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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구름 Nov 17. 2022

129_ 부모님께 손만 안 벌려도

+ 30대 노후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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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우리에겐 부모님에 용돈을 걱정하는 마음이 있다.

그리고 거기엔 쪼들리는 내 생활에 지갑을 닫아야 하나 고민하는 마음도 있지만, 풍족하게 드리지 못함에 죄송스러운 마음도 있다. 예쁜 마음이다. 근데 솔직히 이런 고민을 이야기할 때 나는 용돈 걱정하기 전에 최소한 부모님께 손이나 벌리지 말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온다.


자식은 부모님께 죄송하다면서 한 번씩 손을 크게 벌린다. 평소에 도와달란 적 없지 않냐 큰소리치기도 하고, 안 도와주면 연을 끊겠다 엄포도 놓으면서 손주 육아를 부탁하고 독립이나 자가 마련, 생활비, 사업 운용 등에 필요한 금전을 요구한다.


평소에 겨우 용돈 좀 쥐여드리고, 식사 몇 번 같이 하고, 고작 1년에 몇 번 함께 시간을 보내며 더 잘해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은 뻔질나게 하면서 큰 손 벌릴 때 부모님을 찾는다. 10만 원 주고 100만 원 달라는 꼴이다.


월급 드릴 테니 아이 셋의 육아를 도와달라던 맞벌이 딸의 부탁을 거절했다는 을 아주머니 얘기를 듣고 처음에는 너무 매몰찬 거 아닌가 싶었지만, 곧 정답을 내리기 참 어려운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을 아주머니는 조그마한 사업체를 운영하는 남편의 소득으로 둘의 생활을 유지하기 빠듯하여 요양 일을 시작하셨다. 헌데 손주를 돌봐주게 되면 그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 딸 내외가 월급을 주겠다고는 했지만, 그게 150만 원이 넘을 리 없다. 딸 부부도 월급이 많지 않고 꼬물거리는 아기들만 셋이라 돈 나갈 데가 많으니까.


무엇보다 손주를 돌보며 딸네 집에 살다시피 하면 그 집 살림이 신경 쓰이지 않을 리 없다. 냉장고 비지 않게 하고 아기들 간식 하나 더 사다 먹일 게 뻔하다. 멀리 살며 가끔 전화하던 딸이 손주 학원비를 걱정하면 마음만 쓰다 말 수 있지만, 퇴근한 딸이 바로 옆에 앉아 애들 학원 하나 더 보냈으면 좋겠다며 풀 죽어 있는 건 모른 척하기 어렵다. 결국, 자식 이 준 돈 다시 자식·손주에게 들어가기 마련이다.  


한 달 전인가, 김밥 가게에서 우연히 어머니 친구분을 뵀다. 잘 지내시냐 여쭈니 지금 손주 둘을 보며 150만 원 받는데 그 돈이 전부 손주에게 도로 들어가더라 하시며 껄껄 웃으셨다. 다행히 그 아주머니는 부자라 그런 말을 하면서 웃으실 수 있었지만, 금전 여유가 없는 60대라면? 웃음기 싹 사라질 얘기다.


근데 또 가족끼리 돈, 돈, 돈타령만 하니 너무 정 없다.

해서 아주머니가 애들 초등학교 갈 때까지 4~5년 정도만 돌봐주셔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보기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난다는 손주니 그 정도는 함께 해주실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런데 4~5년 후에 아주머니 연세가 70세다. 일자리 찾기 여간 어려운 나이다. 손주 돌보기가 끝나면? 취직할 곳이 없게 되는 거다.


요양 일도 70세에 그만둬야 하지 않냐 주변에 물어보니 그건 계속하던 일이면 그 나이에도 할 수 있지만, 일을 쉬다가 70대에 다시 들어가는 건 좀 어렵다고 한다. 지금 일을 쉬면 을 아주머니의 소득은 끊기게 되는 거다. 근데 딸은 그 문제를 해결해 줄 능력이 없다. 오히려 애들 봐주는 동안에 본인들 생활비 쪼들리면 “미안해, 엄마.” 한마디로 월급을 줄이거나 떼어먹지는 않을까를 걱정해야 하는 판이다.


금전 도움도 마찬가지다.

노후에는 천만 원만 더 있어도 삶이 위태로움에서 한걸음 크게 벗어날 수 있는데 자식이 가~끔씩 와서 우는 소리하며 자가용 마련, 손주 과외비, 이사비용 등 돈뭉치 한 번씩 가져가니 천만 원 지키기도 어렵다. 그런데 부모는 자식 독립이니 결혼이니 부모가 해줘야 하는 몫이 있다며 돈 크게 쓰는 걸 마다하지 않는다.


그 돈만 안 내어줬어도 연금으로 매달 30만 원은 더 받고, 누구는 더 이상 일하지 않아도 먹고사는 데는 문제가 없는데 자식들은 그건 관심이 없고 부모는 곧바로 닥칠 자신의 가난한 삶에 걱정하고 불안해하면서도  손해를 감당한다.


서민 노부모는 자식에게 육아든 금전이든 도움을 내어주면 생활이 눈에 띄게 달라질 만큼 타격이 크다. 하지만 자식은 부모가 서민이건 말건 당연히 자기 것이라는 듯 주는 대로 받아가고 가끔 힘들 땐 찾아도 온다. 그러면 부모는 늘 자기 처지는 뒷전으로 두고 어떻게든 자식에게 도움이 되고자 자금을 내어준다. 부모는 쉰밥에 고추장 발라 먹어도 내 새끼는 한우 먹여야 한다며 주섬주섬 쌈짓돈까지 꺼내놓고 결국 빈곤을 맞이한다.


그래서일까.

우리나라에는 가난한 노인이 많다. (2020년 기준 66세 이상 노인 빈곤율 40.4% - 보건복지부) 10명 중 4명이 빈곤하다는데 그럼 나머지 6명 중 중산층은… 2명 정도는 될 수 있을까? 주변에서 여유 있게 사는 어른들 보기가 쉽지 않은데. 솔직히 말하면 자식은 손을 벌리기는커녕 이렇게 가난하게 사는 부모가 돈 달라고, 생활비 내놓으라고 손 안 벌리는 것만도 감사해야 하는 거 아닌가??


많은 부모의 노후가 휘청거리고 있다.

그러니 한 달에 20만 원 드리느니 마느니 걱정하기 전에 두 번 다시 부모님의 노후 자금에 손대지 말자. 그거만 해도 효도……휴, 이까짓 걸 효도라고 해야 하는 게 참 거지 같지만, 상황이 이러니 이것만이라도 하지 말라는 말을 이렇게 길게 한다.


이젠 손 벌릴 생각 대신 갚을 생각을 해보면 어떨까?

이미 부모님께 뽑아 쓴 돈이 많다. 태어날 때부터 내꺼라고 정해진 돈 없고 그동안 부모님이 내게 쓰신 돈은 다 당신들 마음을 내어주신 거니까 유학, 독립, 결혼 등으로 가져간 수천만 원 갚아도 된다.


어른으로서 본인의 삶을 온전히 책임지고 산다면, 그래서 내 집 마련이든 아이 교육이든 본인에 모든 경제적 문제를 스스로 해결한다면 60세가 넘은 아줌마와 아저씨는 일자리를 찾을 일도, 70대에 어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얼굴에 그늘이 질 일도 없다. 우리가 손만 안 벌려도 부모님의 노후는 안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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