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_ 부모님께 손만 안 벌려도
+ 30대 노후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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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우리에겐 부모님에 용돈을 걱정하는 마음이 있다.
그리고 거기엔 쪼들리는 내 생활에 지갑을 닫아야 하나 고민하는 마음도 있지만, 풍족하게 드리지 못함에 죄송스러운 마음도 있다. 예쁜 마음이다. 근데 솔직히 이런 고민을 이야기할 때 나는 용돈 걱정하기 전에 최소한 부모님께 손이나 벌리지 말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온다.
자식은 부모님께 죄송하다면서 한 번씩 손을 크게 벌린다. 평소에 도와달란 적 없지 않냐 큰소리치기도 하고, 안 도와주면 연을 끊겠다 엄포도 놓으면서 손주 육아를 부탁하고 독립이나 자가 마련, 생활비, 사업 운용 등에 필요한 금전을 요구한다.
평소에 겨우 용돈 좀 쥐여드리고, 식사 몇 번 같이 하고, 고작 1년에 몇 번 함께 시간을 보내며 더 잘해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은 뻔질나게 하면서 큰 손 벌릴 때 부모님을 찾는다. 10만 원 주고 100만 원 달라는 꼴이다.
월급 드릴 테니 아이 셋의 육아를 도와달라던 맞벌이 딸의 부탁을 거절했다는 을 아주머니 얘기를 듣고 처음에는 너무 매몰찬 거 아닌가 싶었지만, 곧 정답을 내리기 참 어려운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을 아주머니는 조그마한 사업체를 운영하는 남편의 소득으로 둘의 생활을 유지하기 빠듯하여 요양 일을 시작하셨다. 헌데 손주를 돌봐주게 되면 그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 딸 내외가 월급을 주겠다고는 했지만, 그게 150만 원이 넘을 리 없다. 딸 부부도 월급이 많지 않고 꼬물거리는 아기들만 셋이라 돈 나갈 데가 많으니까.
무엇보다 손주를 돌보며 딸네 집에 살다시피 하면 그 집 살림이 신경 쓰이지 않을 리 없다. 냉장고 비지 않게 하고 아기들 간식 하나 더 사다 먹일 게 뻔하다. 멀리 살며 가끔 전화하던 딸이 손주 학원비를 걱정하면 마음만 쓰다 말 수 있지만, 퇴근한 딸이 바로 옆에 앉아 애들 학원 하나 더 보냈으면 좋겠다며 풀 죽어 있는 건 모른 척하기 어렵다. 결국, 자식 이 준 돈 다시 자식·손주에게 들어가기 마련이다.
한 달 전인가, 김밥 가게에서 우연히 어머니 친구분을 뵀다. 잘 지내시냐 여쭈니 지금 손주 둘을 보며 150만 원 받는데 그 돈이 전부 손주에게 도로 들어가더라 하시며 껄껄 웃으셨다. 다행히 그 아주머니는 부자라 그런 말을 하면서 웃으실 수 있었지만, 금전 여유가 없는 60대라면? 웃음기 싹 사라질 얘기다.
근데 또 가족끼리 돈, 돈, 돈타령만 하니 너무 정 없다.
해서 아주머니가 애들 초등학교 갈 때까지 4~5년 정도만 돌봐주셔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보기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난다는 손주니 그 정도는 함께 해주실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런데 4~5년 후에 아주머니 연세가 70세다. 일자리 찾기 여간 어려운 나이다. 손주 돌보기가 끝나면? 취직할 곳이 없게 되는 거다.
요양 일도 70세에 그만둬야 하지 않냐 주변에 물어보니 그건 계속하던 일이면 그 나이에도 할 수 있지만, 일을 쉬다가 70대에 다시 들어가는 건 좀 어렵다고 한다. 지금 일을 쉬면 을 아주머니의 소득은 끊기게 되는 거다. 근데 딸은 그 문제를 해결해 줄 능력이 없다. 오히려 애들 봐주는 동안에 본인들 생활비 쪼들리면 “미안해, 엄마.” 한마디로 월급을 줄이거나 떼어먹지는 않을까를 걱정해야 하는 판이다.
금전 도움도 마찬가지다.
노후에는 천만 원만 더 있어도 삶이 위태로움에서 한걸음 크게 벗어날 수 있는데 자식이 가~끔씩 와서 우는 소리하며 자가용 마련, 손주 과외비, 이사비용 등 돈뭉치 한 번씩 가져가니 천만 원 지키기도 어렵다. 그런데 부모는 자식 독립이니 결혼이니 부모가 해줘야 하는 몫이 있다며 돈 크게 쓰는 걸 마다하지 않는다.
그 돈만 안 내어줬어도 연금으로 매달 30만 원은 더 받고, 누구는 더 이상 일하지 않아도 먹고사는 데는 문제가 없는데 자식들은 그건 관심이 없고 부모는 곧바로 닥칠 자신의 가난한 삶에 걱정하고 불안해하면서도 그 손해를 감당한다.
서민 노부모는 자식에게 육아든 금전이든 도움을 내어주면 생활이 눈에 띄게 달라질 만큼 타격이 크다. 하지만 자식은 부모가 서민이건 말건 당연히 자기 것이라는 듯 주는 대로 받아가고 가끔 힘들 땐 찾아도 온다. 그러면 부모는 늘 자기 처지는 뒷전으로 두고 어떻게든 자식에게 도움이 되고자 자금을 내어준다. 부모는 쉰밥에 고추장 발라 먹어도 내 새끼는 한우 먹여야 한다며 주섬주섬 쌈짓돈까지 꺼내놓고 결국 빈곤을 맞이한다.
그래서일까.
우리나라에는 가난한 노인이 많다. (2020년 기준 66세 이상 노인 빈곤율 40.4% - 보건복지부) 10명 중 4명이 빈곤하다는데 그럼 나머지 6명 중 중산층은… 2명 정도는 될 수 있을까? 주변에서 여유 있게 사는 어른들 보기가 쉽지 않은데. 솔직히 말하면 자식은 손을 벌리기는커녕 이렇게 가난하게 사는 부모가 돈 달라고, 생활비 내놓으라고 손 안 벌리는 것만도 감사해야 하는 거 아닌가??
많은 부모의 노후가 휘청거리고 있다.
그러니 한 달에 20만 원 드리느니 마느니 걱정하기 전에 두 번 다시 부모님의 노후 자금에 손대지 말자. 그거만 해도 효도……휴, 이까짓 걸 효도라고 해야 하는 게 참 거지 같지만, 상황이 이러니 이것만이라도 하지 말라는 말을 이렇게 길게 한다.
이젠 손 벌릴 생각 대신 갚을 생각을 해보면 어떨까?
이미 부모님께 뽑아 쓴 돈이 많다. 태어날 때부터 내꺼라고 정해진 돈 없고 그동안 부모님이 내게 쓰신 돈은 다 당신들 마음을 내어주신 거니까 유학, 독립, 결혼 등으로 가져간 수천만 원 갚아도 된다.
어른으로서 본인의 삶을 온전히 책임지고 산다면, 그래서 내 집 마련이든 아이 교육이든 본인에 모든 경제적 문제를 스스로 해결한다면 60세가 넘은 아줌마와 아저씨는 일자리를 찾을 일도, 70대에 어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얼굴에 그늘이 질 일도 없다. 우리가 손만 안 벌려도 부모님의 노후는 안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