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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고아미고 May 15. 2023

성인 아데노 바이러스를 조심해.

이전에 발행했던  <1인 가구는 아프면 안 되지만 3인 가구도 아프면 안 돼.>의 프리퀄이다.



4월 15일 봄맞이 여행을 떠났다.

결혼 전부터 친하게 지내던 아내의 친구들과 동행한 여행이었다. 우리는 경북 안동, 한 팀은 충북 음성, 한 팀은 충남 세종이다. 범죄스릴러 영화에서 사건 발생 현장을 찾아내는 것과 같이 지도에 선을 그었다. 세 가족의 집에서 중간지점을 찾아봤더니 이렇게 좁혀졌다.


가장 막내인 L에게 선이 그어진 지도를 전송하고, 중요한 임무를 부여했다. 바로 숙소를 잡는 일. 알다시피 여행숙소를 결정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어찌 보면 여행의 시작과 끝은 숙소이다. 아무리 좋은 곳을 가도, 아무리 맛있는 것을 먹어도, 아무리 신나는 여행지일지라도, 숙소가 좋지 않으면 좋은 여행이라고 기억되기 힘들다.  


이럴 때는 나이가 많은 것이 도움이 된다. 요즘은 웬만한 모임에 나가도, 특히 아내 쪽 모임에서는, 어디서든 나이로 꿀리지 않는다.

기쁘고 슬프다.


몇 번의 상의 끝에 상주의 <아이사랑키즈 풀빌라>로 결정했다.


좋은 선택이었다. 세 가족이 공평하게 1시간 30분 정도 거리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수영장도 있고, 세 가족이 머물기에도 충분한 크기의 펜션이었다.

비가 조금씩 내리는 날씨였지만,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날씨 따윈 상관이 없었다. 따뜻한 수영장에서 오랜만에 신나게 물놀이를 했다.



‘얘가 이렇게 물놀이를 좋아했었나?’


생각이 들 정도로 딸아이는 열심히 최선을 다해 물놀이를 했다.


저녁이 되고 유명한 안동직판장에서 공수한 한우와 삼겹살을 굽고, 샤부샤부로 끝장을 냈다.

오랜만의 술자리라 그런지 평소보다 술도 많이 마시고, 사람들을 웃겨야 되고 위트 있고 유머러스한 사람이고 싶은 병이 도져서 무리해서 떠들었다. 그러다가 기억을 잃은 채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아내에게 들어보니 반은 성공, 반은 실패였다.


“오빠, 언니 오빠들이 오빠 엄청 재밌대. 근데 왜 그렇게 일찍 쓰러져서 ㅋㅋㅋ 역시 나이는 못 속이는가. 스태미나가 딸린다며.. 다음번에 만날 때는 컨디션 조절 좀 하고 만나자고 하더라고. ”


“아… 나이가 아니라.. 요즘 계속 바빴고 오랜만에 술을 마셔서 그런가.. 아무튼 나이는 상관없어.”


괜히 발끈한다.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꽤 괜찮은 여행이었다.





그리고 이틀 후 나와 딸은 아데노바이러스를 진단받는다.


아침에 잠에서 깨 일어나려고 하는데 눈이 떠지지 않는다.


‘이게 뭐지?’


억지로 눈을 뜨고 화장실로 가 거울을 보니 눈곱, 아니 노란 접착제가 눈을 뒤덮고 있었다. 눈을 닦아내고 아이에게 가니 역시 똑같다.  


눈은 퉁퉁 붓고 눈가가 빨갛다.


‘아.. 우리 딸… 못생겨졌다…’


마음속으로 한 말이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나와 버렸다.

그걸 들은 딸은 펑펑 울기 시작했다.


“안 못생겼어!!!! 으아아아앙! 엄마!! 아빠가 나 못 생겨졌대!!!!”


아침부터 최악의 컨디션으로 아내에게 실컷 혼나고 출근을 했다.


몸이 너무 안 좋다. 몇 달 전에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리고 정말 아프다는 생각을 했는데, 솔직히 지금 이 아데노와 비교하면 코로나는 애들 장난이다. 코로나의 고통의 몇 배 이상이다.

아데노 바이러스는 성인이 잘 걸리지 않는다던데..


성인이 잘 걸리지 않는 바이러스이긴 하지만, 반대로 성인이 아데노바이러스에 걸리게 된다며 지옥을 볼 거라는 말이 인터넷을 떠돈다. 다들 코로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과, 몸상태가 정상으로 돌아오려면 한 달 정도는 걸린다는 말, 도움이 되는 약이 없어서 그냥 나을 때까지 진통제만 때려먹어야 된다는 말이 대다수였다.

본격적으로 아프기 전부터 두려움이 밀려왔다.

아데노 바이러스에 걸리면 내과를 가야 하나, 안과를 가야 하나 헷갈릴 수 있다.

응 두 군데 다 가야 한다. 안과에 가서 스테로이드제 처방을 받아야 하고, 내과에 가서 항생제과 진통제를 처방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내과를 먼저 가도 의사 선생님이 안과에 가라고 말씀을 하시고, 안과에 가도 내과에 가서 항생제 처방을 받으라고 하신다.



성인 아데노 바이러스


1단계 : 감기 기운이 살짝 있다. 목이 간질간질하고, 으슬으슬하다.

2단계 :  아침에 일어나면 눈에 눈곱이 엄청나게 낀다. 눈이 붓는다. (안과에 가서 스테로이드제 처방을 받아야 한다.) 보통 1주일 정도면 괜찮아진다.

3단계 : 약간의 감기 기운이 엄청난 몸살감기로 온다. 이 증상 또한 1주일 정도 지속되었던 것 같다.

4단계 : 몸살이 조금 호전되면 콧물과 목의 통증이 심하게 찾아온다. 그렇다고 해서 몸살기운이 사라지진 않는다. 엄청나지 않을 뿐.

5단계 : 엄청난, 정말 대단한 기침을 하게 된다. 0.5초 정도 간격으로 기침을 하기 시작하는데, 기침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당연히 목의 통증을 점점 심해진다. 이때부터 목소리가 나오지 않기 시작한다.

6단계 : 말을 하려면 우리가 평상시에 소리를 지른다는 생각으로 해야 옆사람이 간신히 들릴 정도로 소리가 나온다.


대략적으로 위의 6단계를 거치고 나면 컨디션이 돌아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직도 100% 컨디션을 되찾은 건 아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완벽하지 않다. 콧물을 여전히 주르르 나오고, 간헐적인 기침과 재채기, 그리고 희한한 건 재채기를 할 때 가끔 코피가 난다.


최악이다.


밤마다 끙끙대며 이 고통을 정면으로 받아들인 내 뇌세포의 상당수가 소멸된 느낌이다. 확실히 멍청해진 기분을 느낀다.


아. 우리 딸은 사실 1주일 정도 고생하더니 금방 괜찮아졌다. 성인 아데노바이러스를 콕 집어서 계속 이야기하는 이유이다.



애들보다 어른이 불쌍하고 고통스러울 때도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어른들이 항상 강하다는 이미지가 있어 우리 어른들의 아픔은 참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한다. 아데노 바이러스처럼 애들보다 어른이 더 아픈 경우도 있다.


아데노바이러스 침투사건에 대한 글을 또 써버렸다.

“아프다고 하는데 집에서 아내가 애만 챙기고 자기는 어지간히 안 챙겨줬나 보네.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절대 그건 아니다. ^^;;;


봄철의 수영장은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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