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새 다이어리가 한 권 있습니다.
아직 한 장도 쓰지 않았습니다.
아니,
아직 한 글자도 쓰지 못했습니다.
새 다이어리를 펼치면
그게 새 다이어리라 하더라도,
잊고 있던 많은 것들이
튀어나올 것 같았습니다.
오래전 특정 연도의 다이어리도 아닌
2024년 올해 새 다이어리인데도 그렇습니다.
새 다이어리를 펼치면,
급하게 잡힌 회의에 들어가
날림으로 받아 쓴 글씨로 가득 찬
한 페이지가 갑자기 튀어나올 것 같았고,
놀라 접었다 다시 펼치면
회의가 끝난 다음 날이 되어
어제 쓴 글씨를 따라 써보는,
내 글씨를 내가 해독하고 있는
웃기지도 않는 모습이
툭하고 튀어나올 것 같았습니다.
이제 괜찮겠지 하고 한참 있다 다시 펼치면
그 어떤 방패로도 막을 수 있는 창과
그 어떤 창에도 뚫리는 방패처럼,
이 달의 각종 지출 금액들과
곧 들어올 월급과 성과급들의 숫자들로 점철된
또 다른 페이지가 놀리듯 튀어나올 것 같았고,
만났던 사람들과
만나야 할 사람들.
갔던 곳들과
가야 할 곳들이
어지럽게 떠오를 것만 같았습니다.
올해 새 다이어리가 한 권 있습니다.
딱딱한 겉 커버를 쓰다듬다
나도 모르게 속지를 펼칩니다.
썼다 지울 수 있는 연필이나 샤프가 아닌
지울 수 없는 볼펜으로 휘갈기듯 써봅니다.
올해 새 다이어리가 한 권 있습니다.
이제 처음 한 장을 써봅니다.
*사진출처:내앨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