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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을 사람 Aug 02. 2021

직장 내 알츠하이머

역시 치료법은 퇴사일까요??

브런치를 대나무 숲 삼아 속내를 털어놓으려 하지만, 의도적으로 특정 개인이나 그룹, 직업군을 비하하려는 목적은 없다. 다만 기록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흑화와 미화를 남발할 것 같다.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담이고, 누구나 자신의 일이 가장 드라마틱 하게 아프니까. 그리고 난 참 더럽게 많이 아팠다. 



직장 내 알츠하이머

일을 하는 동안 가장 오래 앓았던 나의 병명을 나는 '직장 내 알츠하이머'라고 정하였다. 대표적인 증상으로는 심각한 기억의 오류, 건망증, 돌아서면 잊고, 기억하려 해도 잊고, 메모하면 메모한 사실 자체를 잊는 것이 있다. 이 증상이 심각해지면 그런 내가 너무 싫고, 한심한 바보 멍청이가 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아! 병의 원인은 업무과다로 짐작해본다. 직장 내 알츠하이머는 퇴근하면 증세가 완화되고, 퇴사하면 완치가 가능하다. (하지만 타고난 나쁜 기억력은 더 좋아지지는 않는다.) 


유치원 선생님에게는 매일매일 새롭게 기억해야 하는 일이 산더미다. 하루를 사람으로 시작해서 사람으로 끝나는 일이다 보니 아무리 하루 일과를 미리 준비하더라도 날씨, 아이들 컨디션, 다른 반과의 관계, 상사의 변덕, 학부모의 요구 등등 변수가 너무나 많다. 갑작스러운 상황을 스무 명이 넘는 아이들을 데리고 빠르게 대처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보통 유치원 일과는 시간과의 싸움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물론 담임만의 고독한 싸움이다. 


어느 직업군이나 많은 일이 한 번에 나를 덮쳐오면 깜빡하게 되는 것이 많아지고, 실수도 생길 수밖에 없다. 나도 그랬다. 한쪽에서 바지에 똥 싸고, 다른 한쪽에서는 싸워서 울고,  다른 한쪽에서는 부모가 갑자기 데리러 와서 빨리 나오라 하고, 그 와중에 학원 가는 아이들의 하원도 함께 준비해야 하는데 교실에 어른은 나 혼자인 상황이 반복된다면 누구라도 직장 내 알츠하이머를 피해 갈 수 없을 것이다. 과장이 아니다. 진짜 교실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상황이다. 


많은 교사들이 자괴감에 휩싸여 직장 내 알츠하이머를 의심하게 되는 결정적인 사건들이 있는데, 대표적인 예로 차량 실수가 있다. 


차량 실수....... 


실수를 깨닫는 순간 온몸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며 심장이 내려앉게 만드는 그것.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돋아나고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그것....... 다시 생각해도 정말 끔찍하군....... 그렇지만 차량 실수는 정말 할 말이 많다!


아니, 하원 방법을 바꿔도 너무 바꿔! 어떤 학부모는 하원 방법을 하루에 몇 번을 바꾸기도 했다. 많은 선생님들이 그러하듯 나 역시 아이들의 등·하원 방법을 표로 만들어 두었는데, 한 학기 동안 표를 몇 번이나 수정하는지 모른다.


요일별로 하원 장소가 다른 아이, 학원차량+나머지 요일별로 하원 장소가 다른 아이, 하원 시간 다 되어서 갑자기 전화로 차량 변경 요구하는 학부모, 차량이 출발한 뒤에 갑자기 유치원으로 데리러 온 학부모, 말도 없이 다른 시간 등원차량을 타고 오는 아이 등 정말 모두 난감하기 그지없다. 


차량 하나 변경할 때도 원하는 장소를 지나가는 차량에 탑승이 가능한지 여부부터, 그 차량을 탔을 때 하원 시간 전달, 차량 선생님에게 학부모 연락처 전달 등 확인할 것도 많다. 그리고 그걸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처리해야 한다는 것! (교무실에서 해주면 다행이지만..... 후........ ) 방과 후 특별활동이라도 하면 더 난리 난다.


게다가, 등원 때도 연락 없이 마음대로 차량을 바꿔 태워버리면 기존에 타던 차량에도 연락해서 전달해야 하는데 보통 그 시간에 교사는 먼저 등원한 아이들과 함께 있다는 것이 문제다. (교무실에서 해주면 다행이지만....... 후.......)


차량 하나만 해도 이런데 직장 내 알츠하이머가 걸리겠어요 안 걸리겠어요?


수많은 유치원, 어린이집 교사들이 건망증이 심한 자신에게 자괴감이 들 수 있다. 교사의 실수는 아이들에게 영향을 주니까. 나도 처음에는 스스로를 탓하고, 나는 왜 이렇게 멍청할까 매일 밤 자책했는데, 그거 아니다. 환경 탓이 90%다. 우리는 지극히 정상인 것이다. 물론! 아무리 그래도 실수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지만!


학부모도 갑작스러운 차량 변경 외에도 교사에게 갑작스럽게 무언가를 부탁할 때는 각 가정에서 피치 못할 사정이 있다는 걸 안다. 교사들도 그런 건 다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더러 사소한 것일수록 너무 쉽게, 자주 요구하는 학부모도 있다. 아주 사소한 일도 많은 아이들이 함께 생활하는 교실에서는 하나의 일이 된다는 것을 한 번만 떠올려 줬으면 좋겠다.





투약, 차량 실수를 방지하기 위한 나의 노력들.


1. 투약의 경우

 - 투약 시간 알람 설정. (가장 효과적이다.)

 - 시계에 포스트잇 붙이기.

 - 등원 후 가방 살필 때 아이에게도 미리 말해놓기. (누구야! 오늘 무엇 무엇을 하고 약 먹자!)

 - 내가 가장 자주 시선이 닿는 곳에 약 보관하기.

 

2. 차량의 경우

 - 내 기억력을 절대 믿지 말 것. 변경사항은 바로 메모!

 - 변경사항은 바로 전달해두기.

 - 하원 표에 메모해서 붙여두기.

 - 아이에게도 정확하게 말해주기.

 - 문에도 메모해서 붙여두기.

 - 아이들 하원 방법 모두 알아도 매일매일 하원표 보면서 보내기.


결론: 그래도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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