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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jay Feb 06. 2021

아버지의 소주병

사랑도 연습해야 하는 것


아버지는 성실하셨다. 공고를 나오시고 전화국 장거리 통신국에서 일하셨다. 80-90년대 장거리 통신국의 업무는 전국에 광케이블 깔러 다니는 거라는 걸 인터넷이라는 것이 생기고 알았다. 어렸을 적, 1년에 절반은 지방 출장을 가셨던 이유를 커서야 안 것이다. 전 세계에서 제일 빠르다는 인터넷에 아버지의 수고가 있었다니 나이 들어서야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 시대 여느 아버지들처럼 아버지가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퇴근 후 '소주 한 잔'이었다. 물론 한 잔이 한 병 되고 한 병이 두 병, 세 병이 되었지만 그 시대 모든 아버지들의 유일한 해방구였을지도... 나이가 들어가시면서 소주 한 잔의 빈도는 늘어났고 은퇴할 무렵에는 의존증도 생기셨던 것 같다.


아버지가 50대에 들어설 무렵 난 교회에 다니게 되었다. 교회에 술을 마시는 것은 '죄'라고 했다. 그때부터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오시면 아버지의 술 취한 모습이 보기 싫었다. 만취해서 혀가 꼬이고 소리치고 어머니와 싸우는  아버지와 이야기하기 싫었다. 술에 취한 사람은 이성을 잃은 사람이고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한 상태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아버지를 무시했다.


그리고 나는 장성했고, 한국을 떠나 인도에 가게 됐다. 인도에 살던 중에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은퇴 후 알코올 의존증이 더 심해지셨고, 이야기를 나눌 친구들도 하나 둘 세상을 떠나기 시작했다. 그 무렵 우울증을 앓으셨을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세 아들 중 내가 단연 아버지와 가장 친했다. 주말마다 아버진 나를 강이며 산이며 계곡을 데리고 다녔다. 이런저런 이야기도 많이 하셨던 것 같다. 항상 술을 드시면 흥이 나셔서 말을 하기 시작하셨다. 그런 모습이 싫어 청소년기에 들어서면서부터 아버지와 대화를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가장 후회한 것은 아버지가 외로울 때, 아버지가 따라 주는 소주 한 잔 받아 들고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은 것이다. 그 소주 한 잔이 뭐가 대수라고 뭐 얼마나 큰 죄악이라고 아버지를 외면했던 것일까. 그렇게 밖에는 대화하는 법을 모르시는 분이셨는데... 후회는 너무나 깊고, 나를 슬프게 한다.


얼마 전 나와 비슷한 대학생과 대화를 나누게 됐다. 가족 중 아버지만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 술을 드셔야 이야기를 하시는 아버지와 대화가 끊긴 지 오래다. 아버지와의 대화는 술 좀 드시지 말라는 훈계조가 대부분이 된 지 오래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웃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버지'를 어떻게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을지에 이르렀다. 그리고 내 안에 남아 있는 아버지에 대한 후회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한 주 후 이렇게 메시지가 왔다.


"비제이~~ 뜬금없지만, 오늘 아빠랑 데이트하면서 술도 나눠 마시고 진짜 너무 즐겁고 기쁜 이야기를 했어요. 아, 우리 아빠가 날 이렇게 사랑하는구나 알아서 너무 감사했어요. 아빠가 갑자기 '너 왜 술 먹냐?' 해서 비제이가 해주신 아빠 얘기했더니 그분한테 진짜 고맙다고 하더라고요.ㅎㅎㅎ 너무 고마워요."


크리스천들이 술을  마시고 안 마시고에 대한 논쟁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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