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위한 앨범은 언제나 존재하고 있다.
- 다시 글 앞에 서기까지의 이야기 -
나는 이제 음악을 쓴다
어쩐지 글이 쓰기 싫었다
나는 읽는 것도 많고, 보는 것도 많고, 듣는 것도 많은데 어쩐지 느낀 것에 관해 쓰는 것은 그다지 부지런한 편이 아니었다. 생산적으로 사는 것에 대해 굉장히 중요시하는 성향의 내가, 쉬고 싶다는 핑계로 보물섬 같은 현재를 비생산적으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을 때, 지난날들의 사소한 감정들이 그저 땅에 떨어졌다는 사실이 미치도록 아깝게 느껴졌다.
나는 왜 쓰지 않았을까?
중학교 때의 내가 외로움을 달래는 수단은 영화 보기와 소설 쓰기였다. 하루에 꼭 한 편 이상 새벽을 새워서까지 무언가를 보았고, 학교 일과를 마친 시간에나 주말이어서 할 일이 없는 날에는 소설을 썼다. 소설을 썼던 도구가 컴퓨터였는지 전자사전이었는지 오빠의 노트북이었는지 조차 기억이 나지 않지만, 소설의 제목을 ‘TOAST’로 했던 것은 또렷이 기억난다. 중학생으로서 낼 수 있는 어른의 티는 모두 내고 싶었다. 나름대로 공을 무지하게 들인 작문활동이었기 때문에 꽤 고심해서 제목을 지었는데 왜 제목을 저것으로 지었는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그건 아마 그 당시에도 모르고 지었을 확률이 컸을 것이고 다만 중학생이 보기에는 ‘BRUNCH’ 같은 느낌의 꽤 고급져보인 단어였던 것 같다. 그 때의 나는 오랜 시간 꾸준히 그 작문 활동을 이어갔는데, 지금 감히 그 성실했던 아이의 작문 활동의 계기를 추측해보자면 집에 늘 사람이 없었고, 영화를 보면서 호기심에 연기 연습을 몇 번 해보다가 자기 생각에 재능이 있다고 판단했지만, 자신의 연기를 보여줄 매체는 없고 다만 글로는 캐릭터와 상황 설정을 맘껏 해볼 수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풀어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입시를 준비할 나이가 되어 글쓰기 취미는 곡을 쓰는 취미로 바뀌었고, 취미가 아닌 특기로 발전시켜야 대학에 들어갈 수 있게 되면서 평가를 잘 받기 위한 글을 쓰게 되었다. 점점 글 쓰는 일이 싫어졌다. 원하던 가수가 되어서도 여전히 글과 노래를 쓰는 일이 힘들었다. 얼마든지 날아가도 괜찮은 감정을 꼭 붙들어서 깎고 다듬어 꾹꾹 작품으로 눌러담는 일이 나를 더 괴롭게 했고, 작은 일에 큰 의미를 부여하게 만드는 것이 습관이 되어 결국엔 예민한 성격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오랫동안 줄글을 쓰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오늘날까지 왔는데, 후회가 된다.
읽고, 보고, 듣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느끼는 것’은 독보적인 개인의 작품으로 이어진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생각이 있다면 반드시 생산적활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나는 노래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니 글이 모이면 가사가 되고 가사가 완성되면 음이 붙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내가 무엇을 느끼는지 내가 인지해야 했다. 생각은 휘발성이 좋아서 불씨를 붙여주지 않으면 공중에 기화되고 그렇게 언제 존재했는지도 모르게 자취를 감춘다.
