다. 매일 걷는 것이 그나마 도움이 된다기에 매일 나가서 할 수 있는 만큼 걷는데 예전에는 '멀리 걷기'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면 요즘은 '주변 둘러보기'에 더 방점이 찍힌다. 그래서 자주 걷는 코스 외에 방향을 바꿔서, 한 골목 올라가서, 아니면 골목골목을 구경하는 편을 선택하게 된다. 덕분에 난데없이 왔다 가버린 가을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하는 이 산책이 힙한 취미 중 하나라는 사실에 잠깐이나마 뿌듯해지는 것은 덤이다. 마지막으로 몸의 움직임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내 허리는 얼마만큼의 각도를 유지하고 있는지, 내가 다리를 얼마큼 들으며 걷는지, 몇 분을 걸을 수 있고 얼마큼 걸었을 때 다음날 아프지 않은지, 내 발은 바닥에 잘 닿고 있는지 등. 몸을 인식하게 되면 일상의 움직임으로 힘들게 한 몸을 조금이나마 다독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갖고 말이다. 물론 내가 알아차리지 못할 움직임과 차이가 훨씬 더 많겠지만, 그리고 인식하지 않아도 되는 수준의 몸을 유지하는 것이 더 좋겠지만, 어쩔 수 없이 나이가 들면서 앞으로는 몸의 상태와 통증을 인식해야만 하는 순간들이 더 많아질 테니 조금씩 적응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거니 한다. 그러니 나쁜 것만은 아니다.


아니다.

이건 모두 착하게 생각하기 위한, 괜찮아지려는 바람을 바탕으로 한 허구다.


내 기억은 연이어 떠올린다. 학교 계단 난간에 걸터앉은 채 미끄럼 타고 내려와 안전하게 착지하던 모습을, 두세 계단씩 펄쩍펄쩍 뛰어 내려오던 때를, 매끄러운 복도나 얼음 위를 스케이트 타듯 다니면서도 넘어질 걱정을 하지 않던 시절을 말이다. 왜 인간의 뇌는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난데없는 기억을 꺼내 놓는 건지 모르겠다.

과거의 나처럼 되길 바라지도 않는다. 누구보다 튼튼한 허리로 격렬한 운동과 활동을 하길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자칫하면 다시 찾아올 수 있는 그 통증을 알기 전으로, 그 불안감을 느끼기 전으로, 그 시간 전으로만 돌아가면 좋겠다. 아주 소박한 운동과 안정적인 사회활동, 차를 타고 여행을 갈 수 있는 정도?


그래서 계속 걷는다. 그 와중에 추워져서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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