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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나비 Jun 09. 2024

2024년의 6월과 2024년의 새 다이어리

올해 새 다이어리가 한 권 있습니다.

아직 한 장도 쓰지 않았습니다.

아니,

아직 한 글자도 쓰지 못했습니다.


새 다이어리를 펼치면

그게 새 다이어리라 하더라도,

잊고 있던 많은 것들이

튀어나올 것 같았습니다.

오래전 특정 연도의 다이어리도 아닌

2024년 올해 새 다이어리인데도 그렇습니다.


새 다이어리를 펼치면,

급하게 잡힌 회의에 들어가  

날림으로 받아 쓴 글씨로 가득 찬

한 페이지가 갑자기 튀어나올 것 같았고,


놀라 접었다 다시 펼치면

회의가 끝난 다음 날이 되어

어제 쓴 글씨를 따라 써보는,

내 글씨를 내가 해독하고 있는

웃기지도 않는 모습이

툭하고 튀어나올 것 같았습니다.


이제 괜찮겠지 하고 한참 있다 다시 펼치면

그 어떤 방패로도 막을 수 있는 창과

그 어떤 창에도 뚫리는 방패처럼,

이 달의 각종 지출 금액들과

곧 들어올 월급과 성과급들의 숫자들로 점철된

또 다른 페이지가 놀리듯 튀어나올 것 같았고,


만났던 사람들과

만나야 할 사람들.

갔던 곳들과

가야 할 곳들이

어지럽게 떠오를 것만 같았습니다.


올해 새 다이어리가 한 권 있습니다.

딱딱한 겉 커버를 쓰다듬다

나도 모르게 속지를 펼칩니다.


썼다 지울 수 있는 연필이나 샤프가 아닌

지울 수 없는 볼펜으로 휘갈기듯 써봅니다.


올해 새 다이어리가 한 권 있습니다.

이제 처음 한 장을 써봅니다.






*사진출처:내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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