무엇을 써야 할까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 먹은 다음에는 이 질문이 이어졌다. 다시 소설을 쓴다 해도 막막하지는 않을 것 같았지만 아무래도 본업과 병행하기에는 그 긴 호흡을 이어가는 데에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짧은 작문이 나에게는 더 맞겠다 싶었고, 책을 좋아하니 독후감을 올려도 좋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책보다는 사람들에게 더 익숙하지 않은 소재로 글을 쓰고 싶었다. 영화도 그런 이유에서 배제당했다. 본업이자 주객인 음악을 전도하지 않으면서 나에게 익숙한 일이고, 내가 잘하는 것을 글로 쓰고 싶었는데, 때는 내가 아끼는 마음으로 보는 유튜버 ‘겨울서점’ 님의 인권 관련 도서 리뷰 영상을 보고 있을 때였다. 아동학대 도서 리뷰 편이었는데, 그녀가 영상에서 가져온 책은 서점에서 제목만 보고 지나갔던 익숙한 책이었다. 그 영상이 아니었다면 이 책이 아동학대에 대한첫 전수조사를 끌어낸 기자들의 헌신으로 출판 되었다는 사실과, 그에 반해 나를 포함한 사회 성인 구성원들이 얼마나 이 문제에 대해 무관심하며 개인 중심적이고 이기적이었는지에 대해서 절대 알지 못했을 것이었다. 아동학대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의 그늘 아래 놓인 문제들이 얼마나 많을지 생각하면 나는더 부끄럽고 분해졌다. ‘겨울서점’님께 더 고마운 마음이 생겼다. 그렇게 나도 저런 공익성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확실한 방향성이 생긴 것이다.
이제 막 태어나서 곧바로 죽는 노래들이 있다
음악 스트리밍 앱 ‘멜론’을 키면 가장 먼저 메인 화면에 최신앨범 카테고리가 보인다. 그리고 그 칸에 노출되는 앨범의 라인업은 하루에도 몇 번씩 교체된다. 하루에 수백 수천 가수의 노래가 나오기 때문에 대중들에게는 그저 메가헤비컨텐츠 중 하나에 그칠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일정시간에 운이 좋아 최신앨범 카테고리 메인에 노출되더라도(그것 또한 어려운 일임에도) 대중님의 귀한 터치를 하사받는 것은 당연한 일은 아닌 것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음악을 하는데에 돈이 있어야 하는 이유를 ‘생일케이크’에 비유해 설명한 적 있다. 생일의 주인공은 그날이 다가오기까지 마음이 설레온다. 그날을 위해 값비싼 옷도사고, 고급 출장 뷔페도 예약하고, 초대할 친구들 리스트를 정리하며 하루하루 세어간다. 마지막으로 파티 인테리어까지 손수 마쳤는데 생일 당일, 아무도오지 않았다. 그렇게 멋들어진 케이크에 초를 켜고 혼자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초를 끄면 생일은 끝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그날이 지나면아무것도 아닌 날이 또 굴러가는 것이다. 그렇게 뮤지션들은 비싼 돈을 들여 공허함을 낸다. 앨범발매일을 허무하게 지나가지 않으려면 돈을 들여서 동네방네 나의 생일을 알려야 하는데, 뮤지션은 대부분 그럴 돈이 없고, 돈이 있더라도 효율적인 광고안을 혼자서 계획하기란 매우 어렵다. 나 또한 그랬고, 그래서 내 앨범에 대해 자세히 얘기해주는 사람일수록 감동과 인정(人情)을 느꼈다. 싱글앨범이야 대부분 단 한 곡이기 때문에 앨범이 한 번 나오면 곡이 어땠는지 자세하게 얘기해주는 사람들이 많지만, 곡 수가 많은 묶음 앨범(Ep, 미니앨범, 정규앨범)일수록 각 곡의 느낌이나 수록곡 순서, 혹은 앨범 아트, 소개 글 따위의 디테일한 구성 전체를 짚어주며 말해주는 사람은 없다. 그 모든 디테일이 뮤지션의 정체성인데도 말이다. 그래서 점점 뮤지션들은 단타로 잦게 치는 마케팅을 선호하게 된다. 묶음 앨범만이 가지는 가수의 정체성이 있다. 단편집만 내는 작가가 장편 소설을 내겠다고 선언할 때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나라고 누군가의 앨범에 정성을 다해 관심 가져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나는 '앨범 리뷰’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제부터 앨범을 리뷰합니다
사회적으로 매우 심각한 아동학대의 문제에서 파생되어 그에 비해서는 다소 가벼운 문제로 접근한 것이 아닌지 고민이 되기도 했지만, 대기업 시장에 묻혀 좋은 뮤지션들이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직접적으로 예술가 빈곤의 문제와 맞닿아있다. 그리고 이 분야는 글쓰기에 자신 있음이 틀림없었다. 이제부터 나는 멜론 탑100이 아닌, 당신의 기분이 -일 때 들어야 할 딱 맞는 앨범을 자세한 이유와 함께 추천할 것이다.
당신을 위한 앨범은 언제나 존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