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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나비 Aug 07. 2024

매몽기(買夢記)

뒤끝 없는 남자가 꿈을 산 이야기

밤 9시 15분.

학원 셔틀버스에서 아이가 내린다.


손을 잡고 걸어오는데 아이가 말했다.


"아빠, 나 오늘 아침 늦게 일어났잖아."


아이의 손을 잡고 앞뒤로 흔들며

별생각 없이 아빠는 대답했다.


"응, 숙제 남은 거 해야 한다고

일찍 일어날 거라더니, 늦잠 잤더라?"


아빠의 손에 이끌려 시계추처럼 앞으로 뒤로

흔들리고 있는 자신의 팔을 잠시 내려다보던 아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거 꿈 때문이야."


전혀 예상치 못한 아이의 말에 손에 힘을 주어

시계추처럼 흔들리는 두 개의 팔을

멈춰 세우고 아이의 아빠가 되물었다.


"꿈?"



"어제 꿈을 꿨는데 꿈속에서 아빠가 죽은 거야.

아니 죽은 게 아니라 곧 죽을 거래."


"누가 그래?"


"꿈속에 의사 선생님이 있었는데,

선생님이 다음 주 월요일에 아빠가 죽는다고

미리 준비하라고 했어."


"그래?"


"근데 너무 신기한 게 그 말을 듣고 아무도 안 울어.

엄마도, 할머니도.. 아무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 거야."


"설마.. 너도 안 울었어?"


"난 울었지! 그래서 아침에 일찍 깼다가

너무 무서워서 못 일어나고 계속 눈 감고 있다가

다시 잠드는 바람에 늦잠 잔 거야."


"그랬구나.."



다시 앞으로 뒤로 시계추처럼 팔을 흔들며

아이와 아빠는 아파트 단지 안을 걸었다.

고개를 옆으로 살짝 돌린 아빠가 아이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아이의 표정이 어둡다.

아이의 순진한 눈망울엔 지난밤 꿈의 잔상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아이의 아빠는 뭔가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아빠가 그 꿈 살게."


"꿈을 산다고?"


"어, 그 꿈 아빠한테 팔아."


"진짜? 얼마 줄 건데?"


"요전에 사달라고 했었던 핸드폰 촬영 삼각대랑

모서리 컷팅기, 그거 두 개 주문해 줄게."


"진짜? 진짜지? 그래 내 꿈 팔게!"


"그럼 이제 그 꿈 아빠가 산거다?"


"그래 이제 아빠 꿈이야. 근데 내 꿈 사서 뭐 하게?"


"로또 살 거야."


"샀는데 꽝이면?"


"그럼 그 꿈이 개꿈인거지."


"1등 되면?"


"그럼 좋은 꿈이었던 거고."


"1등 되면 상금으로 얼마 주는데? 아빠 근데 1등

돼서 상금 받으면 나한테도 나눠 줄 거야?"


"음... 글쎄. 핸드폰 삼각대랑 모서리컷팅기로

니 몫은 챙긴 것 같은데?"


"아 쫌. 그러지 말고 1등 되면 음... 너무 많이 부르면

안줄테니까, 나 그냥 백만 원만 줘라."


"백만 원?"


"아~ 아~빠~ 백만 원만 줘라."



아빠가 다음 주 월요일에 죽는 꿈을 꿨다고,

표정이 어둡던 그 아이는 어디로 갔을까.

현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아이의 흥정은 계속되었고,

결국 100만 원으로 시작됐던 합의금은

10만 원까지로 줄어있었다.


하지만,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냉철하고 분별력이 뛰어난 아이의 아빠는

그 10만 원에도 끝내 확답은 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지난주 수요일에 아이의 꿈을 산 아빠는

그다음 날인 목요일, 로또 5천 원 치를 구입했다.

그리고 부푼 가슴으로 추첨일인 토요일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매주 토요일 저녁 8시 35분 경이던 추첨 시간이

파리 올림픽 중계로 10시 20분으로 미뤄졌지만

아이의 아빠는 내심 평소와 다른 이런 상황도

내가 1등에 당첨이 될 거란 암시가 아닐까 하는

기대를 품으며 추첨 방송을 기다렸다.


로또 오천 원.

천 원에 6개의 숫자를 선택하는 것이니

총 30개의 숫자를 선택한 셈이다.


제1131회 차 로또 1등 당첨 번호는

1,2,6,14,27,38이다.


아이의 아빠가 산 로또 용지에 적힌 숫자들 중에

일치하는 숫자는 3개였다.

그리고 그 마저 모두 행이 달랐다.



꽝이 된 로또가 액땜을 해서인지

아이의 꿈에서 의사가 죽을 거라 했던

월요일이 무사히 지나갔다.


한가롭게 집을 지키고 있던 아빠의 전화가 울린다.


"오 우리 여사님~ 무슨 일로 이 시간에 전화를

다 주시고?"


"엄마 시골에 왔는데, 복숭아가 너무 맛있어서

한 박스 집으로 부쳤어. 오늘쯤 들어갈 거 같으니까

받으면 집 안으로 들여놔."


"오~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여사님.

아, 참 근데 여사님?"


"응? 왜?"


"왜 안 우셨어요?"


"무슨 말이야? 너 또 뭐 이상한 개그 같은 거 하려는

거지? 엄마, 이모들하고 다시 바다로 나가야 돼서

끊는다."


"아니, 여사님! 잠깐만! 다음번엔 꼭 울어줘~"


뚜뚜뚜


냉정하게 끊어진 전화를 바라보며

아이의 아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흠.. 아이의 엄마에게도 왜 안 울었냐고 물어볼까.



뒤끝 없는 남자가 아이의 꿈을 샀다.

아이는 두려움이 사라졌고,

아빠는 5천 원이 사라졌다.


밤 9시 15분.

학원 셔틀버스에서 아이가 내린다.


손을 잡고 걸어오는데 아이가 말했다.


"아빠, 있잖아~ 나 오늘....."


    



*사진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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