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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봄 Nov 27. 2020

14. 크리스마스 선물

산타할아버지는 없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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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밤은 고요하다. 전 날 축제 분위기는 새벽이 되자 적막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먹색 하늘에선 눈송이가 살랑거리고, 포슬 눈은 달빛에 비쳐 별처럼 반짝인다. 눈가루는 하나 둘 사뿐히 길 위에 내려앉으며 차츰 풍성한 안개꽃처럼 함박눈으로 변한다. 흰 눈은 거리와 단풍나무 가지에 소복이 쌓여 차가운 공기를 포근하게 만들어준다. 멀리 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대부분의 집은 불빛이 없었고 아파트 한 동에 거실 등을 켜놓은 곳은 대략 두세 군데뿐이다.


선명한 헤드라이트를 킨 빨간 SUV 자동차가 아파트로 들어온다. 전조등을 끄고 한쪽에 주차하더니 남자 S가 차에서 내린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좌우를 살핀다. 키는 190 정도, 체격은 큰 편이고 배가 블룩 튀어나와있다. 금색 안경태를 콧등에 얹고 있으며 눈동자는 선명하다. 미끄러지지 않기 위함인지 목이 긴 검정 방한화를 신고 있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위치를 확인하는 것 같다. 차키 버튼을 누르니 탈칵 소리를 내며 트렁크가 열리고 가져온 짐들을 확인한다. 배송할 상품마다 '아침 7시까지 도착 보장'이란 딱지가 붙어있다. 배송지와 물건을 분류하고 심호흡을 한다.




아파트에 들어간 S는 짐을 챙겨 엘리베이터 제일 꼭대기 층인 23층을 누른다. 몸집에 비해 움직임은 재빠르다. 2302호 집 앞에서 알록달록한 소포 박스를 꺼낸다. 귓속에는 이어폰이 꼽혀있는데,  미세한 음파를 감지할 수 있는 특수 기능이 포함된 제품이다. 잠시 현관문으로 귀를 기울이다 고개를 끄덕인다. 옷에 있는 단추를 누른다. 잠시 몸 주변으로 붉은 선이 지나가며 차음 기능을 활성화한다. 손에 든 핸드폰을 디지털 도어록에 가져다 대니 문이 아무 소리 없이 열린다. S는 현관을 지나 조심히 포장된 박스를 아이방이라고 짐작되는 장소에 놔두고 나온다.


지금은 새벽 2시, 오늘 배송할 물량이 대략 100개는 더 남았다. 다음 배송지는 1703호 받는 사람은 8세 J군. 현관문으로 다가가 인기척을 확인한다.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 다시 단추를 눌러 외부에 소리의 전달을 막는다. 현관으로 들어서며 거실을 지나 아이 방문을 열었다. 가지고 놀던 장난감은 널브러져 있고 신발에 블록 조각이 밟았지만, 소리는 나지 않는다. 벽에 걸린 빨간 양말 모양의 주머니에 네모난 상자를 넣고 돌아섰다. 현관으로 걸어가는 순간 가쁜 숨소리와 부스럭 소리가 분명히 들린다. 아까는 지나친 거실 한쪽 이불 포대기에서 초롱 거리는 눈빛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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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는 뭔가 이상했다. 아직 크리스마스가 두 달 넘게 남았는데, 아빠는 산타할아버지한테 받고 싶은 선물이 무엇인지 자꾸 물었다. 지난해도 상황은 비슷했다. 한 달 전에 말한 선물이 크리스마스 아침이면 어김없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학교 친구 K는 산타할아버지가 같은 건 없다고 없다고 말했다. J는 아니라고 했지만, K는 부모님이 사 온 거라며 아직도 유치원생이라고 놀려댔다. 



며칠 뒤 J에게 아빠가 다시 물었다. "J야 올해 크리스마스 선물 생각했어? 아빠가 산타할아버지한테 전해줄게." J는 실눈을 뜨며 답했다. "아빠가 선물해주는 거지? 이상해.. " 아빠는 순간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니야~ 아빠는 산적 없는데? 아빠도 그냥 전해주는 거뿐이야. 올지 안 올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친구가 그랬는데 산타할아버지는 없다고 했어.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래? 흠.. 아빠도 J나이 때 선물 받았는데..."

"아빠도 그랬어?"

"응 그럼. 아빠가 연락만 하는 거야. 선물이 올지 안 올진 정확히 몰라."

"그럼, 아빠한테 얘기 안 할래. 마음속으로만 생각할 거야."

"그럼 선물 안 주실 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하지?"

"괜찮아. 이번엔 산타할아버지가 있는지 없는지 볼 거야. 보면 알겠지 아빠가 주는 건지 아닌지."

"진짜로 선물 없어도 되는 거지?"

"어~ 필요한 거 없어. 마음속으로만 빌 거야."


J는 한편으로 걱정이 됐다. 큰 소리는 쳤으나, '진짜 나만 선물을 못 받으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 말이 진짜인지 알고 싶었다. '엄마 말도 안 듣고 맨날 혼나서 안 주는 거 아니야?' 괜히 고집부린 것 같아서 후회됐다. 그래서 엄마한테만 귀속말로 갖고 싶은 선물 이야기를 했다. 



2020년 12월 24일 운명의 날이었다. J는 오늘 기필코 산타할아버지 존재를 확인하리라 마음먹었다. 근 한 달 동안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으라 생각했다. 한편으론 마음속으로 바란 '로봇 레고'를 선물 받을 것 같아 설레었다. 


작전을 짜기로 했다. 오늘 저녁 엄마, 아빠가 잠자리에 들면 새벽에 일어나서 거실에 숨기로 했다. '음... 일단 장롱에서 이불을 하나 꺼내 내방으로 가져다 놓고...., 망원경을 챙기고, 양말이랑 잠바를 챙겨야겠어.' 


저녁 식사를 하며 아빠는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이 뭔지 몰라서 오늘 선물 못 받겠네?"라고 했다. J는 태연한 척 "괜찮아~ 내일 보면 알겠지~"라며 능청스럽게 말했다. 엄마는 후식으로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꺼내왔다. 생크림에 초를 꼽아서 불고 소원을 빌었다. "오늘 꼭 산타할아버지 만나게 해 주세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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