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조리실
예상보다 일주일 늦어지긴 했지만 조리실 세팅이 마무리되어 갔다.
조리실벽에 덕지덕지 붙여 있던 손 씻는 법, 보존식 관리법, 식품세척법, 도마관리법 등의 지침들은 떼어내고 곳곳의 찌든 기름때는 전용세제로 닦아냈다.
싱크대 수납장과 냉장고에 섹션별 라벨링까지 마치니 조리실은 한결 정돈되었다.
예전 같으면 출력해서 코팅하고 양면테이프로 붙여야 할 귀찮은 작업이 요즘은 휴대용 라벨프린터 하나로 손쉽게 된다.
라벨프린터는 핸드폰과 연결해서 쓰는 블루투스형과 키보드형이 있는데, 어린이집에서 쓰기엔 자판이 있는 앱손 제품(가격은 6만 원선)이 좀 더 편리한 것 같다.
큰 수고와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차이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이니 추천한다.
개원하는 곳이 아니라면 조리실 세팅은 변화와 유지를 같이 해야 해서 힘든 작업이다.
조리에 직결된 순으로 개선할 사안과 해결 방안을 하나씩 원장과 의논하고,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면 나는 인터넷으로 폭풍검색을 해서 장바구니에 담아 놓고,
원장이 결재해서 물건이 오면 물품구매 담당샘의 검수를 거쳐 주방에 배치하고.....
이런 과정을 8번 정도 한 것 같다.
그 와중에도 급식에 소홀하면 안 되었다.
아직 나를 잘 모르는 원장이 결재버튼을 바로바로 누를 수 있어야 하니까.
다행히 내가 요구한 것들은 모두 구매해 주었고,
가스레인지교체와 주방 후드공사는 내년에 하기로 했다.
휴게시간 없이 밥만 먹고 일한 덕분에 한 달에 끝날 수 있었다. 추가근무시간으로 치면 약 40시간이었는데
원장에게는 마음의 장부에 적어두라 했다.
시간도 비용도 적잖이 들어가는 작업이지만 조리사에게 맞는 조리실 세팅은 꼭 필요하다.
이 작업은 조리사와 원장 간의 호감과 기대가 높은 입사 후 세 달 안에 하는 게 좋다.
가장 비용이 많이 든 건 식판등의 식기 교체였다.
영아용 식판은 굴곡이 깊어서 손설거지 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말라붙은 밥풀을 철수세미로 빡빡 문지르면 스텐식판에 스크래치가 생기고 굴곡 틈에 낀 기름때는 잘 닦이지 않게 된다.
뜨거운 물에 불여서 일반수세미로 앞뒤면을 살살 닦아내야 하는데 성격 급한 조리사였는지 식판 상태는 영 좋지 않았다.
뒷면 사이사이에 묵은 기름때가 껴있는 식판은 새것으로 교체했다. 홑겹으로 되어 있는 스텐컵도 위생적이고 안전한 이중컵으로, 죽과 국수 과일까지 담아 나갔던 간식접시는 작고 플랫한 2구접시와 대접으로 바꾸었다.
국자와 집게 수저통은 모두 작은 것으로 교체하고 바트와 쟁반 크기도 줄였다.
식기구입은 그릇도매상가도 가보았지만 제품이 많지 않아 결국 온라인으로 구매했다.
식기같이 대량의 물건을 온라인으로 구매할 때 사이즈에 대한 안내가 있긴 하지만 선뜻 필요한 크기를 고르기 어려운 게 문제다.
이럴 땐 일단 1개씩 주문해서 용도와 사이즈를 눈으로 확인한 뒤 필요한 개수만큼 구매하면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주방의 펜과 웍, 조리도구, 수납용품 등 대부분의 것을 새것으로 교체했고, 살균건조기 받침대와 라벨기 등을 구입해서 총비용은 150만 원 정도 들었다.
적다 하면 적을 수도 있지만 새로운 조리사가 왔다고 턱 하니 쓸 수 있는 가벼운 금액은 아닐 것이다.
아뭇튼 한 달의 시간과 150만 원의 비용으로 조리실은 확 달라졌다.
조리실 세팅이 마무리되고서 원장에게 그간의 변화를 짧게 보고하였다.
"정말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저는 조리사님이 중간에 포기하고 도망가시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니까요. 결국 다 하셨네요."
"네, 조리실 상태가 워낙 안 좋아서 할 게 많았어요. 석식까지 하고 나서 해야 하니 좀 힘들었죠. 아낌없이 지원해 주셔서 감사해요.....
비용도 많이 들고 제가 추가로 일한 시간도 많긴 했지만, 그래도 이제야 제대로 된 조리실이 된 것 같네요."
"맞아요, 늘 조리실에 대함 불만이 있었는데, 속이 다 후련해요. 정말 감사해요, 조리사님."
"선물입니다, 제가 드리는 입사선물..."